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책 소개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의문을 가져보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에 고추가루가 들어간 것이 언제부터일까. 고추라는 식물이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을 거쳐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금에 절인 배추에 고추가루와 각종 양념을 버무린 김치를 먹기 시작한 것은 고추의 전래 이후가 될 것이다.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도 많다. 내가 알고 있는 것도 '백김치(붉은 색 고추가라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 백김치라고 한 것 같다)', '동치미' 등등이 있다. 따라서 김치를 담글 때 고추가루는 선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김치에 고추가루가 빠진다면 왠지 허전하다. 우리가 주로 먹는 배추김치에 고추가루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서평을 쓰면서 식민지와 관계도 없는 김치 이야기를 꺼내는지 궁금할 것이다. '기무치'와 '김치'의 용어문제나 만드는 방법 얘기도 아닌데 말이다. 김치 얘기를 꺼낸 것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고추가루 양념을 사용한 김치만큼이나, 우리 삶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제강점기의 습속들이 기원은 은폐되고 결과만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현상의 기원이 잊혀지는 순간, 비판적 성찰은 사라지고 당위만이 존재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인이 문명으로 인식하는 것들 중 적지 않은 것들은 일제강점기간 동안에 일제의 강요, 혹은 반강제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 민족의 원수 일본 것이거나 일본을 통해서 수용한 것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우리의 습속이 되어 버린 이런 삶의 근원을 도려내지 못하고 피상적인 것만으로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제강점기간 동안의 친일행위를 바라보는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문명개화의 기획과 친일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자의 언행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그들만을 반역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언행이 아닌 그들의 사상체계와 근대적 기획의 실체가 일제의 지배정책과 어떤 상관관계에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선행되고 후차적으로 이들의 친일행위를 규명하는 것도 늦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개인의 친일행위에 대한 규명의지만큼 우리 생활에 내면화된 집단적 습속에 대한 성찰의지는 적극적이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한 개인의 행위처럼 기록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단의 성향을 바탕으로이차적 분석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의 성격을 말해 보련다. 이 책은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조선과 대만의 일상생활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의 2002년도 여름공개강좌의 강연을 정리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게 한 것은 유신시대에 생활로 체험했던 군사문화의 대부분이 일제의 군국주의 정책이 강화되면서 고안되었던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중학교 1학년 말에 박정희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의 모습과 히로히또의 항복선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일본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일제말 교련교육을 받던 학생들과 고등학교 연병장에서 교련사열을 받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체력검사를 치르며 왜 수류탄(고등학교 말에 공던지기로 대체되었음)을 던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일제말에 조선인의 징병을 목표로 한 것임을 알았을 때 풀렸다. 대학입시에서 적지 않은 점수를 차지한 체력장 각 종목들이 일제가 기획했던 병영국가의 구성요소임을 깨달은 것은 대학원에 진학해서였다. 대학 때 이것이 군사훈련의 하나임은 알았지만, 이것의 연원이 1930년대 후반의 일제파시즘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 책의 '식민지 지배, 신체규율, 건강' 항목을 집필한 정근식 선생의 개인적인 경험은 유신시대를 체험한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유의 바탕에는 국가적 폭력과 개인의 내면화가 은폐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우리와 같이 식민지를 경험했던 대만의 선주민들이 한족의 차별과 수탈에 대항하여 일본의 지배를 환영했다는 점이다. 일본이 대만을 지배하면서 일본식 교육을 받은 선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선주민들 중 일부는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식민지가 된 대만의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족에게 수탈을 당하던 대만의 선주민(원주민과 같은 용어)인 아리산 초우족의 사례를 보면 그들은 일제의 대만지배 정책에 순응한다. 아니 그들에 의해 일본어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일본이 대만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기겁을 할 일이다.
대만의 영화감독 허우 샤오시엔(侯孝賢)은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에서 '일본'을 침략자이지만 근대적 문명을 전래한 자로 그린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봐도 한족은 대만의 선주민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수탈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 영화는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쫒겨온 국민당의 2.28쿠데타를 대상으로 대만인들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제기한 문제는 다시 이 책에서 연구된 '대만 선주민과 일본어 교육'과 연관되어 있다. 대만의 선주민,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부터 살던 한족, 1949년 이후 대륙에서 쫒겨난 한족 등이 공존하는 대만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면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일제에 의해 창씨개명을 강제로 당했다고 하는 사람들만 있는 곳. 그런데 당시의 관보는 관료들의 자발적인 창씨개명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창씨 개명도 자발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일제의 지배에 순응하고 그들의 지배방식을 고스란히 수용했을까? 단순히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일까? 나는 이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와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던 모든 규율들이 이를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생각한다. 보통교육의 확대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의 의해 기획된 가치관이 무의식적으로 수용되고 확산되는 환경이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교육을 받았던 분들이 수용한 일제 황국주의 교육사관이 바뀐 국가주의적 교육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동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시한 우리 세대는 그들에 의해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제국주의와 현대 '일본'과 '일본인'을 증오하게 가르쳤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고 강한 반일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내면화된 자신의 습속과 규율들을 버렸는가? 그들은 버리지 않았고, 그들에 의해 교육받은 나의 세대는 여전히 이 습속들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여전히 '친일' 문제를 둘러싸고 뜨겁다. 물론 은폐된 역사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습속과 사고가 '친일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일본적인 것'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는 것에 있다. 기원을 밝힘으로써 현실은 부정된다. 그 몫은 책을 읽고 실천을 모색하는 이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