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초고만 작성해 놓고 이제야 광릉수목원의 마지막 회를 씁니다.
난대식물원에서 나와 산림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빗새가 자동판매기로 가는군요. 빗새는 커피 중독증입니다. 점심먹고 식당 안에 있던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던 것 같은데, 또 다시 커피를 뽑아가지고 옵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왠지 담배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자판기 커피의 단맛은 담배 맛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써 참았던 담배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 중에 자판기 커피의 유혹만한 것도 없습니다. 빗새가 담배를 맛(멋?)있게 피우기를 기다렸다가 산림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산림박물관은 한국의 산림생태계를 알리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곳답게 정형화된 공간입니다. 나무와 재목이 된 나무의 용도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지나쳐도 됩니다.
출구로 이동하다 보니 세밀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더군요. 작가의 이름을 적어 오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야생화를 세밀화로 그렸더군요. 세밀화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세한 묘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세밀화를 그리는 분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세밀화를 삽화로 사용한 아이들 책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출판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들 책의 삽화를 그린 분들이 적절한 보수를 받는 것은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글의 초고를 작성하고 나서 세밀화의 용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주방용품에 많이 사용되더군요. 본차이나 류의 도자기에 적지 않게 사용되더군요. 한국도자기에서는 야생화 시리즈로 본차이나를 생산하고 있더군요. 주방용품을 모으는 사람 중에는 손으로 세밀하게 그린 그릇만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세밀화 전시회를 보고 나와 침엽수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2회에서도 말했지만 광릉수목원에는 소나무가 참 많습니다. 최근 광릉수목원 주변 남양주시 야산에서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가 발견되어 반경 300m의 소나무를 파쇄했다고 하던데 이곳까지 전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산림박물관 앞에 조성된 화단에 반송이 있고, 광장에서 박물관으로 오르는 길에 적송이 있습니다. 최근에 소나무가 조경수로 각광을 받으면서 멋진 소나무는 부르는게 값이라고 합니다. 재선충 감염방지를 위해 소나무 이동을 금지해서 가격이 비싸다고 합니다. 경남지방에서 처음 발견된 소나무의 암인 재선충병은 산주들과 조경업자들이 불법으로 반출해서 전국으로 번진 병입니다. 산림당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재선충병을 예방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종입니다. 재선충병은 한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수입소나무를 재목으로 쓰기 위해 들여올 때 검역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서 퍼진 병이라고 합니다. 느슨한 검역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를 받고 있는 셈이지요. 나중에 고향에 집을 짓게 되면 집 앞에 소나무 몇 그루를 심고 싶습니다. 그것도 한국산 금강송(일명 춘양목이라고 하지요) 으로 심고 싶습니다.
침엽수림 지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수령이 제법 됨직한 전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길이 탁 트여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연인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산공기를 맘껏 들이 마시는 만큼 그들의 사랑이 싱싱하기를 바랍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들 사이로 나무 보도가 있습니다. 침엽수림을 관찰하는 이들의 발길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잘 한 것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모든 것들이 원형을 잃으니까요. 전나무 숲 사이에 머털도사같은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멋진 할아버지 수염을 늘어뜨린 모습이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습니다. 만약 나무보도가 없으면 이 식물은 구경할 수 없겠지요. 사람의 발길에 채여 유명한 산의 등산로처럼 맨살을 드러내겠지요. 국립공원에는 등산로 주변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도를 벗어나 주변 생태계를 마구마구 파괴합니다. 지리산 노고단과 소백산의 능선에 철쭉쫓이 피면 사람들은 보도를 너무 쉽게 벗어납니다. 영화에서처럼 나무의 정령들이 가지로 그런 사람들을 묶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보호 영역조차도 감싸줄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숲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따스한 빛이 오후의 숲길을 부드럽게 비춰줍니다. 오후 4시경의 빛은 사진색을 잘 만들어 줍니다. 거기다 동원하지 않은 엑스트라까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주니 셔터만 누르면 됩니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가족들의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도시의 썩은 공기에서 벗어나 산림에서 신선한 공기를 폐에 많이 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숲길을 걷는 사람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다정하게 걸어 오는 연인이 있기에 사진기를 들이대자 여자분이 머리를 숙입니다. 저의 사고가 불량스러워서 그런지 이상한 생각이 휙 스칩니다. 정겨운 연인의 모습이 아닌 어색한 모습이 나왔네요. 갑자기 일기예보 배경화면에 나온 사람들이 되었군요.
갈래길 한 쪽에 남근석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네 어귀에 남근석을 세우고 새끼줄로 묶어 풍요를 빌곤 했는데, 이곳의 남근석은 맨몸을 드러내고 있네요. 다음에 방문하면 제가 새끼줄을 매어줘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고 저의 풍요를 빌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같아서요.
광릉수목원 초입에 조성된 화단에 조팝나무군락이 있습니다. 꽃이 활짝 피었네요. 조팦나무는 4월에서 5월경에 꽃을 피웁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번식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을텐데, 저는 한 번도 조팝나무의 열매를 보지 못했습니다. 감기와 신경통 치료의 약재로 쓰인다고 하는군요. 나무가지에 다닥다닥 피어서 멀리서 보면 그리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예쁜 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빗새도 꽃이 예쁜지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습니다.
야생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촬영 자세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진의 피사체가 어려운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온갖 자세를 다 동원해야 구도가 나오니 매우 힘듭니다. 접사 사진을 찍을 때마다 뱃살을 빼라고 꽃들은 말합니다. 온몸을 비틀다 보니 상체가 배를 누르면서 숨을 가쁘게 합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찍어야겠지만 노출이 적당하게 나오길래 그냥 찍었더니 바람때문에 초점이 잘 맞지 않네요. 게다가 접사로 찍으려다 보니 저의 몸은 꽈배기가 되었습니다. 꽃사태가 뭔지 보여주네요. 하얀 빛을 발하는 꽃에 사선으로 빛이 들어와 더욱 더 백색의 맛을 보여주네요. 한동안 야생화의 매력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 오니 다시 의욕이 생기네요.
광릉수목원을 몇 시간에 걸쳐 둘러보고 매표소로 나오는 길에 왕벚꽃이 피었네요. 서울보다 두 주나 늦게 꽃을 피운 것을 보니 빗새가 난방비 많이 든다고 투덜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직 주변은 본격적인 봄색을 보이지 않는데, 수변에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잿빛의 배경과 대조를 이루네요.
빗새와 오랫만에 가본 광릉수목원은 최근 저를 괴롭혔던 일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오랫만에 친구와 함께 걸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어쩌다 찾아 오는 해우(解憂)의 기회일 것입니다. 게다가 청량한 숲에서 그 기회를 가졌으니.......
현실로 돌아 가면 다시 또 다시 고민이 이어지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편안합니다. 최근에 머리를 아프게 했던 것들이 벚꽃아래 흐르는 물에 실려갔을 것입니다. 안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광릉수목원을 갔다온지 두 달이 다 되서야 마지막 글을 올립니다. 제가 찍은 꽃들은 이미 지고, 다른 꽃들이 피어 있을 것입니다. 겨울의 흔적이었던 회색빛은 녹음이 짙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신록의 색을 찍어 보고 싶었는데 담지 못했네요. 다음에도 기회가 오겠지요.
난대식물원에서 나와 산림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빗새가 자동판매기로 가는군요. 빗새는 커피 중독증입니다. 점심먹고 식당 안에 있던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던 것 같은데, 또 다시 커피를 뽑아가지고 옵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왠지 담배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자판기 커피의 단맛은 담배 맛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써 참았던 담배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 중에 자판기 커피의 유혹만한 것도 없습니다. 빗새가 담배를 맛(멋?)있게 피우기를 기다렸다가 산림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산림박물관은 한국의 산림생태계를 알리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곳답게 정형화된 공간입니다. 나무와 재목이 된 나무의 용도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지나쳐도 됩니다.
출구로 이동하다 보니 세밀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더군요. 작가의 이름을 적어 오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야생화를 세밀화로 그렸더군요. 세밀화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세한 묘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세밀화를 그리는 분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세밀화를 삽화로 사용한 아이들 책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출판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들 책의 삽화를 그린 분들이 적절한 보수를 받는 것은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글의 초고를 작성하고 나서 세밀화의 용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주방용품에 많이 사용되더군요. 본차이나 류의 도자기에 적지 않게 사용되더군요. 한국도자기에서는 야생화 시리즈로 본차이나를 생산하고 있더군요. 주방용품을 모으는 사람 중에는 손으로 세밀하게 그린 그릇만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세밀화 전시회를 보고 나와 침엽수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2회에서도 말했지만 광릉수목원에는 소나무가 참 많습니다. 최근 광릉수목원 주변 남양주시 야산에서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가 발견되어 반경 300m의 소나무를 파쇄했다고 하던데 이곳까지 전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산림박물관 앞에 조성된 화단에 반송이 있고, 광장에서 박물관으로 오르는 길에 적송이 있습니다. 최근에 소나무가 조경수로 각광을 받으면서 멋진 소나무는 부르는게 값이라고 합니다. 재선충 감염방지를 위해 소나무 이동을 금지해서 가격이 비싸다고 합니다. 경남지방에서 처음 발견된 소나무의 암인 재선충병은 산주들과 조경업자들이 불법으로 반출해서 전국으로 번진 병입니다. 산림당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재선충병을 예방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종입니다. 재선충병은 한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수입소나무를 재목으로 쓰기 위해 들여올 때 검역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서 퍼진 병이라고 합니다. 느슨한 검역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를 받고 있는 셈이지요. 나중에 고향에 집을 짓게 되면 집 앞에 소나무 몇 그루를 심고 싶습니다. 그것도 한국산 금강송(일명 춘양목이라고 하지요) 으로 심고 싶습니다.
침엽수림 지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수령이 제법 됨직한 전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길이 탁 트여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연인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산공기를 맘껏 들이 마시는 만큼 그들의 사랑이 싱싱하기를 바랍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들 사이로 나무 보도가 있습니다. 침엽수림을 관찰하는 이들의 발길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잘 한 것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모든 것들이 원형을 잃으니까요. 전나무 숲 사이에 머털도사같은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멋진 할아버지 수염을 늘어뜨린 모습이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습니다. 만약 나무보도가 없으면 이 식물은 구경할 수 없겠지요. 사람의 발길에 채여 유명한 산의 등산로처럼 맨살을 드러내겠지요. 국립공원에는 등산로 주변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도를 벗어나 주변 생태계를 마구마구 파괴합니다. 지리산 노고단과 소백산의 능선에 철쭉쫓이 피면 사람들은 보도를 너무 쉽게 벗어납니다. 영화에서처럼 나무의 정령들이 가지로 그런 사람들을 묶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보호 영역조차도 감싸줄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숲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따스한 빛이 오후의 숲길을 부드럽게 비춰줍니다. 오후 4시경의 빛은 사진색을 잘 만들어 줍니다. 거기다 동원하지 않은 엑스트라까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주니 셔터만 누르면 됩니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가족들의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도시의 썩은 공기에서 벗어나 산림에서 신선한 공기를 폐에 많이 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숲길을 걷는 사람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다정하게 걸어 오는 연인이 있기에 사진기를 들이대자 여자분이 머리를 숙입니다. 저의 사고가 불량스러워서 그런지 이상한 생각이 휙 스칩니다. 정겨운 연인의 모습이 아닌 어색한 모습이 나왔네요. 갑자기 일기예보 배경화면에 나온 사람들이 되었군요.
갈래길 한 쪽에 남근석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네 어귀에 남근석을 세우고 새끼줄로 묶어 풍요를 빌곤 했는데, 이곳의 남근석은 맨몸을 드러내고 있네요. 다음에 방문하면 제가 새끼줄을 매어줘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고 저의 풍요를 빌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같아서요.
광릉수목원 초입에 조성된 화단에 조팝나무군락이 있습니다. 꽃이 활짝 피었네요. 조팦나무는 4월에서 5월경에 꽃을 피웁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번식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을텐데, 저는 한 번도 조팝나무의 열매를 보지 못했습니다. 감기와 신경통 치료의 약재로 쓰인다고 하는군요. 나무가지에 다닥다닥 피어서 멀리서 보면 그리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예쁜 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빗새도 꽃이 예쁜지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습니다.
야생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촬영 자세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진의 피사체가 어려운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온갖 자세를 다 동원해야 구도가 나오니 매우 힘듭니다. 접사 사진을 찍을 때마다 뱃살을 빼라고 꽃들은 말합니다. 온몸을 비틀다 보니 상체가 배를 누르면서 숨을 가쁘게 합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찍어야겠지만 노출이 적당하게 나오길래 그냥 찍었더니 바람때문에 초점이 잘 맞지 않네요. 게다가 접사로 찍으려다 보니 저의 몸은 꽈배기가 되었습니다. 꽃사태가 뭔지 보여주네요. 하얀 빛을 발하는 꽃에 사선으로 빛이 들어와 더욱 더 백색의 맛을 보여주네요. 한동안 야생화의 매력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 오니 다시 의욕이 생기네요.
광릉수목원을 몇 시간에 걸쳐 둘러보고 매표소로 나오는 길에 왕벚꽃이 피었네요. 서울보다 두 주나 늦게 꽃을 피운 것을 보니 빗새가 난방비 많이 든다고 투덜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직 주변은 본격적인 봄색을 보이지 않는데, 수변에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잿빛의 배경과 대조를 이루네요.
빗새와 오랫만에 가본 광릉수목원은 최근 저를 괴롭혔던 일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오랫만에 친구와 함께 걸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어쩌다 찾아 오는 해우(解憂)의 기회일 것입니다. 게다가 청량한 숲에서 그 기회를 가졌으니.......
현실로 돌아 가면 다시 또 다시 고민이 이어지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편안합니다. 최근에 머리를 아프게 했던 것들이 벚꽃아래 흐르는 물에 실려갔을 것입니다. 안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광릉수목원을 갔다온지 두 달이 다 되서야 마지막 글을 올립니다. 제가 찍은 꽃들은 이미 지고, 다른 꽃들이 피어 있을 것입니다. 겨울의 흔적이었던 회색빛은 녹음이 짙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신록의 색을 찍어 보고 싶었는데 담지 못했네요. 다음에도 기회가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