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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광릉국립수목원(2회)

광릉수목원에는 소나무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종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몇 십년 된 소나무 밑에는 씨를 틔우는 어린 소나무가 보입니다. 옆에는 자신의 역할을 끝낸 삭정이가 보입니다. 새로운 생명과 퇴화되는 것의 공존을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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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속에 있다 봄을 맞아 새로운 생명은 잿빛 대지를 뚫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습니다. 칩엽수림이 우거진 토양은 황폐해진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반대로 활엽수림 속에 있는 침엽수는 빛을 받지 못해 고사하기 쉽습니다. 어린 소나무의 운명은 알 수 없습니다. 이 소나무가 씨앗을 틔운 곳이 침엽수 지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소나무는 씨앗을 틔우고 대지를 뚫고 나오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처절한 환경에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나무들이 봄꽃을 피우는 이유는 자기수종의 재생산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나무는 화려한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모을 수 있지만,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나무라고 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눈에 띠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다른 곤충들이 수정을 도와주지 않는 나무는 바람이 도와줍니다. 봄은 모든 생명이 번식하는 계절입니다.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화사한 색에 우리는 감탄하며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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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자연은 계절별로 다양한 색을 만들어냅니다. 가을이 생산활동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에 완숙한 색을 보여주는 계절이라면, 봄은 왕성한 생명활동을 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계절입니다. 사방이 꽃천지입니다. 눈이 부셔고개를 숙였더니 하얀 제비꽃이 보입니다.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수목들이 봄의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접사로 찍으니 꽃처럼 보입니다. 아니, 진짜 꽃입니다. 그런데 '꽃처럼'과는 동떨어진 모습에 잎이 솓아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꽃처럼 생기지 않은 꽃과 꽃이 아닌 움터오르는 잎, 정말 '꽃처럼'을 만족시켜주는 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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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에서 말했던 '왜색호현'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계단의 틈 사이에 피었습니다. 두 개의 줄기에 꽃이 피었던 것 같은데, 한 줄기는 사람의 발에 채였는지 꽃송이가 달려 있지 않습니다. 비탈진 계단에 만들어진 나무계단 사이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가로 놓여진 나무 아래에서 꽃을 피웁니다. 역시 화려한 색의 꽃에는 벌들이 날아 듭니다. 꽃이 벌을 부르는지, 벌이 꽃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우문(愚問)입니다. 서로가 원해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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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새가 사라졌습니다. 먹은만큼 빼러 갔습니다. 유식한 말로 '신진대사'라고 하지요. 군대에서는 '밀어내기 한판 승'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물은 먹기도 잘 먹어야 하지만, 부산물도 잘 빼내야 합니다. 빗새가 갔을 법한 난대 식물원으로 갔습니다. 난대(暖帶) 식물을 모아놓은 온십답게 실내로 들어가는 순간 후덥지근한 습기가 느껴집니다. 왼쪽에서 빗새가 밝은 얼굴로 나타납니다. 역시, 신진대사가 잘 되어야 한다니까! 편안한 빗새 얼굴 뒤로 새빨간 꽃이 보입니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이라 이름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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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네요. 애국가 화면에 나오는 무궁화가 아니라, 무궁화의 수많은 품종 중 하나인 '타이완 무궁화'입니다. 어떤 이는 하와이 무궁화가 최고로 예쁘다고 하는데, 그거야 꽃을 보는 사람의 주관아닌가요. 꽃은 다 예쁩니다. 대만 무궁화가 잎을 활짝 펼쳤을 때의 화려함이 궁금합니다. 우리 무궁화의 색은 강렬하지 않습니다. 연분홍빛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지정하고 별의 별 의미를 붙였습니다. '지지 않는 꽃(실제로는 한 가지의 꽃이 지면 다른 가지의 꽃이 핍니다. 이걸 지지 않는 꽃이라고 그럴듯하게 해석한 것입니다)이라 해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꽃' 혹은 '인내'와 '숭고' 운운하면서...... 꽃은 꽃일 뿐입니다. 어떤 꽃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려서 익숙해졌고, 어떤 꽃은 희귀해서 돈으로만 계산됩니다. 근대 네델란드 사람들의 튜울립 사재기는 후자이겠지요.

난대식물원에서 자라는 관목을 접사로 찍어봤습니다. 최근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어려웠던 '접사( )' 촬영도 기능 단추 하나면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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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접사 촬영에도 일종의 법칙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입니다. 무조건 대상을 가운데 화면에 배치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접사렌즈(일명 마이크로 렌즈)를 사용하면 화질의 손실없이 원하는 심도(일종의 주 대상 이외에 뒷 배경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즉 뒷 배경 화면을 날려버릴 것인지, 아니면 또렷하게 할 것인지 등을 조리개 값으로 결정하는 것)대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접사촬영법은 추후에 다루기로 하죠. 접사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구도입니다. 잎 모양의 반복적인 모습을 화면 가득 담는 것도 접사 촬영 구도 중의 하나입니다. 일종의 패턴을 이용한 추상적 문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오늘은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광릉수목원'은 다음회에 종료됩니다. 다음 회는 밀착된 화면에서 벗어나 시원한 화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