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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의 세상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1탄

꽃밭, 서울 중구, 2011. 4.


완연한 봄이다. 지천으로 핀 꽃사태 속에서 구청 화단에 핀 들꽃들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할미꽃, 돌단풍, 매발톱꽃이 위아래를 향해 꽃잎을 펼쳤다. 덩달아 꽃양귀비,팬지, 금잔화가 무리지어 피면서 융단을 만들었다. 아편이 나온다는 진짜 양귀비가 아닌 꽃만 양귀비인 이 꽃의 자태에 혹한 때가 있었다. 강원도 봉평에서 이 꽃을 보고 진짜 양귀비인 줄 알았다. 사진으로만 봤던 양귀비. 진짜 양귀비를 보지 못했으니 착각했으만도 하지.

꽃양귀비, 서울 중구, 2011. 4.


사진으로만 봤던 꽃양귀비 무리는 환상적인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유럽에 가면 무리지어 핀 꽃양귀비를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자생적인 환경이 아니라몀 꽃양귀비밭을 만드는데 만만치 않은 돈이 든다고 들었다. 환경이 이러하니 바람부는 양귀비밭을 찍고 싶은 꿈은 마음 속에서 탈출하지 못할 것 같다. 중구청 앞 꽃밭에서 본 꽃양귀비도 다른 봄꽃들을 제치고 군계일학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할미꽃, 서울 중구, 2011. 4.

유리벽으로 재단장한 중구청 앞 꽃밭에 심은 여러 종류의 꽃들이 봄의 정취를 알린다. 하얀 솜털을 지닌 모습과 달리 고개 숙이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꽃. 할미꽃은 꽃잎을 여는 순간부터 아래로 머리를 숙인다. 우리 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도심 화단에서 보니 색다른 느낌을 준다. 중구청 공무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함인지 무리져 나온다.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 서울 중구, 2011. 4.

 그들이 입은 회색빛 옷이 할미꽃의 솜털과 대비된다. 

무릎을 꿇고 꽃을 바치는 한 명의 남성. 뒤에서 외치는 '투쟁(차 안에 한 명만 앉아서 신문보면서 확성기 틀어놓고 하는 시위를 시위라고 해야 하나)' 소리가 꽃을 든 이 남자의 미소와 대비된다. 이 남자가 웃으며 바치는 꽃송이와 뒤로 보이는 '해결하라'가 묘하게 결합된다. 웃으면서 끝났으면 좋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책읽는 여자, 신세계백화점 본점, 2011. 4.

중구청 근처에서 일을 마치고, 내친 김에 봄기운을 더 느끼기로 마음먹었다. 을지로5가에서 종로2가까지 걸어갔다. 최근에 이렇게 도심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오랫만에 걸었더니 장딴지가 뻐근하다. 청계천 주변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등장했던 곳들은 카페로 변신 중이다. 삼일빌딩 옆에서 4층 건물 전체를 차지하고 성업 중인 콩다방. 이에 질세라 별다방이 옆에 들어서고,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의 거리를 장악한 무수한 커피샵에서 사람들은 밥을 먹듯이 커피를 마신다. 나도 그 무리 중에 하나이다. 카페인 중독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니까. 유행따라 하는게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맛으로 마시든 유행으로 마시든 오십보 백보이다.
    

배롱나무, 신세계백화점 본점, 2011. 4.

지인과 헤어지고 들른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옥상정원에서 괜찮은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밖에 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괜히 앞모습까지 담으려다 보면 탈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담았던 여유로운 봄날의 모습은 얼마나 지속될까? 열흘 정도는 갈까? 티브이에서는 '국회 주변 테두리 길에 벚꽃이 한창이라며, 주말에 갈 곳 없는 이들은 여기로 오라'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벚꽃은 일본 꽃이 아니라 제주가 자생지라며 우습지 않은 민족주의 논리를 편다. 한반도에서 넘어갔다고 하면 우리가 우월하다는 안도감이라도 주나? 매해 봄마다 되풀이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억지를 내년에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말에는 아직도 겨울의 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곳을 갔다 와야 한다. 그래도 봄날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비스듬히 서있는 배롱나무처럼 나무들은 겨울의 껍질을 벗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