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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또 하나의 마감이 끝나고

또 하나의 글이 내 손을 떠났다. 항상 하는 일임에도 다른 이들에게 글이 읽혀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난 영상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교정은 종이로 출력해서 봐야 한다. 종이로 본다고 완벽하게 교정되는 것도 아니지만, 교정지를 출력해서 빨간펜으로 그어야만 교정이 된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도 열심히 교정했다. 다 쓰고 나서 교정지를 출력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항상 그렇듯이 본문을 쓰고 있으면서도 교정을 한다. 종이 낭비인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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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질 때는 교정지를 출력하는 회수도 늘어난다. 출력한 교정지 위에 문자들이 촘촘하게 박혔지만, 뜻은 횡횡거리며 흩어진다. 빨간펜의 마술이 필요할 때다. 기존에 썼던 것까지 읽고, 또 읽지만 여전히 진도는 안나간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쓴다('친다'가 맞는 표현인가?). '쓰고 출력하고 빨간펜으로 쫙쫙 긋고, 고치고'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이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해야 완성도 있는 글이 한 편 나온다고 한다. 교정을 잘해서 좋은 글이 되었다는 소동파의 적벽부가 이를 증명한다나. 난 불안해서 교정한다. 좋은 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번에는 교정지를 적게 출력한 것 같다. 글이 잘 써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해독도 잘 안되는 인용 자료를 읽다 보니 교정지 뽑아볼 시간조차도 모자랐다. 마감 독촉 전화가 왔다. "내일 새벽까지는....." 아! 오늘도 밤샘작업이다. 그렇게 마감시한을 지나고, 또 지나서 원고를 전송한다. 서른 시간 이상 눈뜨고 있었나 보다. 막판에 몰리면 무의식까지도 퍼올리는 것 같다. 평소에도 자동기술처럼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드러눕고 싶지만, 강의때문에, 회의때문에 늦게 출근한다. 죽지않고 살아 귀가하려면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강의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처리한다.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에서 '왜 살아야만 하는가'에 해당하는 이유를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떠올린다. 내리 깔리는 눈꺼풀을 올리기 위해 온 몸을 뒤틀고 학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마감에 닥치면 안 그럴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시체처럼 12시간 이상을 잤나보다. 실은 굴러 다니며 잤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 마지막 교정지를 다시 본다. 빨간펜으로 손댈 곳이 여전히 많다. 이미 늦었지만, 다시 교정한다. 다시 원고를 보낼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