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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청명상하도] 다리에서 만난 문신과 무장 “물렀거라! 물렀거라!”가마 길잡이가 손을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렀거라! 물렀거라!”반대편 길잡이도 이에 질세라 두 팔을 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마를 이끄는 길잡이와 말 탄 무장들을 이끄는 길잡이 모두 비켜 설 기미가 없다. 말을 타고 다리에 진입한 무장들의 기세에 강물을 구경하던 사람이 깜짝 놀란다. 첫 번째 말에 탄 무장은몸을 돌려 자기를 보는 사람에게 손을 들어 무언가 말을 한다. 듣는 사람의 표정을 보니 그리 좋은 말을 하지 않는 듯하다. 고삐를 잡아채는 두 번째 말을 탄 무장의 모습을 보니 이들은 말에서 내릴 생각이 없나 보다. 상대편 문신이 타고 온 가마도 길가로 비켜서지 않을 듯하다. 이 모습은 북송의 한림학사였던 장택단이 에 담은 장면이다. 문신 중심의 문치주의를 통치 원칙으로.. 더보기
송(宋)의 문치주의와 사대부 우리는 송나라를 도덕적 수양과 윤리적 실천을 중시하는 주자학의 나라로만 생각한다. 아마도 주자학을 학문의 모태로 삼은 조선의 성리학자들 때문일 것이다. 조선은 사농공상의 신분에 맞는 질서를 강조했던 나라이다. 이러한 상황을 떠올리면 조선 사대부들이 숭앙했던 송나라도 그랬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퇴계와 율곡은 물론 그 후계자들은 송나라의 사상과 문화 중 일부만을 수용하였다. 그렇지만 주자학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송나라를 성리학의 나라로만 인식하였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남송 시기 정립된 신유학인 주자학을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전용(專用)하였다. 그들은 주희의 사상만 수용하지 않았다. 주희의 모든 면을 닮으려 했다. 주희의 시를 따라한 퇴계와 율곡의 연작시도 이런 배경에서 출현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