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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의 세상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3탄

새벽에는 제법 많은 비가 오더니 가랑비로 바뀌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의정부 서부순환도로로 들어섰다. 도봉산과 사패산 옆으로 지나가는 이 길만큼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곳도 없다. 도봉산 신선대로 이어지는 다락능선과 망월사, 사패산 능선은 계절에 따라 매우 다양한 색을 만들어낸다. 작업실로 차를 몰고 가다 가끔씩 갓길에 차를 세우고 이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데, 그 때마다 다채로운 색을 보게 된다.   

사패산 신록(1), 경기 의정부, 2011. 4.

사패산 신록(2), 경기 의정부, 2011. 4.


요즘은 나무에서 새순이 피어 나오면서 만들어 내는 신록의 색이 좋을 때이다. 사패터널 위로 등산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올라가본 적은 없었다. 사패산 아래쪽부터 타고 물들어 가는 신록에 빠져 사패터널 입구 갓길에 차를 세웠다. 터널 옆에 만들어진 길을 올라가니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났다. 길은 넓었다. 등산로가 아닌 이유로 잘 조성된 길을 따라 올라갔다. 능선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노란 개나리꽃과 상아빛 벚꽃이 연록색 새순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패산의 봄(1), 경기 의정부, 2011. 4.

사패산의 봄(2), 경기 의정부, 2011. 4.


비가 약하게 흩날리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사패산 정상까지 가면 계곡과 산줄기를 타고 오르는 신록을 볼 수 있겠지만, 우산도 쓰지 않고 올라온 터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경쾌해 보였다. 등산로 주변에 좋은 이미지가 있을 것 같아 왔다갔다 하며 서성거렸지만 끝내 좋은 이미지는 보이지 않았다.


찰나의 미를 장식하고 산화한 벚꽃잎들이 보였다. 한잎 두잎 아래를 향해 떨어진다. 꽃잎이 지면 연록색 신록도 진록색으로 바뀌겠지. 매년 반복되는 현상임에도 항상 낯설게 보인다. 계절의 변화를 감기기운으로 먼저 느끼지만, 색의 변화를 통해서도 느끼나 보다. 세상을 향해 틔우는 신록의 색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