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술에 대한 생각(2) 三人三色
우리 가족은 각각의 개성을 존중한다. 무엇으로 ?
인간은 왜 사진을 찍는가? 이러한 질문에 멋있는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기록문화를 운운해야 할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기록문화의 수호자로서 사진을 찍을까? 나는 사진찍기도 놀이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놀다 보면 왠지 자신의 놀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놀이가 예술이 되고, 예술은 놀이의 과정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인류가 발명한 사진술도 이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진술에 대한 학문적인 것이 아니다. 사진의 출발점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은 사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을 봐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진의 개념은 없다. 사진을 찍게 된 동기는 남들 안 갖고 있는 카메라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내 소유의 첫 카메라는 올림푸스에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출시한 올림푸스 펜(앞의 사진 중 '나는 나를 찍고, 그도 나를 찍다'에 등장한다. 보면 '아 이거구나' 할꺼다)이었다. 올림푸스 펜은 135mm필름(일반적으로 필름하면 생각나는 필름 사이즈)의 한 면을 반으로 잘라 화상을 담았기 때문에 아주 경제적인 카메라였다. 36장 필름을 사면 72장을 찍을 수 있었다. 필름카트리지를 카메라에 장착할 때 잘 감으면 78장까지도 찍을 수 있었다. 이 카메라는 군대 시절에도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당시 컴팩트형 자동카메라가 등장했지만 나는 올림푸스 펜이 마음에 들었다. 화질은 다소 떨어졌지만(당시 발매되었던 자동카메라에 비해서는 렌즈의 성능이 그다지 떨어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SLR카메라에 비해 소형 카메라의 화질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진은 잘 나왔다. 이 때 처음으로 일본의 광학기술에 감탄했다.
복학 후, 니콘 FM2를 구입하면서 사진의 세계에 입문(?)하여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시간되면 찍고, 시간 없으면 카메라는 방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마누라 꼬실 때는 정말 열심히 메고 다녔나 보다. 최근에 그 시절 메었던 장비 다 메고 나갔다가 어깨와 허리 아파 죽는줄 알았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카메라 장비를 사 모으다, 한 동안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 번 돈을 그곳에 퍼부었다.
그러다 다시 사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다시 사진을 찍어볼까 하고 어슬렁거리는데 필카를 쓰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 가정에 한 대가 아닌 한 사람이 한 대씩 디카를 갖고 다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더 이상 카메라는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돌아올 때 레이션 박스에 담아왔던 일제카메라처럼 희귀한 것이 아니었다. 디카의 세계에 발을 담은 사람들은 비싸다는 DSLR까지 구입하기 시작했고, 인터넷동호회에는 작가 뺨치는 사진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나도 DSLR을 구입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미 SLR카메라용으로 구입했던 렌즈와 기타 장비들을 갖추고 있으니 바디만 구입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DSLR은 무척 비쌌다. '그래 적금을 붓자. 3년만 부으면 제일 좋은 기종을 구입할 수 있겠지' 다짐하며 매달 받은 원고료를 손대지 않고 카메라 장만 적금으로 넣었다. 2년이 지났다. 1년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고급 기종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성능이 낮은 카메라라도 잘 찍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와 주변 기기 구입에 엄청난 돈을 들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최고의 부품을 기다리며 보급형 PC를 폄하하던 모습이 재발한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카메라가 사진찍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된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4월 보급형 DSLR보다는 상위 기종이지만 최고급 기종이라고는 할 수 없는 후지필름에서 나온 S5PRO를 구입했다. 그런데 바디를 사니 전에 쓰던 스트로보(플래쉬)의 기능을 몇 가지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트로보도 샀다. 이래 저래 몇 개의 장비를 더 구입했다. 앞으로 지금 갖고 있는 광각렌즈보다 화각이 넓은 렌즈도 하나 더 사야할 것 같다. 장비에 욕심을 내다 보면 한이 없다. 그래도 갖고 싶다. 마치 장비를 갖추면 사진도 잘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러다 보면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장비가 사진을 찍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진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기로 했다. 사진은 내가 찍는 것이다. 주변부터 찍자. 폼잡고 출사가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자주 머무는 곳부터 찍자고 생각했다. 위 사진은 이런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집 화장실에 놓여 있는 생활소품 중의 일부이다. 나는 송염치약을 쓴다. 처는 메디안 민트를 쓴다. 아이는 어린이용 페리오를 쓴다. 일반적으로 아이들 치약을 제외하고 어른들은 한 종류의 치약을 공유할 것이다. 공유는 여러 장점도 있지만, 불편함도 많이 따른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이런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고. 그렇다. 사진을 잘 보면 거울에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일부가 찍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찍지 않는다. 왜냐고 멋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주변의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이제부터 시작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유치해도 좋다. 그냥 나의 삶의 영역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이란 이런 것이다'는 없다. 과거에는 멋있는 풍경을 찍거나, 그로데스크한 인물의 표정을 찍은 것이 멋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진은 나의 블로그에 글들에서 적지 않게 등장할 것이다. 글과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사진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수록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들고 다니는 똑딱이 디카로 찍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변이다. 묵직한 DSLR은 폼은 그럴듯 하지만, 생동감있는 대상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DSLR을 들이대는 순간 대상은 정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고 사진을 찍어 보기로 했다. 우리 주변의 일상을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생활 속의 사진찍기'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