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 향로
숙소로 돌아와서 자세히 살펴 보니 틀로 찍어 만든 모습이 역력하다. 볼록하게 나온 면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은 유약으로 덧칠까지 되어 있다. 향연(香煙)이 나오는 나발(부처의 소라모양 머리)도 크기가 제각각이다.
다음날 꾸러우(鼓樓, 과거 텐진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민예품 등을 파는 지역)에게 갔다가 보니 향을 피워 올리는 부처님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처럼 왕사장에게 차나 더 받아 올 껄..... 그래도 깨질까봐 뽁뽁이로 싸고 신문지로 다시 싸서 귀국보따리에 넣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얼굴이 뚜껑을 겸하고 있어서 향을 꽂고 사르려면, 불공스럽지만 부처님의 얼굴을 들어야 한다. 머리 꼭대기 나발(螺髮, 소라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부르는 부처의 머리카락) 부분으로 향이 모락모락 나온다. 향을 사르고 있는 중에 뚜껑을 열면 안된다. 향로 안에 머물던 향연이 덜 마른 장작을 땔 때처럼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통 안에 가득 찬 향연은 머리 위에 뚫린 몇 개의 구멍을 통해 서서히 나와 방으로 퍼진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향을 피우는 문화도 발전했다고 한다. 향내는 부정(不淨)을 제거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신명(神明)과 통한다 하여 중국과 한국의 제사 의식에서는 분향(焚香, 향불을 피우는 행위)부터 시작했다. 조상에 제사를 지내거나, 불공을 드리기 전에 향을 피움으로써 나의 마음가짐부터 바르게 하고자 했다. 제사가 잦은 우리집만 해도 옛날에는 향갑을 별도로 두고 향나무를 깍은 향편들을 보관했었다. 제사를 지내면서도 너무 짙게 향을 피우지는 않았다. 은은하게 향내가 퍼져나갈 정도로만 피웠는데, 난 그 향내가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독하다고 하는데도, 은은하게 향로 안에서 실처럼 피어오르는 향연이 보기 좋았고 냄새도 좋았다.
향공양(香供養), 중국 베이징 옹화궁, 2009. 7.
집이나 연구실에 있으면 자주 향을 피운다.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향의 효능을 믿어서는 하는 짓은 아니다. 실오라기처럼 피어오르는 향연이 퍼져 나가는 시각적 느낌이 보기 좋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에 섞이는 냄새가 좋아서이다. 여행을 가면 향받침대(혹은 향로)를 가끔씩 사오는데, 일본에서 사온 향받침대는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이다. 벚꽃 문양 위로 비스듬하게 향을 꽂으면 향이 타들어 가는 모양을 볼 수 있다. 향이 타면서 떨어지는 재는 벚꽃 위로 덮인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향이 끝부분까지 탈 수 있도록 구멍이 정교하게 파여있다는 점이다. 인사동에서 산 받침대는 연 잎과 열매 모양을 흉내냈다. 그런데 향을 꽂는 구멍이 너무 깊어 버려지는 향이 너무 많다. 그래도 꽂꽂하게 향연이 피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시각과 청각을 만족시켜준다고 해야할까.
향받침대(연잎형) |
향받침대(일본산) |
좋아하는 향을 하나 뽑아 향로(향받침대)에 꽂고 불을 붙인다. 잠시 향이 타오르는 모습을 지켜 본다. 회색빛 실오라기가 흩어지면서 향내가 퍼진다. 향 중에 최고라는 보림(寶林)은 비싸서 태울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좋은 향은 많다. 향나무를 깍은 향과 같다는 자향(紫香)을 사왔다. 옛날 생각이 나서 샀는데 어릴 때 맡았던 향내가 나지 않는다. 솔향이나 쑥향보다는 은은해서 좋기는 한데, 잔향이 약하다.
용향로
작업실 창문을 열고 향을 피운다. 여의주를 물려는 용들이 용틀임하며 향을 피어 올린다. 봄바람이 들어와 향내와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