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가 갖고 잇는 캐논 파워샷 G9(이하 '지구'로 표현)을 빼앗아 왔다. 친구는 G7(친구는 이것을 '지칠이'라고 표현한다)을 갖고 있는데, 여차여차하여 '지구'가 새로 생겼다고 걱정(?)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탈(돈을 들이지 않거나, 아주 예의를 취하는 수준에서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하는 나의 주특기가 발휘되었다. 비슷한 기능의 두 카메라를 갖게 된 친구의 심사를 긁었다. 쓰고 있던 '지칠이'를 노렸는데, 착한 친구는 '지구'를 줬다. 그 친구는 너무 착하다. 나의 꼬임에 넘어가다니....
'지구'를 빼앗아 왔지만, 정작 사진을 찍어 볼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항상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지만, 눈에 띄는 피사체가 없었다. 발품을 팔지 않으니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매그넘 소속의 어떤 작가가 말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좋은 신발이 있어야 한다'고.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어떤 '찰나'를 담은 사진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장소를 헤맨 사진사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 사진사는 그 공간과 그 곳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의 닭꼬리와'와 '아마추어의 지존'은 지반부터 차이가 있다. 프로들은 지존과 하위까지 실력에 있어서 편차가 별로 없다. 물론 창의적인 요소의 유무라는 평가가 개입하기는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아마추어는 주제와 기술에 있어 그 편차가 극과 극이다. 나는 물론 아마추어이다. 사진이 좋아서 사진을 찍지만, 좋은 사진기에 대한 관심도 많다. 원래 능력없는 사람이 장비만 탓한다고 했던가?
앞의 사설이 길었다. 똑딱이 디카 계열에서 하이엔드급이라고 하는 '지구'는 기능이 많은 디카이다. 앞서 캐논의 IXUS 850이 나의 애용 디카였는데, IXUS 시리즈는 수동 기능을 완벽하게 지원하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 하이엔드 급인 '지구'는 '조리개 모드'와 '셔텨 속도 모드' 기능이 지원된다. 물론 '완전 수동 모드(조리개 값과 셔터속도를 수동으로 설정하는 모드)'도 지원된다. DSLR급은 아니지만, DSLR급이 갖고 있는 왠만한 기능을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노출 보정기능까지 있으니, 똑딱이 디카의 기능으로만 보면 최상이다. 이외에도 많은 기능이 있다.
'지구'를 빼앗아 왔지만, 테스트해 볼 기회가 없었다. 후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옆에 있던 친구(이 친구는 나와 같은 '지구'를 최근에 샀다. 만약 이 친구가 '지구'를 먼저 사지 않았다면 내 손에 '지구'가 들어 오지 않았을 것이다.)가 '차창의 물방울을 어떻게 찍어야 하냐'고 물었다. 물방울의 초점과 노출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찍어서 설명해 주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 가방에 있던 '지구'를 꺼내서 한 장 찍어봤다.
비가 와서 날은 어두웠고, 달리는 차 안에서 차창의 불방울을 찍으려다 보니, 흔들림도 심했다. ISO김도를 200으로 높이고, 접사 모드로 바꾸고, 조기개 값을 최대로 개방하고 보니 선명한 물방울이 잡혔다.
그런데 또 다른 연습샷인 풍경 사진에서는 아쉬움이 생겼다. 조리개 값은 F8까지만 조여졌기 때문이다. 심도(근거리와 원거리의 깊이감)를 더 세밀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이엔드 급이지만, DSLR급의 모든 기능이 지원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 나무의 디테일이 많이 떨어진다. 또한 원경의 산도 세밀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아직은 더 많은 기능을 숙지해야 하겠지만, '지구'는 나름대로 훌륭한 하이엔드 급 디지털카메라이다. 물론 기능이 아무리 많아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지구'는 무겁게 DSLR급을 메고 다니는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물론 두 기종의 표현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