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餘齋(三味書屋 內), 중국 씨아오씨응(紹興), 2011. 01.
하여간 무진장 춥다. 책 좀 보겠다고 책상머리에 앉았는데 의지와 달리 몸은 고슴도치 등처럼 움츠려들고 있다. 보일러는 돌아가고 있는데 실내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유리창 쪽으로 노출된 몸쪽부터 뻗뻗해지고 있다.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면 온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최근에 사온 녹차를 우려냈다. 신선한 녹차향과 쌉쌀한 듯 고소한 맛이 좋다. 그런데 두 번째 우려낸 차맛이 쓰다. 세 번째 우려낸 차맛도 같은 느낌을 준다. 추워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더니 미각도 떨어지나 보다. 여러 겹으로 옷을 입었는데도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었지만 가방을 챙겼다. 도무지 정신이 집중되지 않는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꼼지락거림조차도 싫다. 뒷골에서 부러진 대나무 가시처럼 신경이 곤두선다. 한나라의 문인 동우(董遇)는 겨울과 밤, 비오는 날에도 쉬지 않고 책을 읽다보면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 고사에서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말이 생겼다. 冬者歲之餘(동자세지여), 夜者日之餘(야자일지여), 陰雨者時之餘(음우자시지여)라 했다('겨울은 한해의 남은 시간이고, 밤은 하루의 남은 시간이며, 궂은 비는 계절의 남은 시간'을 가르킨다).
글쓰기가 밥벌이 수단이자 목적인 나에게 책읽기는 '독서삼여'의 시간까지도 쥐어 짜내야 하는 시간일 때가 많다. 그런데 실제 내 생활은 그렇지 않다. '동우(董遇)'가 말한 '독서삼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낮과 밤,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을 가리지 말고 책을 읽으라는 경계(警戒)의 말이다. 오히려 나는 '삼여'가 아닌 시간에는 빈둥거리다, '삼여'가 되면 책읽기를 시작한다. 돌아다니지 않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도 되는 겨울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익숙해진 올빼미 생활로 낮보다 밤을 좋아 하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보다 서늘하게 내리는 비를 좋아하니 '독서삼여'를 즐길 성질은 갖추었나 보다.
그러나 올 겨울은 너무 춥다. 독서삼여(讀書三餘)를 즐기기에는 너무 가혹한 계절이다. 추위도 잊는 독서삼매경에 빠지지 못하고 있다(빠진 때가 있기는 했나). 따뜻한 구들목에 눕고만 싶다. 지금도 무릎팍이 시려 온다. 점점 난시가 심해지면서 밤에 책보는 시간도 점점 줄고 있다. '삼여(三餘)'에서 '이여(二餘)'를 잃고 있다. 그나마 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책읽던 여유는 지켜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