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나와 함께 한 나무를 보며
풀무더기
2008. 8. 31. 07:00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선산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이 잣나무들을 가르키며 "너 태어나던 해에 심었다"고 하셨다. 장손인 아버지는 선영을 관리하러 자주 가셨다. 나는 장손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갔다, 대부분 선영의 묘와 나무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잣나무를 타고 오르는 칡넝쿨은 베기만 해서는 안되었다. 때로는 '근사미'라는 맹독성 농약을 주사해야 했다. 베어 낸 칡줄기에 근사미 용액을 주사기 바늘로 찔러서 주입했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뻗친 칡뿌리를 죽이지 않으면 잣나무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잣나무를 타고 올라간 칡넝쿨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대학시절까지 주기적으로 갔으니, 나도 이 나무들에 대한 애착이 적지 않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예전처럼 자주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년에 한 두차례 이상은 간다. 아이를 데라고 갈 때마다 아빠 나이와 같은 나무라고 설명하지만, 아이는 흘려 듣는다. 하기야 나도 어렸을 때는 흘려들었으니까. 내 아이가 내 나이쯤 되면 이 나무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선영을 찾는 한, 나와 아이는 이 나무들의 생장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어린 나의 손을 잡고 갔듯이, 지금은 내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가파른 능선을 오른다.
당신이 가실 자리의 나무를 베는 아버지의 심회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선영을 찾을 때마다 당신은 할아버님 묘 앞을 가리키며 당신의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정정하셨기에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부쩍 연로해진 아버지를 볼 때마다 그 말씀이 떠올려지며, 애절함을 느끼게 한다. 아버지가 가꾸신 잣나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버지와 같이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늘 푸른 잣나무처럼 부모님의 곁을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