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올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도 '기상청은 구라청'이라고 무시했더니 사단이 났다. 저녁먹고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눈내리는 캠퍼스의 낭만을 얘기했는데, 강의를 마치고 창밖을 보니 심상치 않다. 함박눈이 펑펑!
차를 놔두고 갈까 말까 생각하는 동안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낮부터 내렸으니 제설작업이 되었겠지 생각하고 차를 몰고 나왔다. 대학원 주차장 입구에 쌓인 눈을 보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학교를 가로지르는 가온로에 접어들었다. 가온로가 스키 활강장처럼 보였다. 아랫쪽을 보니 비상등을 켠 차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앞차를 들이 받고 서 있는 차, 과속방지턱에 걸려 겨우 서있는 차, 안미끄러지려고 이러 저리 핸들을 꺽고 있는 차, 방향을 겨우 돌려 반대편 차로로 올라가려고 굉음을 내고 있는 차.....
학교를 가로 지르는 가온로(폭설이 오면 거대한 활강장처럼 변한다)
이미 큰길에 들어선 내 차도 예외는 아니다. 어라! 정지 상태인데도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운전대를 좌우로 움직이며 미끄러지는 속도를 줄이려고 기를 써본다. 다행히 과속방지턱에 걸렸다. 대로 중앙에 멈춰섰으니 뒤차가 들이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D상태에서 1단으로 변속을 하고 운전대를 좌우로 돌려 가며 길 가장 자리에 세웠다. 그래도 불안해서 사회과학관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체인을 감아야만 정문까지 내려갈 수 있겠다. 강원도 대학에 출강할 때는 익숙한 장비였는데 이제는 매우 낯선 느낌을 준다. 꼬인 쇠사슬을 풀어서 바퀴에 건다. 쇠사슬 체인을 바퀴에 감는 과정은 편리하지 않다. 옛날 방식 그대로이다. 그래도 눈길에서의 미끄럼 방지 효과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바퀴에 체인을 감고 있는 동안에도 대로에서는 활강해서 내려온 차들이 앞 차를 들이 받고 있다. "쿵", "쿠쿵". 체인을 감고 차를 움직여 본다. 미끄러지지 않고 제동도 잘 된다. 이제 안심이 된다. 눈발이 조금 약해졌다. 대로 위에서부터 제설차량이 눈을 밀고 내려오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차들이 추돌로 멈춰 선 길 위에 염화칼슘을 뿌린다. 추돌 차량 운전자들은 열불이 나겠다. 어쩌랴! 조급한 마음에 차를 몰고 나왔으니 누구 책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체인을 감고 죽전 삼거리까지 내려왔다. 큰길의 눈은 다 녹아서 체인을 다시 풀었다. 감고 풀고 하는 일이 번거롭기는 했지만 체인이 있어서 위험한 구간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 눈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도 차를 몰고 나오다니...... 눈발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어도...... 이미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래도 대관령을 넘나 들던 습관이 나를 지켜줬다.
요즘에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의 보험료가 할증된다고 하던데, 학교를 기본 주소로 하면 안되겠다. 눈이 오면 정문에서 미술관까지 이어진 가온로가 거대한 스키 활강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