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속의 세상

일락서산(日落西山)

풀무더기 2010. 10. 15. 23:59

오랫만에 아이와 단 둘이 길을 나섰다. 아이와 함께 곤충집 톱밥갈이를 하러 간다. 국립수목원 근처의 곤충 농장(곤충키우는 곳을 농장이라고 해야 하나?)에서 일을 마치고 작업실로 방향을 돌렸다. 원바위 고개(어하 고개의 별칭인데, 이곳 사람들은 '어하 고개'보다 '원바위 고개'라는 이름을 더 많이 쓴다)를 넘어 양주 시내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이다. 고개를 내려 서면 옥정(玉井) 마을이다. 마을 이름에서도 풍기듯이 이곳에서 생산한 쌀은 밥맛이 좋았다. 그러나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을 파헤친 탓에 옥정쌀도 밥맛이 예전만 못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논이 택지로 수용되면서 이곳의 풍광도 많이 변했다. 그래도 아직은 수용되지 않은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렇지만 원바위 고개 밑 자동차 굴이 완공되면 이 풍광조차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옥정 마을을 굽이 굽이 돌아 가는 이차선 도로 위에서 서산으로 지는 일몰이 반해 차를 멈췄다. 양주의 주산(主山)인 불곡산(佛谷山) 위에 걸려 있는 붉은 해와 얼마 남지 않은 농토 위에 우뚝 서 있는 미류나무가 나를 홀린다. 양 쪽에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 사이에 포위된 이곳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될 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곳을 지나며 담았던 이미지들 대부분이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이 풍광도 조만간에 사라질 것이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니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수로 위에 앉아 있다. 회색 빛 시멘트 바닥 위로 도드라지게 빨간 몸통을 드러내며 앉아 있다. 서울에서는 보호 생물로 지정될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없는 곤충이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발이 가속화되면 이곳에서 고추잠자리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고읍, 옥정, 회천 신도시 건설이 완료되면 경기 북부 지역의 넓은 평야지대였던 양주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통팔달의 도로가 개설되고,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양주의 자연 풍광과 인심도 많이 변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옥정 마을에서 보던 아름다운 석양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