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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의 세상

[사진전] 손봉희 사진전-SOULSCAPE the Geumgang pine의 발문-우리들 의식의 원형(原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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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희 사진전-SOULSCAPE the Geumgang pine, 2011.03.17~24. 강릉문화예술관 대전시장.


모든 게 귀했던 시절에는 나무도 귀했다. 특히 소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흔하게 볼 수 있고 쓰임새도 많았지만, 함부로 벨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사람의 출생과 죽음의 의식에 소나무를 사용했고, 한 평생을 머무는 집도 소나무로 뼈대를 세웠다. 아들의 출생을 알리는 금줄에 솔잎을 썼고, 사람의 주검은 소나무 관에 안장했고, 집의 기둥과 대들보도 소나무를 썼다. 이처럼 소나무는 한 사람의 생애와 같이 했고, 대를 잇는 가문의 보호막이기도 했다.

소나무는 우리 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였던 만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했다. 우리 민족은 강한 생명력과 상록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소나무를 친숙하면서도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푸름을 상징하는 소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교의 상징으로 수용되어 산신도의 신단수(神檀樹)가 되었다. 또한 길흉화복을 주관하고 집을 지키는 가신(家神)인 성주신이 소나무로 만든 대들보 위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소나무가 신화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우리 땅 어느 곳에서도 쉽게 소나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소나무로 비유했다. 단종을 향한 자신의 충절을 ‘낙락장송’에 빗대어 노래했던 성삼문이 그랬다. 「오우가」를 노래한 윤선도도 소나무를 변함없는 절개의 상징으로 노래했다. 그는 유배에서 풀려 난 이후 자신의 정신을 다섯 가지 사물에 비유해서 표현했는데, 소나무가 벗이 된 이유를 변하지 않는 푸름에서 찾았다. 문인들은 노래 이외에도 그림 속에 소나무를 그려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현했다. ‘세한도(歲寒圖)’의 ‘송백(松柏)’을 통해 고통스런 유배 생활에서도 지조를 지키려는 의지를 표출했던 김정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와 달리 단원은 진경산수화인 금강산 화첩과 관동팔경도에서 꼿꼿이 서있는 백두대간의 소나무를 표현했다. 특히 그는 후기 금강산화첩에서 금강송의 특성을 간결한 필치로 표현했다. 오늘날 백두대간 산자락에 곧추 서 있는 소나무의 음영은 단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나무를 닮았다. 실사(實寫)의 방법을 추구하되, 간결하게 이미지를 표현한 그의 그림은 사진의 실루엣 기법을 닮았다. 절학송폭도(絶壑松瀑圖) 속 소나무는 밑동도 없고 줄기 끝도 없다. 중간을 뭉텅하게 치고 가지와 솔잎을 그렸다. 곧게 떨어지는 폭포수와 소나무의 굽은 줄기가 대칭을 이루는 간결한 구도는 그의 화풍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은 사물의 표징을 드러내기 위해 피사체의 일부만을 표상화하는 오늘날의 사진 구도와 유사하다. 소나무 주변의 군더더기를 생략함으로써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손봉희의 금강송 사진도 단원의 그림과 닮았다. 그는 백두대간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과 땅을 이어준 금강송의 면면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금강송의 전모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의 앵글은 금강송의 일부만을 포착했고, 자신이 담고자 한 이미지를 표출했다. 이를 통해 그는 백두대간의 금강송에 내포된 문화적 의미를 재현했다.

그는 금강송을 통해 옛 문인들이 표현한 정신세계를 드러내며, 유구하게 이어진 우리 민족의 신앙을 보여 주며, 문명의 침해를 받지 않는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다. 그의 사진은 북풍한설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지조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개를 담고 있다. 금강송에 입힌 줄은 우리들 의식의 원형(原型)이다. 그의 사진에는 비스듬하게 화폭을 가로지른 금강송 줄기의 강직함만 있지 않다. 선 굵은 줄기에서 갈라져 내린 가지의 솔잎은 부드럽게 먼 산과 들녘을 포용한다. 그는 금강송을 통해 회의(懷疑)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금강송 아래 흔들리는 풀들이 변덕스런 인간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면 굳건하게 서있는 금강송은 변치 않는 기상(氣像)이다. 덩굴져 금강송을 타고 오르는 풀의 모습을 통해 나약한 우리 내면을 반추해 본다.

그는 숲 속과 숲 밖을 넘나들며 금강송에 내포된 이미지를 담았다. 그가 담은 금강송은 한 곳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란 나무들이다. 그 나무들은 우리 민족의 삶을 닮았다. 농경민족이 한 곳에서 대를 이으며 살아가듯이 손봉희의 사진에 등장하는 금강송도 처음 뿌리를 내린 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의 사진은 산업사회 이후 잊어버린 우리의 원형을 떠오르게 한다. 인고의 세월을 이겨 내고 그의 시선에 포착된 금강송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우리의 모습과 대비된다. 장구한 세월을 살아 온 흔적을 오롯이 담은 채 서 있는 금강송 사진을 보면서 햇살을 등에 받고 선 백두대간 금강송의 무채색 음영을 떠올려 본다.


강릉에서 활동하는 손봉희 선생님의 사진전 도록에 실은 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