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장강의 르네상스-16 · 17세기 중국 장강 이남의 예술과 문화』, 민속원, 2009.
이은상 선생의 또 다른 책 『장강의 르네상스-16 · 17세기 중국 장강 이남의 예술과 문화』는 앞의 책 , ,『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역사』의 속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속편이라기 보다는 앞의 책에서 세밀하게 다루지 못했던 16~7세기 쑤저우 일대의 예술문화에 대한 세론이다. 앞의 책이 중국역사 전반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이책은 명말청초의 격변기 상황에 놓여진 지식인들(문인들)의 문화적 지위와 예술의 상관성을 말하고 있다.
몽골족을 몰아내고 명(明)나라를 건국한 명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건국과정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장사성을 제압한다. 쑤저우의 물질적 풍요를 기반으로 주원장과 대립했던 장사성(張士誠)의 패배는 명나라가 존속하는 동안 쑤저우의 문인들의 출사를 막는 주요 요인이었다. 주원장을 위시한 명의 역대 황제들은 쑤저우 지역 문인들을 핍박하기 위한 다방면의 압박수단을 사용하였다. 명나라의 통치 지역에서 걷어들인 토지관련 세금의 9.4%를 걷어들임과 동시에, 과거시험에서 북방인들을 의무적으로 40%이상 선출하게 하여 강남인들을 관직 진출을 의도적으로 막았다. 이외에도 명의 초기 수도였던 난징(남경)으로 강제이주를 시킴으로써 대토지 소유 문인들의 경제적 기반을 와해시켰다.
쑤저우를 중심으로 하는 장강의 르네상스는 이러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출현한다. 정치적 핍박상황이 문화적 흥기를 일으키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의 발생 원인으로 역대 중국의 문인들이 선택한 은일(隱逸)의 정신을 거론한다. 자신의 입지를 펼 때를 기다리며 은둔하는 지식인의 상황은 처사(處士)로 통칭되는 조선의 선비들도 선택했던 존재의 방법이었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관리가 될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문인들은 과거시험(조선의 과거제도와는 다르다. 조선의 과거제도에 비하여 승급 절차가 더 더 많다)에 꾸준하게 응시했지만 여러 제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관직에 진출했다 하더라도 환관들의 국정 농락으로 낙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관리로 나아가지 못한 문인들은 문인들끼리의 연대성을 위하여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 향유 형태를 보여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원나라 말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대중적인 출판의 조악함에 맞서 우수한 품질의 서책(정교한 화보가 판각된 서책 포함)을 발간하는 목적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문화의 옹호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찌 보면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정의한 '구별짓기'를 통한 문화적 차별화를 통하여 문화적 우월성을 확보하고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탁한 명나라 말기와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청나라의 청나라의 성세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문화적 노력은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청나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강희제(康熙帝)의 강력한 중앙집권책은 이들의 자유로운 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제 패트론(patron: 특정 예술가를 후원하는 시스템)에 의존했던 장강 르네상스기의 예술생산 방식은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성리학을 국가통치의 학문적 근간임을 천명했던 강희제의 화치(化治)는 인간의 본성을 중시했던 양명학 등의 사유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예술창작의 주제와 소재에도 제약을 가했다.
이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예술은 통속문학에서나 존속할 수 있게되었고, 고아한 정신 세계를 담고자 했던 문인들의 관심 밖에 놓이게 된다. 중국의 역대 왕조 중 최대의 영토를 획득했던 청의 3황제(康熙帝, 雍正帝, 乾隆帝) 기간에 발달했던 상업 또한 이들의 예술에서 숭고함을 찾을 수 없게 하였다. 이제 예술은 상품이 되었으며, 환금성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적 화가와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분업적 생산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자신의 이상을 담기 위해 고심하는 문인(화가)들의 입지는 좁아진다.
이은상 선생의 이 책은 명말 청초로 이어지는 역사적 상황에서 창조된 중국예술(특히 회화와 판각본)의 생성 환경과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고 있다. 중국 여행상품 중에서 저렴한 가격(염가의 상품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간다는 반증이다)의 '항주(항저우),소주(쑤저우),상해(상하이)'상품에 장강르네상스의 중심지 쑤저우를 방문하기 전에 한 번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휙 둘러보는 여행보다는 쑤저우의 유명한 정원과 이를 기반으로 성행했던 문화예술의 흥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가 될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책에 수록한 그림 이미지의 해상도가 낮다 보니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중구회화사 책에서 선명한 이미지를 비교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문고판으로 출간한 책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대략의 윤곽은 보이니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중국회화사 도록들을 찾아 보기 바란다. 번거롭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쑤저우 상인들도 포함되는 안후이성(安徽省) 상인(徽商)들과 이들의 상조직, 상술과 주력상품(주로 소금 전매)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드라마 대청휘상(大淸徽商)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이기때문에 허구적 서사와 과장과 왜곡 등의 문제점이 있지만, 청말 휘상들의 활동과정을 통해 이책에서 다루고 있는 쑤저우 상인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