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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의 세상

사진술에 대한 생각(1) 사진을 찍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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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 앞에서 사진에 대해 아는 척 몇 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최근 DSLR을 장만한 친구가 '고수'라고 한 말에 우쭐해서 노출, 구도 운운했더니 디카를 잘 갖고 노는 방법에 대하여 글을 써보란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대학동기들의 사이버카페에 하나의 카테고리가 만들어졌다. 내가 연재를 해야만 하는 항목이 생겼다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내 업도 아닌 사진에 대한 글까지 써야 한다는 것은 나를 가위누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간간히 셔터를 누르면서 생각했던 것을 글로 적어 본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래 목차 정해놓고 쓰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그냥 써보자. 내가 사진학 강의할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떻냐. 자세하게 설명할 때는 설명하고, 사진만 덩그라니 올려놓아 보기라도 하자. 그러다 보면 뭔가가 채워져 가겠지. 사진은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인간의 일이란 것이 어디 그런가. 사진으로만 전달이 안되니까 시시콜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진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나는 이곳에서 말이 많아질 것 같다. 실력이 안되니 오로지 사진으로만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구입한 DSLR은 촬영에서 인화에 이르는 과정을 단축시켜 줄 것이다. 디카의 최대 장점은 필카를 사용할 때처럼 현상소에 가야만 결과물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일단 찍고 보는 디지털 방식으로 나의 손가락도 변화를 줘보자. 그것이 디카의 생존방식이다. 나도 이곳의 연재회수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사진을 마구 찍을 것이다. 일단 생각하고 찍어야 하는 것은 슬라이드 필름 가격때문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사진표현의 기술도 습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필름을 대체한 메모리는 더 이상 아껴 쓸 물건이 아니다. 내구성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써야 한다. 마구 찍다 보면 좋은 사진이 나올 것이다. 나의 사진은 이런 과정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멋진 장면만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손가락이 먼저 반응할 수 있도록 신경감각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기 쓰는 글들이 본격적인 사진론은 아니니까 부담갖지 말고 대해주기 바란다. 최근 윤광준의 '아름다운 디카세상', '찰칵 짜릿한 순간'이란 책을 접하고서 사진에 대한 생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몇년 전에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읽었을 때도 경지에 이른 자만이 보이는 범상함이 느껴졌었지만 이번 책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한국 최고의 사진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사진론은 단순했다.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 가는 것에 의미를 두라는 것이었다. 멋진 풍경만을 사진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멋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경지에 이른 자의 자만이 아니라, 그는 생활 속에서 사진의 진리를 찾은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노력할 것이다. 일단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한 번 스쳐 지나가면 오지 않을 것들을 무조건 찍을 것이다. 최근 구입한 DSLR로 찍을 때도 있을 것이고, 똑딱이 디카로 찍을 때도 있을 것이다. 혹은 구닥다리 취급받으며 방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필카로 찍을 때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운운하기 이전에 우리 삶의 모습들을 담는 도구로만 카메라를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한 순간이든, 혹은 반복되는 것이든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도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이다.

모든 것은 소중하다.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은 의미로 각인된 것이다. <네모 속의 세상>에 담긴 사진은 나의 방식으로 세계를 의미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