소싯적에 산 좀 다녔다고 자만만 했던 나의 총체적 부실함을 적나라하게 체험했던 것이 벌써 작년이다. 그 일 이후로 십년도 넘게 중단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도 교대제로 일을 하는 친구가 있어 산행은 외롭지 않았다. 가끔씩 산행 동료가 바뀌는 경우는 있어도 대부분의 산행은 그 친구와 함께 한다. 친구는 쉬는 날만 되면 혼자 또는 직장 동료들과 서울 인근에 있는 산에 오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북한산 의상능선을 탔다. 작년 저질 체력의 나를 끌고 참담한 결과를 목격했던 친구와 일주년 기념(?) 산행을 했다. 작년과 같이 일곱 개의 봉우리를 넘어 대서문에서 구기동 계곡으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와 약속에 없었던 저녁을 한 편집장과 함께 했다. 친구와 한 편집장은 이십여 년만에 조우했다. 나를 통해 한 편집장의 근황은 듣고 있었던 차에 한 편집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한담(閑談)을 나누다가 한 편집장의 마감이 끝나면 월초에 북한산 의상능선을 올라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한 편집장도 밥벌이의 속성 상 엉덩이 붙이고 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마감이 닥치면 밤새기를 밥먹듯이 하는 터라 나와 유사한 직업병을 갖고 있다. 아니다 밥때를 자주 거르는 한 편집장은 밥먹는 것보다 밤새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여차저차해서 산행이 결정되었고, 마침내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 왔다.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1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아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지만, 시간을 보니 30분 정도는 늦을 것 같다. 가면서 한 편집장에게 전화를 했다. 으잉! 불길한 느낌이..... 전화를 몇 번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감때문에 늦게 잠들어서 못 일어나나? 구파발 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몇 차례 전화를 더 했는데도 전화벨만 울린다.
일단 친구에게 전화한다. 아무래도 한 편집장과의 산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상황을 전했다. 30분 늦은 나때문에 친구는 환승요금 아낀다고 지하철 역 구내에서 대기중이다. 친구를 만나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컵라면을 구입했다. 한 편집장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약속 장소로 가는데, 멀리 낯익은 사람이 보인다. 이런! 전화기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어서(나중에 보니 키우는 고양이 놈이 배로 깔고 누워서 자는 바람에 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직접 나왔다고 한다.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산행에 동반하지 못한다는 것을 직접 알리러 나왔다. 그냥 전화로 걸면 될 것을..... 아니다.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고 저장만 해놓고 있으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난감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맡은 먹거리와 사정을 전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친구는 감동했다. "착한 선배" 운운하며, 너 같으면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취소한다며 선배의 모습을 띄우기 위해 나를 깍아 내렸다.
한 편집장이 동반하지 못하게 되면서 의상능선을 다시 타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원효봉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는 길이 오늘의 산행로이다. 구파발 역 출발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산성입구에서 내려 원효봉으로 향했다. 대서문 방향에서 좌측에 난 길을 따라 원효봉으로 오르는 숲길로 들어섰다. 최근에 조성된 북한산 둘레길을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지, 안내 표지판에는 둘레길만 보인다. 잘못하면 둘레길을 따라갈 뻔 했다.
앞서 가는 산행객들에게 물어보면서 그들을 따라갔다. 경사면을 따라 가다 보니 북한산성의 석축이 보인다. 백운대에서 염초봉, 원효봉 능선을 따라 쌓았던 북한산성의 대서문 쪽 성곽이다.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아래로는 계곡이라 석축이 없고, 건너편에 다시 이어지는 성곽이 보인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성벽이 끊어졌기 때문인지 이곳의 성벽은 다른 곳에 비하여 규모나 정교함이 월등하다. 또한 조선 숙종대에 쌓은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석축을 쌓은 돌의 크기 뿐만 아니라 성곽 위의 담장인 여장(女墻, 성가퀴라고 부르기도 함)도 돌 하나로 쌓은 것을 보니 이곳은 북한산성 주요 방어 지점 중 중요한 곳이었던 것 같다.
최근 서울시와 고양시가 조선 숙종대에 완성된 북한산성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복원이 아니라 복원하는 시늉만 내는 것 같다. 복원을 하려면 원형에 최대한 가깝게 해야 한다. 산성을 복원하려면 가급적 산성을 쌓았던 시점의 축조 기술로 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산성의 모양만 살리고 있다. 조선 숙종대에 쌓은 북한산성 석축은 반듯한 격자형이 아니라, 서로 다른 크기의 돌이 서로 맞물리게 쌓음으로써 외부의 충격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최근 복원하는 북한산성의 석축은 시멘트 모르타르 범벅 투성이이다. 일제가 석굴암을 복원하답시고 모르타르로 도배한 것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구태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셈이다.
성곽을 지나 숲길을 따라 오르니 시구문이다. 반듯하게 돌을 쌓고 상단에 아치 형으로 깍은 돌을 쌓아 문을 만들었다. 시체가 나가는 시구문이니 북한산성 곳곳에 있는 암문의 일종이다. 그런데 다른 곳의 암문과 달리 석축 상단의 돌을 깍아 홍예문처럼 보이게 한 것이 특이했다.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 땀을 닦고, 겉옷도 벗었다. 친구의 산행 필수 품목인 바나나를 까먹고 원효봉 쪽으로 오른다.
시구문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효자동 쪽에서 시구문 쪽으로 몇 명의 산행객들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우리를 앞질러 간 세 명의 남성 중 한 명이 일행으로부터 뒤쳐지기 시작했다. 걷는 모습을 보니 앞선 두 명은 자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뒤 처져 힙겹게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작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오르막 길은 북한산성의 안쪽이다. 북한산성은 자연적인 지형을 살려 바깥쪽에는 돌로 성곽을 쌓고, 안쪽에는 흙과 돌을 섞어 내탁법(內托法)으로 조성한 한국 산성 건축의 전형이다. 밖에서 보면 석축만 보이기 때문에 높아 보이지만, 안에서는 낮은 울타리처럼 보인다.
문루나 성벽이 노출된 곳은 반듯하게 깍은 돌로 쌓았지만, 성곽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다듬어서 쌓았다. 원효봉까지 오르는 길은 대부분 성벽 안쪽의 성 위에 조성된 수비로이다. 옛날에는 수비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길로 병사들이 순찰을 돌았을 것이다. 원효봉 오르는 길가에 있는 원효암에도 크고 작은 돌로 쌓은 바람막이 벽이 있는데 투박하면서도 절묘하게 쌓았다. 원효암이 산성 방어를 위해 조성된 암자라고 하던데 이 돌담도 산성을 쌓던 이들의 작품일까?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시골집 돌담도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기계화 농법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밭에서 김을 매면서 나온 돌을 쌓아 밭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했는데 산성을 쌓은 기술도 여기에서 유래했으리라.
산성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1970년대에 만든 콘크리트 참호(벙커)가 있다. 참호 위에 올라서면 진관내동과 고양시 지축동이 한눈에 들어 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곳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수도방어부대들이 주둔하고 있고, 산성 주변에서도 방어진지와 콘크리트로 만든 참호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도 산행을 하다 보면 총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오늘은 둔탁한 총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린다. 대학시절 이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숨가쁘게 가파른 길을 오르다 원효봉 초입에서 한명씩만 지날 수 있는 바위 아래에서 숨을 고른다.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든다. 모양을 보니 야생개는 아닌 것 같다. 산 아래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원효암에서 키우는 개인 것 같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아마도 이곳에서 이런 행동으로 먹이를 얻어 먹었을 것이다. 가파른 바위를 숨고르로 오르기 직전의 지점이자 허기도 느끼는 지점에 자리를 잡은 개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꼬리만 흔든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법일 것이다. 영리한 개다.
원효봉에 도착했다. 정상에 복원된 북한산성 너머로 염초봉과 백운대가 보인다.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단체로 답사를 왔나 보다. 정상에서 북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보니 성벽 위로 다니지 못하게 막았다. 게시판을 처음 봤을 때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염초봉으로 올라가는 산행객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문은 문루가 없어진 채 성벽만 남아 있다. 문루가 없으니까 성문의 축성 방식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북문은 정교하게 쌓은 홍예문이 일품이다. 직사각형의 석축과 아치형의 홍예문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자연석으로 쌓은 북한산성 성곽과 다른 느낌을 준다.
북한산 관리공단 직원이 염초봉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고 있었다. 염초봉으로 갈 수 있다는 친구의 말만 듣고 왔는데 낭패다. 공단 직원은 상운사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백운대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준다. 할 수 없이 염초봉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상운사 쪽으로 내려갔다. 친구를 타박하다까 친구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상운사를 들렀다 가자고 한다. 상운사는 작은 절이다. 입구에 개조심이라고 써있더니 덩치 큰 개가 절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사납게 짖는다. 백운대, 염초봉, 노적봉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공단 직원 말로는 10분만 내려가면 백운대 가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역시 산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백운대로 가려니 원효봉까지 올라간 높이의 반을 잃은 느낌이다. 일부러 땀흘리러 산에 오면서도 이런 때는 손해보는 느낌이다. 백운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북한산성의 암문인 위문을 지나야 한다. 잠시 쉬면서 친구가 얼려온 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한 편집장과 함께 산행할 것을 생각하고 적지 않은 음식을 준비했더니 평소보다 많이 먹고 있다. 맥주에 포도를 곁들여 먹고 산을 오르려니 배가 불러서 힘들다.
개동백 나무 잎 사이로 가을 햇빛이 투명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역광으로 보는 잎파리의 색이 부드럽다. 올라가는 길에 제주도에서 온 산행객을 만났다. 같이 온 동료는 앞서서 가고 혼자서 힘들게 오르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만 걷다가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싶어 왔다고 하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이 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요즘 걷기 운동의 여파로 곳곳에 둘레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걷는 운동을 꼭 올레길, 둘레길에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특히 평소에는 짧은 거리도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주도 올레길 운운하면서 걷기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때는 가소롭다는 생각도 한다. 정말 걷는 것을 좋아 한다면 평소에도 열심히 걸으면 되는데.....
친구에게 위문에서 바로 하루재를 거쳐 내려가자고 했다. 친구는 여기까지 왔는데 백운대는 가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안개도 걷혔으니 백운대에서 보는 경치가 좋을 것이라며 나를 꼬신다. 아니 안 가면 자기만이라도 갈 태세이다. 위문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고 있었다. 친구가 뒤따라 오다가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이런! 너무 많이 먹어서 장에서 신호가 온단다. 이 친구는 배고프면 헉헉거리고(그래서 산행시 바나나를 꼭 챙겨온다), 배부르면 바로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은 구간이 아니면 숲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꼭 백운대에 가야 한다고 하더니 정작 오르기 시작하니까 내려 가잖다. 할 수 없이 북한산장 쪽으로 내려갔다. 친구가 일을 보는 동안 북한산장 마당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인수봉은 금빛이다. 바위를 타는 사람도 보였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북한산에서도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늘이 많은 북한산 북사면 다른 곳보다 일찍 단풍이 시작된다. 가지 하나만 물든 것이 전체가 물든 것보다 보기 좋다. 조만간에 이곳에는 단풍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다. 왠지 단풍이 들면 한 해가 다 간 느낌이다. 아직도 달력은 3장이나 남았는데.....
친구는 산에 갔다 올 때마다 '**산 몇번 째'라고 제목을 달고 산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 작년 그 일 이후로 나도 북한산을 자주 오른다. 아직은 열 번도 안되지만 이런 추세로 간다면 친구처럼 몇번 째라고 써야 할 것 같다. 산행을 다시 시작하면서 체력이 작년보다 좋아진 것을 느낀다. 시간이 없어서, 마감에 쫓겨서는 핑계에 불과하다. 작업실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고 해서 성과를 많이 얻는 것도 아니다. 항상 마음 속으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생각만큼 진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루 정도 산에 오르다 보니 일에 대한 집중도도 작년보다는 나아진 느낌이다. 작년 나를 끌고갔다 당황했던 친구의 덕택(?)이다.
원효봉 가는 길, 서울 북한산, 2010. 10.
한 편집장도 밥벌이의 속성 상 엉덩이 붙이고 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마감이 닥치면 밤새기를 밥먹듯이 하는 터라 나와 유사한 직업병을 갖고 있다. 아니다 밥때를 자주 거르는 한 편집장은 밥먹는 것보다 밤새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여차저차해서 산행이 결정되었고, 마침내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 왔다.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1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아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지만, 시간을 보니 30분 정도는 늦을 것 같다. 가면서 한 편집장에게 전화를 했다. 으잉! 불길한 느낌이..... 전화를 몇 번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감때문에 늦게 잠들어서 못 일어나나? 구파발 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몇 차례 전화를 더 했는데도 전화벨만 울린다.
일단 친구에게 전화한다. 아무래도 한 편집장과의 산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상황을 전했다. 30분 늦은 나때문에 친구는 환승요금 아낀다고 지하철 역 구내에서 대기중이다. 친구를 만나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컵라면을 구입했다. 한 편집장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약속 장소로 가는데, 멀리 낯익은 사람이 보인다. 이런! 전화기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어서(나중에 보니 키우는 고양이 놈이 배로 깔고 누워서 자는 바람에 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직접 나왔다고 한다.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산행에 동반하지 못한다는 것을 직접 알리러 나왔다. 그냥 전화로 걸면 될 것을..... 아니다.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고 저장만 해놓고 있으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난감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맡은 먹거리와 사정을 전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친구는 감동했다. "착한 선배" 운운하며, 너 같으면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취소한다며 선배의 모습을 띄우기 위해 나를 깍아 내렸다.
한 편집장이 동반하지 못하게 되면서 의상능선을 다시 타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원효봉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는 길이 오늘의 산행로이다. 구파발 역 출발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산성입구에서 내려 원효봉으로 향했다. 대서문 방향에서 좌측에 난 길을 따라 원효봉으로 오르는 숲길로 들어섰다. 최근에 조성된 북한산 둘레길을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지, 안내 표지판에는 둘레길만 보인다. 잘못하면 둘레길을 따라갈 뻔 했다.
시멘트로 복원한 북한산성, 서울 북한산, 2010. 10. |
북한산성 원효봉 구간(1), 서울 북한산, 2010. 10. |
앞서 가는 산행객들에게 물어보면서 그들을 따라갔다. 경사면을 따라 가다 보니 북한산성의 석축이 보인다. 백운대에서 염초봉, 원효봉 능선을 따라 쌓았던 북한산성의 대서문 쪽 성곽이다.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아래로는 계곡이라 석축이 없고, 건너편에 다시 이어지는 성곽이 보인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성벽이 끊어졌기 때문인지 이곳의 성벽은 다른 곳에 비하여 규모나 정교함이 월등하다. 또한 조선 숙종대에 쌓은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석축을 쌓은 돌의 크기 뿐만 아니라 성곽 위의 담장인 여장(女墻, 성가퀴라고 부르기도 함)도 돌 하나로 쌓은 것을 보니 이곳은 북한산성 주요 방어 지점 중 중요한 곳이었던 것 같다.
북한산성 원효봉 구간(2), 서울 북한산, 2010. 10. |
북한산성 원효봉 구간(3), 서울 북한산, 2010. 10. |
최근 서울시와 고양시가 조선 숙종대에 완성된 북한산성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복원이 아니라 복원하는 시늉만 내는 것 같다. 복원을 하려면 원형에 최대한 가깝게 해야 한다. 산성을 복원하려면 가급적 산성을 쌓았던 시점의 축조 기술로 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산성의 모양만 살리고 있다. 조선 숙종대에 쌓은 북한산성 석축은 반듯한 격자형이 아니라, 서로 다른 크기의 돌이 서로 맞물리게 쌓음으로써 외부의 충격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최근 복원하는 북한산성의 석축은 시멘트 모르타르 범벅 투성이이다. 일제가 석굴암을 복원하답시고 모르타르로 도배한 것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구태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셈이다.
시구문, 서울 북한산, 2010. 10. |
시구문-원효봉 구간(1), 서울 북한산, 2010. 10. |
성곽을 지나 숲길을 따라 오르니 시구문이다. 반듯하게 돌을 쌓고 상단에 아치 형으로 깍은 돌을 쌓아 문을 만들었다. 시체가 나가는 시구문이니 북한산성 곳곳에 있는 암문의 일종이다. 그런데 다른 곳의 암문과 달리 석축 상단의 돌을 깍아 홍예문처럼 보이게 한 것이 특이했다.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 땀을 닦고, 겉옷도 벗었다. 친구의 산행 필수 품목인 바나나를 까먹고 원효봉 쪽으로 오른다.
시구문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효자동 쪽에서 시구문 쪽으로 몇 명의 산행객들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우리를 앞질러 간 세 명의 남성 중 한 명이 일행으로부터 뒤쳐지기 시작했다. 걷는 모습을 보니 앞선 두 명은 자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뒤 처져 힙겹게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작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오르막 길은 북한산성의 안쪽이다. 북한산성은 자연적인 지형을 살려 바깥쪽에는 돌로 성곽을 쌓고, 안쪽에는 흙과 돌을 섞어 내탁법(內托法)으로 조성한 한국 산성 건축의 전형이다. 밖에서 보면 석축만 보이기 때문에 높아 보이지만, 안에서는 낮은 울타리처럼 보인다.
원효암 돌담, 서울 북한산, 2010. 10. |
시구문-원효봉 구간(2), 서울 북한산, 2010. 10. |
문루나 성벽이 노출된 곳은 반듯하게 깍은 돌로 쌓았지만, 성곽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다듬어서 쌓았다. 원효봉까지 오르는 길은 대부분 성벽 안쪽의 성 위에 조성된 수비로이다. 옛날에는 수비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길로 병사들이 순찰을 돌았을 것이다. 원효봉 오르는 길가에 있는 원효암에도 크고 작은 돌로 쌓은 바람막이 벽이 있는데 투박하면서도 절묘하게 쌓았다. 원효암이 산성 방어를 위해 조성된 암자라고 하던데 이 돌담도 산성을 쌓던 이들의 작품일까?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시골집 돌담도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기계화 농법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밭에서 김을 매면서 나온 돌을 쌓아 밭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했는데 산성을 쌓은 기술도 여기에서 유래했으리라.
원효봉에서 본 진관내동, 서울 북한산, 2010. 10.
산성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1970년대에 만든 콘크리트 참호(벙커)가 있다. 참호 위에 올라서면 진관내동과 고양시 지축동이 한눈에 들어 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곳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수도방어부대들이 주둔하고 있고, 산성 주변에서도 방어진지와 콘크리트로 만든 참호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도 산행을 하다 보면 총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오늘은 둔탁한 총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린다. 대학시절 이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개, 서울 북한산, 2010. 10. |
시구문-원효봉 구간(3), 서울 북한산, 2010. 10. |
원효봉 정상에서 본 염초봉, 서울 북한산, 2010. 10. |
숨가쁘게 가파른 길을 오르다 원효봉 초입에서 한명씩만 지날 수 있는 바위 아래에서 숨을 고른다.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든다. 모양을 보니 야생개는 아닌 것 같다. 산 아래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원효암에서 키우는 개인 것 같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아마도 이곳에서 이런 행동으로 먹이를 얻어 먹었을 것이다. 가파른 바위를 숨고르로 오르기 직전의 지점이자 허기도 느끼는 지점에 자리를 잡은 개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꼬리만 흔든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법일 것이다. 영리한 개다.
원효봉 정상, 서울 북한산, 2010. 10. |
북한산성 북문, 서울 북한산, 2010. 10. |
원효봉에 도착했다. 정상에 복원된 북한산성 너머로 염초봉과 백운대가 보인다.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단체로 답사를 왔나 보다. 정상에서 북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보니 성벽 위로 다니지 못하게 막았다. 게시판을 처음 봤을 때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염초봉으로 올라가는 산행객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문은 문루가 없어진 채 성벽만 남아 있다. 문루가 없으니까 성문의 축성 방식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북문은 정교하게 쌓은 홍예문이 일품이다. 직사각형의 석축과 아치형의 홍예문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자연석으로 쌓은 북한산성 성곽과 다른 느낌을 준다.
북한산 관리공단 직원이 염초봉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고 있었다. 염초봉으로 갈 수 있다는 친구의 말만 듣고 왔는데 낭패다. 공단 직원은 상운사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백운대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준다. 할 수 없이 염초봉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상운사 쪽으로 내려갔다. 친구를 타박하다까 친구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상운사를 들렀다 가자고 한다. 상운사는 작은 절이다. 입구에 개조심이라고 써있더니 덩치 큰 개가 절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사납게 짖는다. 백운대, 염초봉, 노적봉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염초봉, 백운대, 서울 북한산, 2010. 10.
공단 직원 말로는 10분만 내려가면 백운대 가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역시 산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백운대로 가려니 원효봉까지 올라간 높이의 반을 잃은 느낌이다. 일부러 땀흘리러 산에 오면서도 이런 때는 손해보는 느낌이다. 백운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북한산성의 암문인 위문을 지나야 한다. 잠시 쉬면서 친구가 얼려온 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한 편집장과 함께 산행할 것을 생각하고 적지 않은 음식을 준비했더니 평소보다 많이 먹고 있다. 맥주에 포도를 곁들여 먹고 산을 오르려니 배가 불러서 힘들다.
개동백나무, 서울 북한산, 2010. 10. |
단풍과 백운대, 서울 북한산, 2010. 10. |
위문, 서울 북한산, 2010. 10. |
개동백 나무 잎 사이로 가을 햇빛이 투명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역광으로 보는 잎파리의 색이 부드럽다. 올라가는 길에 제주도에서 온 산행객을 만났다. 같이 온 동료는 앞서서 가고 혼자서 힘들게 오르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만 걷다가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싶어 왔다고 하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이 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요즘 걷기 운동의 여파로 곳곳에 둘레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걷는 운동을 꼭 올레길, 둘레길에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특히 평소에는 짧은 거리도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주도 올레길 운운하면서 걷기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때는 가소롭다는 생각도 한다. 정말 걷는 것을 좋아 한다면 평소에도 열심히 걸으면 되는데.....
위문, 서울 북한산, 2010. 10. |
인수봉, 서울 북한산, 2010. 10. |
친구에게 위문에서 바로 하루재를 거쳐 내려가자고 했다. 친구는 여기까지 왔는데 백운대는 가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안개도 걷혔으니 백운대에서 보는 경치가 좋을 것이라며 나를 꼬신다. 아니 안 가면 자기만이라도 갈 태세이다. 위문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고 있었다. 친구가 뒤따라 오다가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이런! 너무 많이 먹어서 장에서 신호가 온단다. 이 친구는 배고프면 헉헉거리고(그래서 산행시 바나나를 꼭 챙겨온다), 배부르면 바로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은 구간이 아니면 숲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꼭 백운대에 가야 한다고 하더니 정작 오르기 시작하니까 내려 가잖다. 할 수 없이 북한산장 쪽으로 내려갔다. 친구가 일을 보는 동안 북한산장 마당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인수봉은 금빛이다. 바위를 타는 사람도 보였다.
단풍, 서울 북한산, 2010. 10.
내려가는 길에 보니 북한산에서도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늘이 많은 북한산 북사면 다른 곳보다 일찍 단풍이 시작된다. 가지 하나만 물든 것이 전체가 물든 것보다 보기 좋다. 조만간에 이곳에는 단풍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다. 왠지 단풍이 들면 한 해가 다 간 느낌이다. 아직도 달력은 3장이나 남았는데.....
친구는 산에 갔다 올 때마다 '**산 몇번 째'라고 제목을 달고 산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 작년 그 일 이후로 나도 북한산을 자주 오른다. 아직은 열 번도 안되지만 이런 추세로 간다면 친구처럼 몇번 째라고 써야 할 것 같다. 산행을 다시 시작하면서 체력이 작년보다 좋아진 것을 느낀다. 시간이 없어서, 마감에 쫓겨서는 핑계에 불과하다. 작업실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고 해서 성과를 많이 얻는 것도 아니다. 항상 마음 속으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생각만큼 진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루 정도 산에 오르다 보니 일에 대한 집중도도 작년보다는 나아진 느낌이다. 작년 나를 끌고갔다 당황했던 친구의 덕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