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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봄은 짝짓기 계절

'사순이'와 '사돌이', 경기 양주, 2011. 5.


작년 겨울 '사순이'를 떠나 보낸 '사돌이'가 오늘 새로 짝을 맞았습니다.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놈들입니다. 천적도 없는 사육통에 엄청난 알을 낳기 때문에 다 거두어 들일 수가 없습니다. 일단 사슴이 목장 주인장에게 낳은 알들을 주고 몇 알만 수습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놈들이 번데기에서 벗어나니 정신을 못차리게 합니다. 살아 있다는 소리를 온몸으로 들려 줍니다. 저처럼 밤에 주로 움직이는 놈들이라 밤이 되면 더 시끄럽습니다. 어떤 놈은 벽을 긁어대고, 어떤 놈은 날아 보겠다고 날개짓을 하고.... 좁은 사육통 안에 갖혀 있다 보니 욕구 불만을 그런 식으로 시위하나 봅니다. 

알에서 애벌레, 애벌레에서 번데기, 번데기에서 곤충으로 탈바꿈하는 적지 않은 시간을 거쳐 새로운 세대의 '사순이'가 태어났습니다. 앞 세대의 '사돌이'는 작년 짝을 잃은 이후 혼자서 독수공방했습니다. 추운 제 작업실에서 긴긴 겨울잠을 잔 탓에 삼개월 정도는 외로움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사돌이 마음을 모르니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이놈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더니 엄청난 식욕을 발휘하더군요.

그리고...... 근원적인 외로움을 채우지 못해서인지 놀이목은 물론 자기 밥통까지도 뒤집어 엎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그놈을 달래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암컷이 태어나지 않았거든요. 4월의 마지막 주 암컷이 부화통 꼭대기로 뚫고 올라 왔습니다. 아직은 몸통을 둘러싼 껍데기가 연약해서 두 주를 더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에 '사돌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지, 밥도 잘 안 먹고 놀이목에 착 달라 붙어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드디어 '사돌이'가 두 번째 장가를 갔습니다. 건조해진 톱밥에 물을 뿌리고 적당한 습도가 유지될 수 있게 뒤섞어 주었습니다. 놀이목도 햇빛에 말려서 넣어주고... 나름대로 신방을 꾸며 주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니 '사순이'는 이미 톱밥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닭쫒던 개 지붕쳐다 보는 셈이 되었습니다. '사돌이'는 놀이목 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습니다. 먹이를 먹으러 올라오는 '사순이'를 사로 잡기 위한 궁리를 하겠죠. 예전에 부화되어 나온 사슴벌레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를 사육통에 같이 넣었더니 수컷들이 너무 자웅을 겨루더군요. 나중에 보니 절지동물도 아닌데 다리가 뚝뚝 끊어지고, 날개에는 구멍이 숭숭 나있었습니다. 자연에서는 강한 놈만이 살아 남는다더니 사육통 안에서도 본능을 발휘하더군요.

아이때문에 사슴이(사슴벌레)와 장풍이(장수풍뎅이)들 키우기 시작했는데, 정작 아이는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산에다 버리기도 뭐해서 결국 처와 제가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작업실에서 이놈들을 쳐다 보다 보면, 마감에 쫒기던 강박증도 조금 완화됩니다. 

앞으로 몇 일동안 이놈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겠죠. 특히 벽을 긁어대며 독수공방을 달랬던 '사돌이'의 움직임이 더욱 그렇겠죠. 세상 물정 모르는 '사순이'는 이놈의 마수에 걸려들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자연의 섭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