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렇게 집단적 광기가 판치는 시대에 인간의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없었을까? 이 책의 저자 서경식의 서양미술순례는 1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성립된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찌 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한 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서론에서 한국의 미술을 '예쁘다'고 정의했던 그의 미술관처럼 이 책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저항했던 이들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추악함을 통해 반제국주의 의식을 고취한 오토 딕스, 제정이 철폐되고 등장한 부르조아가 권력을 장악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위선과 이어 등장하는 나찌의 폭력성에 대한 민주의식의 고취하고자 했던 그로스, 하츠필드 등의 그림을 대상으로 한다. 2부는 인간의 존재의식과 예술의 상관성에 대하여 카라바조, 반 고흐, 살라사르의 사진을 통하여 다루고 있다.
유신정권에 대항했다 조국의 감옥에 갇힌 두 형(서승, 서준식-1971년 재일교포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의하여 구속됨)에 대한 그리움과 재일교포 3세로서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 과정에서 시작된 저자는 서양미술에 대한 순례를 통하여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고 있다. 1부에서 다루고 있는 독일근현대미술은 불의의 시대에 저항했던 양심의 기록을 통해 불의를 거부하고자 하는 저자 자신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혀진다. 2부의 '고뇌의 원근법-고흐에 대한 대담'에서 고흐의 예술은 자신의 존재 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던 극한의 산물로 이해하는데, 이를 원근법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이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 원근법에 의하여 구현되는 곳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야노 시즈아키와 대담을 정리한 이 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또한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경험하고서도 최악의 참극을 일으킨 제국주의 국가들의 폭력지향성과 이에 대한 대중의 방조에 대한 시각을 다루고 있는 1부의 글들은 역사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한국민중예술의 지향점을 암시하고 있다.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을 움직이고 있는 부르조아의 권력적 생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오토 딕스, 조지 그로스 등의 그림은 박제화되고, 교조화되어 버린 한국민중미술의 탈출구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이산(離散); Diaspora)의 아픔을 직접 경험했던 그의 의식은 자신의 거주지 일본과 국적지 한국에만 그치고 있지 않다. 그는 이를 피해의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성찰의 조건으로 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서양미술순례는 성찰의 장이 되었다. 서양미술에 대한 관심이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는 지표로 전락되거나 도 다른 투기를 위한 예비지식쌓기 정도로 전락해 버린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현재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 미술을 성찰의 도구로 삼는 것은 낯설다. 그렇기때문에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저자의 생각은 그저 안내일 뿐이다. 그의 생각을 따라 가다 나를 돌아보면 언젠가는 나를 돌이켜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