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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화북평원을 지나며 장쑤(江蘇省), 안후이(安徽省), 산둥(山東省 ) 일대에 펼쳐진 화북평원(華北平原)을 고속철도를 타고 지난다. 중국문명의 젖줄 황하는 관중평원(關中平原)과 화북평원의 경계인 함곡관(函谷關)을 지나서 드넓은 황토지대를 이곳에 만들었다. 칭하이성(靑海省) 쿤륜(崑崙) 산맥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관중지방의 황토를 끌고 와서 화북의 평원에 퍼뜨린다. 협곡 지대인 함곡관을 빠져나와 동쪽을 향해 흐르는 이 강은 생명의 강이자 문명의 강이다. 고대 이곳에서 터전을 일구던 화하족(華夏族)의 생명수였다. 한족의 뿌리인 화하족은 불어난 물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홍수를 막기 위한 치수사업을 통해 황화문명을 이루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황하 하류의 물줄기는 유동적이었다. 홍수가 나면 원래의 물줄기를 벗어나 새로.. 더보기
[도봉산] 초겨울 우이암 오랫만에 친구와 산행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여덟 달만인가 보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정신없는 가을을 보냈다. 두 달동안 직무교육 받느라 몸이 근질근질했던 친구는 산에 가자는 내 말에 흔쾌히 동의하며서도 반신반의했다. 번번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런 저런 일로 혼란스러워 설악산을 갔다 오기도 했지만, 정작 친구와 같이 하기로 했던 산행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4월 진달래 피던 다락능선을 탄 이후 몇 번 산행 약속을 지키지 못했더니 타율이 엉망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간다고 약속을 하고 몇 시간 못잔 상태에서 도봉산역으로 갔다. 몇일 전부터 두통이 심해지면서 속까지 메슥거렸던 몸 상태가 조금 걱정되었지만,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도봉산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보.. 더보기
[도봉산] 보문능선에서 헤매다 도봉산 매표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보문능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겹겹이 다져진 눈길을 오랫만에 걷는다. 지난 일요일에도 적지 않은 눈이 내렸지만, 길 가운데는 차와 등산객들의 발길에 다져져서 단단하다. 올해 처음으로 하는 산행에서 눈 덮인 산길을 걸으니 기분도 좋다. . 언제 봐도 능원사의 금색 단청은 촌스럽다. 게다가 용마루에 얹은 금시조(金翅鳥)는 근원도 없는 짬뽕 미학의 상징이다. 인도신화에서 우주의 수호자 비슈누를 태우고 악령을 퇴치하는 가루다(迦樓羅, 금시조의 원형)의 의미를 살리려고 한 듯 새 위에 부처(아래에서 쳐다 봐서 어떤 부처인지 잘 안 보인다. 이 절이 미륵불을 모신다고 하니 미륵불이겠지)와 화관을 쓴 관세음보살이 앉아 있다. 금시조가 아니라 봉황 또는 수탉처럼 느껴지는 이 새의 날개.. 더보기
'울렁 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가 아닌 새해 첫날부터 길 떠날 짐을 꾸린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싸돌아 다니는 나에게 "역마살이 낀 놈"이라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역마살이 낀 인생을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짐을 꾸려야 할 일이 많았다. 짐꾸리기도 이력이 붙나 보다. 짧은 시간에 짐을 꾸리고 빠진 것이 없나 생각해 본다. 막상 비행기타고 나면 챙기지 않은 물건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지에서 사서 쓰는 수밖에 없다. 여행을 잘 다니려면 현지 물건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자주 출장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두 개의 트렁크를 준비하다고 한다. 출장지에서 돌아와서 다른 곳으로 바로 가야 하니까..... 그들처럼 살지도 않는데 나도 그들만큼 짐을 꾸렸던 시절이 있었다. 일주일에 사흘은 짐을 꾸리고 풀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짧은 시간 안에 .. 더보기
[북한산] 비봉능선을 오르다 지난 주 산행에서도 약속한 시간보다 늦었는데 이번에도 20분이나 늦었다. 불광역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친구에게 미안했지만 어떤 말로 변명해도 구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냥 웃음으로써 미안한 내 마음을 표현했다. 친구와 산행을 같이 한지도 일년째이다. 친구의 꼬임에 빠져 산에 오르지도, 산이 나를 불러서 오르지도 않지만 한 번, 두 번 오르다 보니 벌써 북한산에 열 번 넘게 갔다. "소싯적에~"과 관련된 산의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등산 안내지도에 적힌 시간대 안으로 목표점에 도착했었던 기억, 무거운 장비를 메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풍떨던 기억, 겨울산이 좋아 갔다가 낙오 직전에 정상을 포기하고 돌아섰던 기억 등을 지우기로 했다. 그렇다고 비장한 각오로 산행을.. 더보기
[북한산] 산행 재시작 1주년 기념 산행-원효봉에서 위문으로 소싯적에 산 좀 다녔다고 자만만 했던 나의 총체적 부실함을 적나라하게 체험했던 것이 벌써 작년이다. 그 일 이후로 십년도 넘게 중단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도 교대제로 일을 하는 친구가 있어 산행은 외롭지 않았다. 가끔씩 산행 동료가 바뀌는 경우는 있어도 대부분의 산행은 그 친구와 함께 한다. 친구는 쉬는 날만 되면 혼자 또는 직장 동료들과 서울 인근에 있는 산에 오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북한산 의상능선을 탔다. 작년 저질 체력의 나를 끌고 참담한 결과를 목격했던 친구와 일주년 기념(?) 산행을 했다. 작년과 같이 일곱 개의 봉우리를 넘어 대서문에서 구기동 계곡으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와 약속에 없었던 저녁을 한 편집장과 함께 했다. 친구와 한 편집장은 이십여 년만에 조우했다. 나를.. 더보기
[덕유산]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3) 향적봉에서 구천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수월하다. 설천봉까지 기계를 타고 온 터라 비만 오지 않는다면 쾌적한 산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등산보다는 하산 과정이 더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왠지 힘이 덜 들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향적봉은 정상의 암석 지대를 제외하고 관목 지대와 초지를 보호하기 위해 목조 구조물을 설치한 곳이다. 아마도 다른 국립공원 봉우리들처럼 온전히 걸어서 올라야만 하는 곳이라면 이렇게까지 보호막을 설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까지 곤돌라를 타고 와서 향적봉까지 산책 삼아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향적봉에서 중봉을 거쳐 구천동 계곡으로 내려가려고 생각했는데, 정상에 짙게 낀 운무 때문에 백련사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중봉으로 가고 .. 더보기
[덕유산]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2)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지리산에서 덕유산 가자고 꼬드낀 죄책감때문이었을까? 무주리조트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날씨가 걱정되었다.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으로 오르는 곤돌라를 타고 정상인 향적봉에 오르리라 생각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곤돌라는 운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쩔까? 말로는 곤돌라 운행 안 하면 그냥 집에 가자고 했지만, 지리산 종주도 못한 판에 여기도 포기하고 갈 수 있을까? 무주리조트의 아침이 밝았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려 했으나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굽이굽이 돌아오느라 힘들었나 보다. 이런 날은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덥혀야 하는데,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또 즉석밥과 컵라면으로 한끼를 때웠다. 정말, 이건 때우는 거다. 체크아웃 시간에 임박해 방을 나섰다. 리조트 내의 숙소에서 .. 더보기
[덕유산]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1) 5월에 다녀 온 설악산 연재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지리산, 아니 덕유산 산행기를 먼저 공개한다. 당일 산행만을 다니던 친구를 꼬드껴 설악산을 다녀온 이후, 지리산 산행에 동행할 것도 꼬드꼈다. 이외에 지리산을 오르고자 했던 몇 사람을 더 꼬드꼈다. 결국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 사람은 나와 친구였지만...... 지리산 산행을 언제 했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5년도 더 된 것 같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않았기에 모든 산은 처음 가거나 혹은 언제 갔다 왔는지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용산역에서 전라선을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지만, 옛 기억을 떠올려 보니 초장부터 체력에 부칠 것 같아 포기했다. 해발 1,070m의 성삼재.. 더보기
[설악산] 늦봄, 설악산을 오르다(2) 천불동 계곡은 V자 형태의 협곡이다. 계곡 사면은 매우 가파르다. 하늘을 향해 뻗은 바위가 아래로 쏟아질 듯 가파른 곳에 백송 한 그루가 우뚜하게 서있다. 소나무의 표피가 흰색이라 백송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적송의 돌연변이같다.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백송의 흰색 껍질은 두껍지 않으면서 물고기 비늘처럼 생겼는데, 이 소나무는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적송인 것으로 봐서는 백송은 아닐 것이다. 천불동 계곡을 따라 양폭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등산로의 대부분을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서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계곡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공기는 몸의 열기도 식혀준다. 계곡 한 편에는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왼쪽 화채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