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다녀 온 설악산 연재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지리산, 아니 덕유산 산행기를 먼저 공개한다.
당일 산행만을 다니던 친구를 꼬드껴 설악산을 다녀온 이후, 지리산 산행에 동행할 것도 꼬드꼈다. 이외에 지리산을 오르고자 했던 몇 사람을 더 꼬드꼈다. 결국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 사람은 나와 친구였지만...... 지리산 산행을 언제 했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5년도 더 된 것 같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않았기에 모든 산은 처음 가거나 혹은 언제 갔다 왔는지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용산역에서 전라선을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지만, 옛 기억을 떠올려 보니 초장부터 체력에 부칠 것 같아 포기했다. 해발 1,070m의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제대로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화엄사 계곡에서 시작해 대원사 계곡으로 가거나 혹은 반대의 경로로 진행해야 한다. 일단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고난의 3~4시간을 생략하면 종주를 향한 첫 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일본 출장을 다녀온 이후, 여독조차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리산 종주를 위해 용산역에 도착했다. 친구는 근무를 마치고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용산역 건물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2박3일 종주산행에 필요한 식료품을 구입했다. 6끼 분량을 기준으로 햇반, 즉석국, 컵라면, 기타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식품들을 구입했다. 만만치 않은 무게였지만, 지난 5월 설악산 산행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며 충분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계륵이 될 줄은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친구가 도착했다. 식량을 분할하고 배낭을 메려는 순간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너무 많이 샀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솝 우화를 떠올렸다. 22시 50분에 출발하는 여수행 전라선을 타고 구례구역에 오전 3시 23분에 도착햇다. 전주를 지날 무렵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쳐 부서졌다. 곡성을 지날 때부터는 어두운 밤에도 보일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졌다. 구례구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대부분은 우리처럼 지리산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구례구역 앞에 지리산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대기중이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새벽시간에도 시내버스를 운행한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다. 버스요금의 2배를 부르는 택시의 유혹을 뿌리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일단 구례터미널에서 20여분 쉬었다가 정각 4시에 성삼재로 출발한다.
성삼재로 오르는 길은 좁고 굽은 길이다. 건설 당시부터 환경파괴의 멍에를 짋어지고 있는 길이다. 일부 등산객들이 화엄사에서 내렸다. 운이 좋았는지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가 굽이굽이 돌면서 멀미 기운도 함께 왔다. 성삼재 도착 직전에 버스운전사는 매우 친절하게 안내방송을 했다.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어린이도 어른 요금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 요금을 빼고는 아무런 반감이 없었다.
성삼재, 전라도 지리산, 2010. 7.
드디어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주차장 옆에 있는 휴게소로 이동했다. 이미 실내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야간산행을 금지해서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구례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우리보다 먼저 성삼재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지리산 전역이 호우주의보때문에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통제가 해제되어야만 노고단으로 갈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30분쯤 기다리고 있었을 때부터 등산객을 태우고 온 택시운전사들이 구례까지 버스값만 받겠다고 호객을 했다. 몇몇 사람이 움직였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통제가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1시간, 2시간이 지났다. 비는 가늘어졌다가도 거센 바람과 함께 굵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성삼재에 새벽 4시 40분쯤 도착했는데 벌써 6시 반이다. 입산통제는 해제될 기미조차 없었다. 친구에게 입산 통제상황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달라고 전화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공단 후배와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상황을 알리고 통제상황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기다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콜밴기사도 와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성삼재에서 내려다 본 구례읍, 전라도 지리산, 2010. 7.
7시쯤 되니 주름문이 내려졌던 휴게소 매장들이 영업준비를 하느라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한 분들도 상황을 알 수없다고 한다. 7시 반쯤 공단 후배가 전화로 비관적인 상황을 알려주었다. 입산통제는 오후에나 해제될 것 같다는.... 친구도 메시지를 보고 전화해서 기상청의 기상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제 대기와 하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만약 7시 50분 무렵 노고단까지 입산을 허용하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아쉬움을 달래며 구례로 하산했을 것이다.
노고단까지는 좁은 등산로가 아닌 비포장 도로라서 입산을 허용한 것 같았다. 친구는 노고단대피소까지 가서 상황을 보자고 했다. 다음 계획에 대한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가기로 하고 배낭을 다시 꾸렸다. 휴게소를 나와 노고단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상의는 우의를 입어서 속옷까지 젖지 않았지만, 바지가 젖으면서 빗물이 등산화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고어텍스 등산화는 아쿠아슈즈로 변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양말은 맹꽁이 배처럼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었다. 만약 날씨가 좋았다면 6시쯤 이곳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지금쯤은 임걸령까지 갔을 것이다. 산행 계획애서 3시간 정도 차질이 생겼다. 그래도 지금 통제가 해제된다면 벽소령대피소까지는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노고단대피소에서 2시간 정도 대기했지만 통제를 해제한다는 낌새조차 없었다. 11시 무렵 종주를 포기하기로 했다. 통제가 풀리더라도 비를 맞으며 벽소령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다. 일단 구례로 내려가서 차후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대성리에서 벽소령대피소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지 모색하기로 로 했으나, 우리를 구례까지 태워준 분은 그곳도 비때문에 통제되어서 오를 수 없다고 한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이제 질퍽거리는 등산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대체 산행지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상황을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등산객을 성삼재로 태우고 간 버스운전사나 택시기사들의 상업성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들이 날씨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해도 성삼재까지 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행의 선택은 전적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정확한 정보를 구례구역이나 구례터미널에서 제공했다면 혼란을 겪지 않았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휴가를 이용해서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던 친구나, 나나 아쉬움이 산행포기에 대한 아쉬움이 컸었나 보다. 가장 가까운 산이 떠올랐다. 덕유산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거리상으로는 지리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지만, 대중교통으로 이용해서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는 고난의 경로였다. 특히 배낭에 짊어진 2박 3일치의 식량이 고통을 배가시켰다.
구례구역에서 15시 20분쯤 떠나서 숙소인 무주리조트까지 7시간을 이동했다. 차를 타고 있는 시간보다 다음 차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게다가 친구는 멀미까지 했다. 제대 직후 떠났던 전국일주 여행이 생각났다. 그리고 보니 다시 시작한 산행처럼 배낭메고 걸어서 여행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 싶었지만, 무거운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준비한 식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 산행을 생각할 틈도 없이 피로가 엄습했다.
지리산의 아쉬움을 달랜 덕유산 산행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