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성 폭우와 과슈풍 이미지 새벽에도 한바탕 쏟아 붓더니, 길에 나서자 두바탕 째 푹우가 쏟아진다. 마감의 칼날이 목을 찌르기 직전이라 새벽까지 작업하다 천둥 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밤새고 곯아 떨어진 탓에 아침에도 쏟아 부었다는 빗줄기는 풍문으로만 들었다. 복더위 중에도 스콜(squall)처럼 쏟아지는 소낙성 빗줄기는 심장마저 벌렁거리게 한다. 길을 나서자 소낙성 폭우가 몰아쳤다. 차창에 부딪치는 굵은 빗줄기를 닦아 내기 위해 와이퍼의 강도를 높였으나 무용지물이다. 차들은 도로 위에서 힘들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잠시 숨가쁘게 움직이던 와이퍼를 멈췄다. 그러자 잠깐동안 새로운 장면이 나타났다. 이 순간 찰칵! 아주 잠깐이지만 과슈(gouache) 풍 이미지가 내 똑딱이 속으로 들어왔다. 더보기 온몸으로 불쾌지수를 체감한 날 소나기 오기 직전, 정체된 동부간선도로에서 고개를 돌렸다. 똑딱이를 꺼내 들고 셔터를 누른다. 회색빛 농담이 강했던 하늘이 허여멀겋다. 멀뚱이 서있는 아파트나, 휘돌아가는 고가도로나 허여멀겋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나기 오기 직전, 모든 것이 회색이다. 그렇지만 풀은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울고 있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발목까지, 발밑까지 누웠다. 풀은 등과 배를 유연하게 뒤집으며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누운 풀숲을 헤치며 사람들이 강물을 따라 걷고 있었다. 물의 흐름을 역행하는 자들만이 포도(鋪道) 위에서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지 못하면서....... 불쾌지수 높던 퇴근 길에서 김수영 시인의 이 떠오른 이유는 왜일까? 더보기 [덕유산]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1) 5월에 다녀 온 설악산 연재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지리산, 아니 덕유산 산행기를 먼저 공개한다. 당일 산행만을 다니던 친구를 꼬드껴 설악산을 다녀온 이후, 지리산 산행에 동행할 것도 꼬드꼈다. 이외에 지리산을 오르고자 했던 몇 사람을 더 꼬드꼈다. 결국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 사람은 나와 친구였지만...... 지리산 산행을 언제 했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5년도 더 된 것 같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않았기에 모든 산은 처음 가거나 혹은 언제 갔다 왔는지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용산역에서 전라선을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지만, 옛 기억을 떠올려 보니 초장부터 체력에 부칠 것 같아 포기했다. 해발 1,070m의 성삼재.. 더보기 [설악산] 늦봄, 설악산을 오르다(2) 천불동 계곡은 V자 형태의 협곡이다. 계곡 사면은 매우 가파르다. 하늘을 향해 뻗은 바위가 아래로 쏟아질 듯 가파른 곳에 백송 한 그루가 우뚜하게 서있다. 소나무의 표피가 흰색이라 백송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적송의 돌연변이같다.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백송의 흰색 껍질은 두껍지 않으면서 물고기 비늘처럼 생겼는데, 이 소나무는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적송인 것으로 봐서는 백송은 아닐 것이다. 천불동 계곡을 따라 양폭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등산로의 대부분을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서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계곡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공기는 몸의 열기도 식혀준다. 계곡 한 편에는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왼쪽 화채능.. 더보기 [설악산] 늦봄, 설악산을 오르다(1) 한동안 산을 오르지 않고 있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설악산. 강원도와 인연이 적지 않아서일까?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설악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산불방지를 위해 설악산 주요 등산로의 입산이 금지되면서 설악산을 향한 마음을 접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있는 후배와 같이 가기로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가끔씩 가까운 산에 같이 오르는 친구를 꼬셨다. 당일산행만 했던 친구는 흔쾌하게 동의했다. 1박을 해야 하는 산행이라 나름대로 등산 경로와 준비물 등에 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장시간 걸어야 하는 경로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출발하기 전까지 계획한 것은 잠잘 곳과 등산 경로의 분기점 간 소요시간 계산 정도밖에는 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배낭도 1박.. 더보기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 진달래는 지고 5월 1일, 북한산 진달래 능선을 올랐다. 아직 진달래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갔지만, 정상 부근에서만 약간 볼 수 있었다. 우이동에서 도선사로 향하다 왼쪽에 있는 진달래 능선 길로 들어서니 진달래 꽃은 이미 지고, 꽃이 진 자리에 잎이 돋았다. 마감만 없었으면 지난 주에 갔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나무들 사이로 핀 진달래꽃을 사진에 담아보려고 했는데, 올해는 궁합이 맞지 않나 보다. 진달래 능선 중턱을 오를 때 같이 간 친구가 오른쪽 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바위 아래로는 낭떠러지다. 잘못 내딛으면 헬기도 빼도 못추스릴 것 같다. 소나무 가지를 젖히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기가 막힌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조선후기 남종문인화의 거장 '전기(田琦; 1825~1854)'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더보기 [북한산] 백운대행 겨울 설악산을 꼭 가겠다고 생각했지만, 가지 못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자면 무덤만 늘어날 것이다. 결국 방학이라는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3월에야 겨울산이 아닌 겨울산에 올랐다. 삼월의 북한산은 이틀 전에 내린 적지않은 눈때문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하지 않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산위에는 눈이 내릴 것이다. 아이젠 한 쪽이 부러져서 친구에게 여벌을 갖고 오라고 부탁했다. 등산로 초입에서 구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른 아침부터 가게를 열 것같지 않다. 오늘같은 날씨에 아이젠 없이 백운대를 오른다는 것은 모험이다. 우이동 버스 정류소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십여분 늦게 나타난 나를 보고, 언제쯤 약속시간 지킬 것이냐고 타박한다. 농담삼아 지각도 나의 일관된 모습이라고.. 더보기 폭설이 내린 날, 양주에서 집까지 밤샘 작업(?)하고 실신했는데, 친구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정신이 멍한 상태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깨어나서 창밖을 보는 순간 기절했다. 어제 밤에 지하주차장에 공간이 없어서 지상에 차를 세웠는데 내차가 확인이 안된다. 친구에게 전화하니 승용차를 포기하고 버스로 출근하려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도 나가야 하는데..... 학교에서 시무식 취소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핑계 김에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오후가 되면서 눈발이 약해졌다. 서쪽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업을 중단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해떨어지기 전에 출발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젠 객기보다 안전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집으로 가기 전에 아파트에서 덕계리 설경을 담았다. 멀리 햇살이 비추고 있다. 오늘 엄청나게 .. 더보기 [북한산] 눈내린 북한산성 능선길(3) 동장대에서 북한산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북한산 대피소에 도착하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돌로 쌓아 만든 대피소 내에는 마찬가지로 돌을 쌓아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어 식사도 할 수 있다. 투명 아크릴로 가려진 창문이 있어서 바람을 피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최고의 장소이다. 갑자기 십수년 전, 지리산 천왕봉 대피소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비를 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피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 실내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처마 밑에서 폭우를 피하던 잔인했던 기억. 최근의 북한산대피소는 위급상황 대피시설보다는 식사 등을 위한 휴식장소로 더 많이 활용된다. 그래도 악천후에는 대피소 역할을 할 것이다. 국립공원 내에서 취사를 금지한 이후부터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더보기 [북한산] 눈내린 북한산성 능선길(2) 대성문으로 향하는 길은 대남문을 통과해서 북사면을 내려가야 한다. 맑은 날에는 산성 옆길을 따라 갈 수도 있지만 경사가 심하고 눈까지 와서 봉우리 밑에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북서쪽에 불어온 바람 탓인지 구기동에서 대남문을 향해 오르던 길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뭇가지 위에 눈을 얹은 것같았던 올라왔던 길과는 달리, 이곳 나무에 붙어 있는 눈은 겹층을 이루며 얼어 붙어 있었다. 이와 함께 눈 속으로 들어오는 눈때문에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산을 넘어가려는 바람의 칼부림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측면에서 불어와서 얼굴로 맞바람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우회 등산로를 돌아 산성을 따라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아래쪽으로 대동문과 문루가 보였다. 눈이 쌓여서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웠다. 성곽에 매어.. 더보기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