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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도봉산] 초겨울 우이암


도봉산 주봉들, 서울 도봉산, 2011. 12.

오랫만에 친구와 산행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여덟 달만인가 보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정신없는 가을을 보냈다. 두 달동안 직무교육 받느라 몸이 근질근질했던 친구는 산에 가자는 내 말에 흔쾌히 동의하며서도 반신반의했다. 번번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런 저런 일로 혼란스러워 설악산을 갔다 오기도 했지만, 정작 친구와 같이 하기로 했던 산행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4월 진달래 피던 다락능선을 탄 이후 몇 번 산행 약속을 지키지 못했더니 타율이 엉망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간다고 약속을 하고 몇 시간 못잔 상태에서 도봉산역으로 갔다. 몇일 전부터 두통이 심해지면서 속까지 메슥거렸던 몸 상태가 조금 걱정되었지만,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도봉산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보문능선으로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은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  '괜히 산행에 나섰나'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가는 친구에게 천천히 가자며 속도를 늦췄다. 뒤에서 따라 오는 이들에게 길을 양보했다. 할아버지들, 아줌마들이 앞질러 간다. 짧은 보폭으로 신속하게 오르는 모양을 보니 자주 산에 오는 사람들이다. 쉬고 싶었지만 참는다. 1월 중국출장을 다녀온 직후에도 이곳을 오르면서 힘들어 했는데...... 산행을 하다 보면 부실한 내 몸의 상태를 알게 된다. 건강하겠다고 나선 산행에서 건강하지 못한 내 몸을 알게 되니 자각증상을 느끼기에 이만한 것도 없다.       

나목, 서울 도봉산, 2011. 12.

은빛 나뭇가지들이 반짝인다. 봄 여름 가을 동안 나무를 살찌웠던 잎파리들이 떨어진 자리가 허전하다. 파란 하늘을 빗금치듯 뻗어 나간 가지들은 혹한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는 몇 겹의 서리와 눈을 어깨 위에 견장처럼 얹으면서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야생의 나무들은 인간의 손을 타는 조경수와 달리 스스로 채비를 한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낸 나무만이 다시 봄을 맞이하며 왕성한 생명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평소보다 많은 땀이 흐른다. 마른땀까지 섞여서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자를 쓰고 있는데도 틈으로 땀이 새어나온다. 머리의 땀샘이 남들보다 많은가? 운동을 하다 보면 유난히 머리 쪽에서 땀이 많이 난다. 그래서 머리띠는 필수 소품 중 하나이다. 잠시 쉬면서 머리띠를 꺼내 묶을까 생각했지만 쉬면 더 힘들 것 같아 계속 걸었다.
 
드디어 천진사 옆 봉우리에 도착했다.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친구가 커피를 타서 준다.. 카제인나트륨을 넣지 않은 커피라는 말을 하면서....... 평소에는 원두커피를 정량대로 진하게 추출해 갖고 와서 친구를 고문(拷問)했는데, 진한 커피로 친구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보문능선으로 오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한 번 휴식한다. 도봉산 입구에서 느리게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은 도봉주능선 갈림길에서 쉬겠지만 여기에서 숨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봉과 오봉능선, 서울 도봉산, 2011. 12.

우이암, 서울 도봉산, 2011. 12.



잠깐 동안 쉰 것이 보약이 되었나 보다. 이제 머리 아픈 것도 멈추고 몸도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코에 산바람 들어가니 좋냐'던 아내의 문자메시지가 생각났다. 역시 '난 역마살이 꼈나봐?' 싸돌아 다니면 아프던 것도 멈춘다. 나무 사이로 도봉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보인다. 선인봉 주위 소나무 머리에 어제 온 눈이 얹혀 있다. 강원도 산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그곳보다 기온이 높은 이곳에서 제대로 된 눈구경을 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멀리 천마산과 명성산 꼭대기에도 하얗게 눈이 쌓였지만,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된서리맞은 떡갈나무 잎, 서울 도봉산, 2011. 12.

이끼와 낙엽, 서울 도봉산, 2011.12.

이끼, 서울 도봉산, 2011. 12.



미처 잎을 떨어뜨리지 못한 채 된서리를 맞은 나뭇잎이 하얗게 변했다. 아름다운 비행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운명. 바람에 날린 나뭇잎들 옆에 있는 바위 이끼도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수분을 머금고 아직 초록빛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놈들도 있다. 따뜻한 햇볕을 받는 바위 위의 이끼는 여전히 푸르다. 이끼는 봄에 새순을 내밀 때가 제일 예쁘다. 겨우 내내 바닥에 엎드려 검게 변한 이끼가 연두색 새순을 내밀며 신록의 색을 바위 위로 도포(塗布)할 때 산은 꽃천지로 변한다. 

단풍잎 모자(혹은 모녀), 서울 도봉산, 2011. 12.

뿡뿡카 돌이끼, 서울 도봉산, 2011. 12.


어미 단풍잎과 새끼 단풍잎 한 쌍이 언젠가는 이끼로 덮일 바위 위로 쓸쓸하게 유영(游泳)하고 있다. 누가 선두에 섰는지는 알 수 없다. 오징어처럼 꽁무니를 머리로 본다면 어미가 앞서 가는 것이겠지만, 나뭇가지에 눌린 어미는 자기 몸 가누기도 버거워 보인다. 바람이라도 불면 이산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그늘진 바위 표면에 도롱뇽 모양의 돌이끼가 뿡뿡카처럼 방귀를 내뿜으며 달아나는 모양으로 붙어있다.

우이남능선에서 본 서울, 서울 도봉산, 2011. 12.

우이암에서 우이령으로 가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친구는 도봉주능선길이나 오봉을 가고 싶어했지만, 내 부탁을 들어줬다. 가보지 않았던 우이남능선 길을 타보고 싶었다. 무수골 입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자 한산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북한산과 도봉산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말에 일방통행까지 시행할 정도이니....... 사람들이 적은 평일에 산을 오를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해야되나?


조용한 산길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에서 라디오을 크게 틀고 오는 아줌마가 보였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개념없는 등산객들을 흔하게 만난다. 혼자 다니는 산행이 심심하기는 하겠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이어폰을 끼고 다녔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하루 종일 TV소리에 찌들었을 텐데 산에서라도 고요함을 즐겼으면 좋겠다.   

언덕 위로 기어 올라간 친구는 사진삼매경이다. 이 길로 오자고 할 때는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짓더니 풍경을 담기에 바쁘다. 하이엔드급 디카를 두 개나 들고 다니는 친구의 산행은 항상 바쁘다. 광각 전용, 망원 전용으로 두 대의 디카를 갖고 다니는 친구는 산행 틈틈이 용도에 맞는 카메라를 빼내기에 바쁘다. 바쁜 만큼 좋은 사진도 많이 담아라. 흐린 하늘을 등지고 서서 사진을 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그럴 듯하여 잠시 자세를 취해보라고 요구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응하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더니.......

하이엔드급으로만 산사진을 찍은 나의 산행 친구, 서울 도봉산, 2011. 12.


우이남능선 길에는 마애불(磨崖佛)이 있다. 아니 마애불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의 윗모습이 여성의 가슴을 닮았다고 해서 '꼭지바위'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래의 넓적하게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모양까지 사진에 담고 보니 영락없는 마애불이다. 옛사람들은 거대한 바위에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약간의 편법을 썼다. 법의(法衣)를 바위 표면에 음각으로 파고, 바위 위에만 불두(佛頭)를 얹어서 거대한 마애불을 만들었다. 이 바위는 그럴 필요도 없다. 튀어 나온 부위를 불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바위 표면에 그럴 듯하게 법의의 옷자락만 새기면 훌륭한 부처님이 재현될 것 같다. 

마애불형 바위, 서울 도봉산, 2011. 12.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산행은 내려오는 길이 힘들다. 올라갈 때 긴장했던 근육은 가끔씩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때가 적지 않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계단과 달리 산길이란 일정한 보폭으로 움직일 수 없다. 높낮이가 다르다 보니 올라가는 것보다 하산할 때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등산화 끈을 다시 묶을까 하다 그냥 걷는다. 느슨하게 매서 발목 부분이 놀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어려운 구간은 다 지났다는 생각이 드니 이마저도 귀찮다.

우이암에서 원통사를 거쳐 무수골 입구로 내려가지 않길 잘 했다. 우이남능선 길을 처음 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원통사 갈림길을 지나 좁은 바위 틈을 빠져나가는 길이 왠지 낯이 익었다. 생각해보니 대학 시절 아버지와 함께 온 길이었다. 등산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오늘 내가 가고 있는 길로 나를 끌고 오셨다. 아버지를 따라 바위틈을 빠져 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 몸이 부쩍 안좋아지신 아버지는 마당바위까지만이라도 가고 싶어 하신다. 몸이 회복되시면 아이와 함께 모시고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