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산을 오르지 않고 있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설악산. 강원도와 인연이 적지 않아서일까?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설악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산불방지를 위해 설악산 주요 등산로의 입산이 금지되면서 설악산을 향한 마음을 접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있는 후배와 같이 가기로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가끔씩 가까운 산에 같이 오르는 친구를 꼬셨다. 당일산행만 했던 친구는 흔쾌하게 동의했다.
1박을 해야 하는 산행이라 나름대로 등산 경로와 준비물 등에 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장시간 걸어야 하는 경로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출발하기 전까지 계획한 것은 잠잘 곳과 등산 경로의 분기점 간 소요시간 계산 정도밖에는 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배낭도 1박2일로 다녀오기에는 적은 용량이어서 필요물품을 충분하게 챙길 수도 없었다. 일단 주식이 되는 밥은 설악산의 주요대피소에서 파는 햇반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배낭의 무게도 줄일 겸 준비하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설악산으로 들어가서 내려올 때까지 햇반과 신라면만으로 때워야했다.
당일 설악산소공원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9시 이전에는 서울에서 떠나야 했다. 최근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의 동홍천 나들목이 개통되면서 속초까지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5시간 정도 걸리던 예전과 비교하면 소요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속초터미널에 내리니 11시 30분이다. 그래도 속초에 왔는데 회를 먹어야 할 것같아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날 비가 오고 파도가 높아 횟감이 들어오지 않았단다. 시장 좌판의 아주머니께 물회하는 곳을 물었더니, 속초의 명물 회국수 집을 알려준다. 시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 택시로 이동했다. 친구는 회국수, 난 회덮밥을 먹었다. 생각보다는 평범한 맛이었다. 세꼬시(뼈채 썰어서 먹는 생선회)를 국수와 밥 위에 얹어서 내왔다. 뼈채 씹히는 맛은 괜찮았는데, 다른 맛에서 조화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삼척에서 자주 먹었던 물회가 생각났다.
식후경을 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설악동에서 종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속초 지리를 잘 아는 것처럼 기사아저씨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탔는데, 시외버스터미널이 보였다. 아뿔사, 다시 출발지점으로 회귀해버렸다. 길을 건너서 설악동 방향 버스를 기다려서 왔던 길을 거슬러 갔다. 영랑호와 대포항을 지나 설악동 방향으로 우회전하자 설악산이 눈에 들어왔다. 설악동에 내리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줄서서 입장하고 있다. 국립공원은 무료입장인데, 신흥사에서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강제징수하고 있다. 산행이 목적인 사람들은 신흥사을 둘러 보지도 않는데, 신흥사 땅을 밟는다는 이유로 돈을 받는다. 이곳이 아니면 지나갈 곳이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낼 수밖에 없다. 신흥사 관계자들 얼마나 부지런한지 새벽부터 나와서 징수한다. 예전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문화재관람료를 포함해 입장료를 받았는데, 새벽 일찍 설악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받지 않았다. 국립공원입장료의 무료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사찰에서 각종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문화재를 관람하지 않는 산행객에게도 징수한다.
소공원에 들어서니 울산바위로 향하는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학생들은 오른쪽에 있는 울산바위를 오을 것이다. 우리는 왼쪽에 있는 비선대를 향해서 움직였다. 비선대까지는 완만한 길이다. 오후 2시가 약간 지났다. 희운각대피소까지는 네시간 반에서 다섯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친구도 나도 사진을 찍으면서 오를 것이기 때문에 지도에 표시된 시간보다 더 걸릴 수도 있다. 일단 비선대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니 한산하다. 숲길의 왼편에는 권금성에서 화채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집선봉이 보인다. 집선봉과 소만물상(금강산의 만물상보다 규모가 작아서 붙여진 이름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이 보인다.
설악산 최고 절경인 천불동 계곡은 수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푸른 물이 흐르고 모여 옥색 못을 이룬 곳이다. 새벽까지 비가 내려 물이 많이 불은 느낌이다. 하얀 거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물살이 세어 보인다. 하얀 색 물살은 바위 틈을 벗어나면서 옥담(玉潭)으로 변한다. 하늘에는 이보다 짙은 신록이 역광으로 반짝인다. 봄이 봄같지 않았던 올해 날씨 탓에 5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신록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이를 행운이라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선대 가는 길에는 식당이 있다. 냉장고 대신 계곡물을 끌어들여 음료수를 냉각시키는 모습을 보니, 캠핑가서 계곡물에 김치통 담아놓았다가 떠내려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김치없이 느끼한 라면으로 연명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타박을 받았던 씁쓸한 기억. 그런데 이런 상황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주인의 막걸리 한 잔 하라는 소리에 마음이 동했지만, 갈 길이 멀고 험한지라 참았다.
이곳을 지나면 경사진 길이 나타나면서 좁아진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선대까지만 갔다 왔을 수도 있고, 더 높은 봉우리 혹은 능선에서 내려 왔을 지도 모른다. 어디까지 갔다 왔는지 모르지만 외국인들도 보인다. 최근에는 한류관광을 왔던 일본인들도 설악산 트레킹을 한다고 들었는데, 양폭으로 오르는 길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비선대에 도착했다. 반석(盤石) 위로 벽계수(碧溪水)가 흐르고,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계곡의 양쪽에 서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수통에 계곡물을 담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한 물인데, 생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을 담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 부류 중에 하나이다.
비선대에서 오세암과 백담사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마등령 길로 들어서야 한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천불동계곡의 중간지점인 양폭대피소로 가는 길이다. 비선대를 벗어나면 등산로는 더욱 좁아진다. 계곡 위로 놓여진 다리에 햇살이 신록의 틈 사이로 스며들어 청명한 느낌을 준다. 녹음이 짙어지기 전의 연록색 잎은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잠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처럼 신록은 짧게 반짝이고 진록(眞綠)의 녹음(綠陰)이 펼쳐질 것이다.
등산로 주변 습기를 머금은 바위에는 돌단풍이 한참 꽃을 피우고 있다.
최근 들꽃키우기가 유행하면서 약방의 감초처럼된 자생식물이다. 올 해 우리집 돌단풍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 잎만 무성하게 자라서 큰 줄기만 쳐줬다. 우리 땅 지천에서 피는 돌단풍이 아파트 베란다로 들어와서 자신의 생태를 잃어버린 것 같다. 이곳 돌단풍은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바위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리면서 생존력을 높였을 것이다. 깊은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수분을 공급받아 생명력도 강하다. 집에서 키우는 돌단풍은 자주 분무를 해줘도 야생에서 자라는 것같지 않다. 농장에서부터 비료를 먹고 모종으로 나온 재배종들은 자생력이 떨어진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지만, 다음 회에 계속합니다.
1박을 해야 하는 산행이라 나름대로 등산 경로와 준비물 등에 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장시간 걸어야 하는 경로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출발하기 전까지 계획한 것은 잠잘 곳과 등산 경로의 분기점 간 소요시간 계산 정도밖에는 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배낭도 1박2일로 다녀오기에는 적은 용량이어서 필요물품을 충분하게 챙길 수도 없었다. 일단 주식이 되는 밥은 설악산의 주요대피소에서 파는 햇반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배낭의 무게도 줄일 겸 준비하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설악산으로 들어가서 내려올 때까지 햇반과 신라면만으로 때워야했다.
당일 설악산소공원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9시 이전에는 서울에서 떠나야 했다. 최근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의 동홍천 나들목이 개통되면서 속초까지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5시간 정도 걸리던 예전과 비교하면 소요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속초터미널에 내리니 11시 30분이다. 그래도 속초에 왔는데 회를 먹어야 할 것같아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날 비가 오고 파도가 높아 횟감이 들어오지 않았단다. 시장 좌판의 아주머니께 물회하는 곳을 물었더니, 속초의 명물 회국수 집을 알려준다. 시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 택시로 이동했다. 친구는 회국수, 난 회덮밥을 먹었다. 생각보다는 평범한 맛이었다. 세꼬시(뼈채 썰어서 먹는 생선회)를 국수와 밥 위에 얹어서 내왔다. 뼈채 씹히는 맛은 괜찮았는데, 다른 맛에서 조화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삼척에서 자주 먹었던 물회가 생각났다.
식후경을 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설악동에서 종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속초 지리를 잘 아는 것처럼 기사아저씨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탔는데, 시외버스터미널이 보였다. 아뿔사, 다시 출발지점으로 회귀해버렸다. 길을 건너서 설악동 방향 버스를 기다려서 왔던 길을 거슬러 갔다. 영랑호와 대포항을 지나 설악동 방향으로 우회전하자 설악산이 눈에 들어왔다. 설악동에 내리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줄서서 입장하고 있다. 국립공원은 무료입장인데, 신흥사에서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강제징수하고 있다. 산행이 목적인 사람들은 신흥사을 둘러 보지도 않는데, 신흥사 땅을 밟는다는 이유로 돈을 받는다. 이곳이 아니면 지나갈 곳이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낼 수밖에 없다. 신흥사 관계자들 얼마나 부지런한지 새벽부터 나와서 징수한다. 예전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문화재관람료를 포함해 입장료를 받았는데, 새벽 일찍 설악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받지 않았다. 국립공원입장료의 무료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사찰에서 각종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문화재를 관람하지 않는 산행객에게도 징수한다.
집선봉과 소만물상, 강원도 설악산, 2010. 5. |
설악산의 신록, 강원도 설악산, 2010. 5. |
소공원에 들어서니 울산바위로 향하는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학생들은 오른쪽에 있는 울산바위를 오을 것이다. 우리는 왼쪽에 있는 비선대를 향해서 움직였다. 비선대까지는 완만한 길이다. 오후 2시가 약간 지났다. 희운각대피소까지는 네시간 반에서 다섯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친구도 나도 사진을 찍으면서 오를 것이기 때문에 지도에 표시된 시간보다 더 걸릴 수도 있다. 일단 비선대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니 한산하다. 숲길의 왼편에는 권금성에서 화채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집선봉이 보인다. 집선봉과 소만물상(금강산의 만물상보다 규모가 작아서 붙여진 이름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이 보인다.
천불동계곡 하류, 강원도 설악산, 2010. 5. |
비선대, 강원도 설악산, 2010. 5. |
설악산 최고 절경인 천불동 계곡은 수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푸른 물이 흐르고 모여 옥색 못을 이룬 곳이다. 새벽까지 비가 내려 물이 많이 불은 느낌이다. 하얀 거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물살이 세어 보인다. 하얀 색 물살은 바위 틈을 벗어나면서 옥담(玉潭)으로 변한다. 하늘에는 이보다 짙은 신록이 역광으로 반짝인다. 봄이 봄같지 않았던 올해 날씨 탓에 5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신록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이를 행운이라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선대 가는 길에는 식당이 있다. 냉장고 대신 계곡물을 끌어들여 음료수를 냉각시키는 모습을 보니, 캠핑가서 계곡물에 김치통 담아놓았다가 떠내려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김치없이 느끼한 라면으로 연명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타박을 받았던 씁쓸한 기억. 그런데 이런 상황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주인의 막걸리 한 잔 하라는 소리에 마음이 동했지만, 갈 길이 멀고 험한지라 참았다.
비선대에서 양폭으로 가는 길, 강원도 설악산, 2010. 5.
비선대에서 오세암과 백담사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마등령 길로 들어서야 한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천불동계곡의 중간지점인 양폭대피소로 가는 길이다. 비선대를 벗어나면 등산로는 더욱 좁아진다. 계곡 위로 놓여진 다리에 햇살이 신록의 틈 사이로 스며들어 청명한 느낌을 준다. 녹음이 짙어지기 전의 연록색 잎은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잠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처럼 신록은 짧게 반짝이고 진록(眞綠)의 녹음(綠陰)이 펼쳐질 것이다.
등산로 주변 습기를 머금은 바위에는 돌단풍이 한참 꽃을 피우고 있다.
돌단풍, 강원도 설악산, 2010. 5.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지만, 다음 회에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