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리조트 곤돌라, 전북 무주, 2010. 7.
무주리조트의 아침이 밝았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려 했으나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굽이굽이 돌아오느라 힘들었나 보다. 이런 날은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덥혀야 하는데,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또 즉석밥과 컵라면으로 한끼를 때웠다. 정말, 이건 때우는 거다. 체크아웃 시간에 임박해 방을 나섰다.
리조트 내의 숙소에서 곤돌라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무게를 줄이겠다고 한끼도 안 사먹었건만,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은 여전하다. '곤돌라마저도 운행하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설천봉으로 오르는 곤돌라 탐승구까지 갔다. 아뿔사! 꼭대기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곤돌라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정상적으로 운행은 하나 보다. 산은 걸어서 올라야 한다는 신념 아닌 고집을 갖고 있었지만, 고단했던 어제의 여정을 핑계삼아 곤돌라에 몸을 맡겼다. 스키 슬로프 옆으로 등산로가 보였다. 이걸 안 탔으면 저 길로 올랐어야 한다. 이길은 등산로라기 보다는 슬로프 관리를 위한 길이다. 덕유산 산행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무주리조트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경로로 오르는 사람들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 향적봉을 산책하듯이 갔다가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온다.
곤돌라 안에서 본 무주리조트, 전북 무주, 2010. 7. |
덕유산 설천봉, 전북 무주, 2010. 7. |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의 길은 잘 조성된 산책로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나마 생태계 보호하겠다고 목조 구조물을 설치했다. 사람들이 땅을 밟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구조물들은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겠다고 설천봉 주변의 수백년 된 주목들을 옮겨심으면서까지 만든 것이다. 당시에 비판 여론이 많았지만 국제적인 행사 유치하면 선진국이라도 되는줄 아는 멍청이들이 산을 다 조져놨다. 10여 년만에 다시 온 설천봉에는 그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사목 군락이 없다. 듬성듬성 몇 그루만이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설천봉 정상에 설치된 리조트 시설에 옷걸이처럼 삐죽하게 솟아 있는 것과 설천봉 주변에 몇 그루 정도만이 남아서 '죽어서 천년'을 지키는 것처럼 외롭게 서있었다.
설천봉 정상, 전북 무주, 2010. 7. |
설천봉 휴게소 내 고사목, 전북 무주, 2010. 7. |
설천봉-향적봉, 전북 무주, 2010. 7. |
그래도 운무에 싸인 덕유산은 아름다웠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목조 구조물로 된 산책로로 가야 한다. 향적봉까지는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설천봉까지 곤돌라로 올라온 사람들은 산책삼아 간다. 곤돌라가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까지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목조 구조물을 고육지책으로 설치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다 보면 주변 생태계는 씨도 안 남을 정도로 황폐해진다. 결국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출입이 막아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국립공원 여러 등산로에서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사람이 드나들지 않게 되면서 생태계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 그나마 이 방법이 차선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재개방하는 것을 보면 정말 차선일 뿐이다. 산을 사랑하면 산에 가지 말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
설천봉 고사목, 전북 무주, 2010. 7. |
설천봉-향적봉, 전북 무주, 2010. 7. |
운무(雲霧)와 운해(雲海)의 차이는 무엇일까? 구름 속에 있으면 운무만 보일 것이고, 구름 밖에 서면 운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운해를 보기 위해서는 운무를 통과해서 가야 하는데, 온몸에 끈적끈적한 습기가 들러 붙는다.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은 활엽수림의 넓은 잎들이 굴을 만들고 있다. 마침내 빛이 보였다. 그렇지만 구름을 뚫고 위로 솟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향적봉에도 구름을 이루는 수증기들이 펑퍼짐하게 퍼져 있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덕유산 향적봉, 전북 무주, 2010. 7. |
덕유산 향적봉, 전북 무주, 2010. 7. |
나도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바위를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눈 앞에서 잠자리들이 이곳까지 편하게 올라온 나를 비웃듯이 날아 다녔다. 아찔한 낭떠러지와 바위 위를 곡예비행하듯 올라와 유유히 풀밭으로 날아갔다. 친구는 운무 속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사진기에 담고 있다. 북한산에서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명을 달리한 똑딱이를 대신한 명기를 들고....
덕유산을 갔다 온지 40여일이 지나서야 2회를 작성했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빠른 시간 안에 3회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