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 이어서 씁니다. 일년동안 홀아비로 지내던 사돌이가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사순이를 만난게 너무 좋았는지 사순이가 톱밥 위로만 올라오기를 기다립니다. 뿔을 곧추 세우고 허공을 쳐다보는 척했지만 실은 사순이를 찾고 있습니다. 사돌이는 사순이를 사로 잡기 위해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이미 늙어서 힘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둘은 새롭게 짝짓기에 돌입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몇 일만에 작업실에 왔더니 사돌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더군요. 평소에도 노쇠한 탓에 잘 움직이지 않던 놈이라 힘이 없어서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미동조차 하지 않네요. '아차' 싶어 사육통의 뚜껑을 열고 사돌이를 건드려 봤더니...... 죽음의 간접적 원인이 된 사순이는 사돌이가 죽자 톱밥 위로 올라와 먹이통을 독차지했습니다. 곤충들은 자기 종족의 주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사순이도 그런 모양입니다. 아니면 사돌이때문에 먹지 못했던 먹이에 심취했는지도 모르지요.
몇 일만에 작업실에 왔더니 사돌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더군요. 평소에도 노쇠한 탓에 잘 움직이지 않던 놈이라 힘이 없어서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미동조차 하지 않네요. '아차' 싶어 사육통의 뚜껑을 열고 사돌이를 건드려 봤더니...... 죽음의 간접적 원인이 된 사순이는 사돌이가 죽자 톱밥 위로 올라와 먹이통을 독차지했습니다. 곤충들은 자기 종족의 주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사순이도 그런 모양입니다. 아니면 사돌이때문에 먹지 못했던 먹이에 심취했는지도 모르지요.
넓적사슴벌레 표본 |
장수풍뎅이 표본 |
짝 이루고 살라고 사순이를 넣어 주었더니 사돌이가 먼저 갔네요. 정해진 수명만큼은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사순이는 사돌이라는 훼방꾼이 사라지자 먹이통을 독차지하고, 톱밥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먹이통을 뒤집고, 놀이목은 톱밥 속에 처박는 등 사돌이가 사라지자 사순이는 사육통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일족들을 먹여 살리다 보니 이놈들이 죽은 이후에 해야 할 일도 적지 않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겠지만 미물이라도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라 대부분은 표본으로 만듭니다. 그렇다 보니 약간씩 모양을 달리한 사슴벌레 암수컷 표본들과 장수풍뎅이 표본들이 두 상자는 되네요.
이번에 죽은 사돌이는 표본용으로는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훼손된 곳도 없고, 광택까지 좋네요. 표본 만드는 일도 아이 때문에 시작했지만, 오히려 아이는 먼 산 바라보듯이 합니다. 사슴벌레는 몸통의 마디가 많아서 빨리 표본으로 만들지 않으면 몸통이 분절됩니다.
정작 표본으로 만들려고 보니 몸통에 꽂아야 하는 실핀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돌이의 몸통이 유연하게 풀리도록 뜨거운 물에 담가 놓는 동안 표본핀을 찾았습니다. 삼십분도 넘게 핀통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네요. 마침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일본 출장갔다가 갑자기 바늘이 필요해서 100엔샵에서 산 싸구려 바늘통이 눈에 띄었습니다. 실핀에 비하면 굵기는 두 배 정도 되지만, 죽은 놈이 실핀으로 꽂던 통핀으로 꽂던 어찌 알겠습니까? 오히려 정밀하게 핀을 꽂아야 하는 제가 더 어렵겠죠. 정작 실핀을 대체할 바늘은 구했는데, 표본을 장착할 스티로폼이 없네요. 생각해 보니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 스티로폼이 있었던게 생각났습니다. 얼른 갔다 왔습니다.
드디어 사돌이의 표본을 완성했습니다. 흐믓했습니다. 사돌이의 사체 이외에는 준비된 것이 없었지만, 맥가이버처럼 해결한 저의 비상한(?) 머리가 놀랍지 않습니까? 사돌이의 표본을 완성한 일에 괜히 들떴었나 봅니다. 집에 오니 장수풍뎅이 숫놈도 죽어 있더군요. 이번에도 표본핀이 없어 와이셔츠에 꽂혀온 핀으로 장수풍뎅이의 표본을 완성했습니다. 다행이도 받침용으로 쓰는 우드락이 있어 재활용쓰레기장까지는 안 갔습니다. 여기까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곤충표본을 같이 만들어주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그런데, 이놈들의 표본을 만들어 준 다음 주부터 장수풍뎅이 일가족이 떼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성충이 되었으니, 죽는 시기도 비슷하겠죠. 아이 놈(부득이하게 '놈'이라고 해야겠네요)은 이놈들이 생명을 다 하고 널부러져 있는데, 몇일이 지나도록 거들떠 보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몇일을 더 지켜봤습니다. 그래도.......
결국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육통에서 사체들만 꺼내서 밖에다 쌓아 놓네요. 몇 일 지나고 나니 세 마리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더군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봤습니다.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지 않는게 기특하긴 했지만, 어떻게 하나 지켜 보기로 했습니다. 한동안을 포개져 있는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몇일동안 바빠서 이놈들을 쳐다볼 틈도 없었는데, 어느 날 이놈들이 보이지 않더군요. 아이가 모종삽을 들고 나가 땅에 묻어 주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자기가 키웠던 생명들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네요.
아! 그런데, 벌써 사육통 안에 죽은 장수풍뎅이들이 낳고 간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다니고 있네요.
아~ 이제 그만 하고 싶은데.......
벌써 사육통만 여섯 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