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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그리고....

[커피] 사이폰(Syphon)으로 커피 추출하기 - 하리오(Hario)식 사이폰

사이폰(Syphon)을 이용하여 커피를 뽑는다. 사이폰은 압력차를 이용하는 커피 추출방식이다. 사이폰 추출도구는 물을 담아 끓이는 유리볼, 커피를 담는 플라스크, 이 두 용기를 결합시키고 지지해 주는 받침대, 유리볼에 열을 가하는 알콜램프로 구성되어 있다. 알콜램프를 쓰지 않고 할로겐이나, 사이폰용 전용 가스렌지를 쓰는 경우도 있으니 알콜램프는 필수 구성품은 아니다. 이외에 플라스크의 커피를 저어줄 수 있는 나무 막대가 필요하다. 아, 커피를 추출하려면 시간을 잘 지켜야 하기 때문에 타이머가 꼭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드립 방식을 좋아하는지라 사이폰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편이다. 드립 방식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여러 회사의 드립퍼들이 있고,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같은 드립퍼로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사이폰 추출은 드립방식에 비교적 쉽다. 그럼에도 업소에서 사이폰 커피를 선호하는 이유는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노랗게 달아오른 할로겐 램프로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함을 넘어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니까.......    

 

그럼, 커피를 추출해 보자. 드립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굵기 정도면 무난하다. 어떤 사람들은 드립보다는 좀 더 굵게 갈라고 하지만,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적당한 굵기로 분쇄한 커피 가루를 사용하면 된다. 미세하게 분쇄하면 물과 거피가루가 닿은 면적이 많아지다 보니 쓴맛이 강해질 수 있고, 굵게 분쇄하면 닿는 면적이 적다 보니 싱거워질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한' 크기로 갈아야 한다.

    

먼저 유리볼에 추출하고자 하는 분량이 표시된 부분까지 물을 붓는다. 대부분의 사이폰용 유리볼에는 커피잔 모양 표시가 있다. 잔의 숫자가 추출할 분량을 알려주는 표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때 물은 표시부분보다 조금 더 붓는 것이 좋다. 플라스크로 올라갔던 물이 커피가 되어 다시 유리볼로 내려오면 원래의 양보다 적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커피의 양을 적게 써도 된다. 꼭 표시 부분을 지킬 필요는 없지만, 사이폰식 추출법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없다면 설명서대로 따라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분량표시는 추출과정에서 편리함을 주고, 평균적인 맛을 내게 해주는 것이니까.  

 

또, 유리볼에 물을 담을 때는 미리 끓여 놓은 물을 쓰는 것이 좋다. 알코올 램프는 화력이 약하기 때문에 물이 끓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굳이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면 끓인 물을 부어야 한다. 뜨거운 물을 알코올 램프로 데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리볼의 물을 데우는 동안, 갈아놓은 커피 분말을 플라스크에 담는다. 물론 융이나 종이로 된 필터로 플라스크 아래쪽의 주둥이를 막아야 한다. 하리오(Hario)사에서 나온 제품은 융과 종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코노(Kono)사 제품은 모르겠다. 써보지 않았으니까. 융필터를 쓰면 커피의 기름까지 온전하게 마실 수 있지만, 종이필터는 기름을 걸러내기 때문에 걸떡지근한 맛(이걸 커피쟁이들은 바디감이라고 표현하는데, '바디(body)'는 '바디'이지 감은 뭔지. 영어로 쓰려면 모두 영어로 표현하던지...)을 느끼려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하여간 플라스크에 커피분말을 넣고 플라스크 옆면을 가볍게 쳐서 분말의 평형을 맞춘 다음 유리볼에 비스듬하게 걸쳐 둔다. 필터를 끼우고 균형을 잡고 등등의 과정이 있지만, 생략한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플라스크를 유리볼에서 나오는 증기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볼과 결합한다. 물론 타이머를 작동시켜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을 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시간을 지켜야 하지는 않지만 사이폰의 적정한 추출 시간은 1분 내외라고 한다. 나는 1분 20초 정도의 시간으로 추출하는데, 부드럽게 마시고 싶으면 시간을 줄이면 된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시간은 자신의 입맛이 아닌 최악의 맛을 줄이기 위한 평균적인 시간이니까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초보자일 경우에는 따르는 편이 낫다. 왜냐고, 실수를 줄일 수 있으니까. 

 

 

유리볼의 물이 플라스크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알코올 램프의 위치를 사이폰 앞쪽으로 살짝 빼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라스크로 올라간 뜨거운 물이 물 표면으로 떠오른 커피가루를 뚫고 '빵'하고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상단에 커피가루가 일정한 두께로 융단처럼 깔려 있으면 커피의 향과 맛이 좋다. 물구멍이 생겼다고 커피향이 확 날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물과 커피가루를 섞기 위해 막대를 젓기에는 편리하다. 커피 한 잔 뽑으면서 복잡하게 맛과 향, 표면온도와 커피의 반응 등등 이렇게 복잡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시각적으로 완성된 느낌을 주는 방법은 맛도 나쁘지 않다.

 

 

유리볼에서 올라온 물이 플라스크의 커피분말을 밀어 올리면 막대를 이용하여 커피가루와 물을 섞어준다. 커피가루에 물을 적신 다음 서서히 젓는다. 막대를 빼고 소용돌이도 멈추면 잠시 기다렸다 다시 한 번 저어준다. 다시 플라스크의 물이 잔잔해지면 알코올 램프를 빼서 불을 끈다. 플라스크에 담겨있던 커피가 유리볼로 내려온다. 플라스크의 커피가 유리볼로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에는 '보글보글'거리며 거품이 생긴다. 상단의 플라스크에는 커피액이 빠지면서 커피가루만 남게 된다. 이때 남은 찌거기가 봉곳한 모양을 이루어야 잘 뽑은 것이라고 하는데, 신선한 커피를 사용하면 초보자들도 이런 모양은 만들 수 있다. 미세한 분말을 사용하면 봉분모양을 만들 수도 있다. 모양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크와 유리볼을 분리해서 볼에 담긴 커피를 잔에 따른다. 물론 잔은 미리 데워놓아야 한다. 차가운 잔에 뜨거운 커피를 따르면 맛이 변한다. 못미더우면 직접 해봐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사이폰식 커피는 다른 방법으로 추출한 커피에 비하여 커피의 온도가 높다. 드립 방식의 커피는 오히려 살짝 데워서 내지만, 사이폰 방식의 커피는 뜨거운 온도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식혀서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 속 살갗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사이폰식 커피추출은 플라스크와 유리볼 내부의 온도차가 만들어낸 압력의 차이를 이용한 것이다. 최초 개발자를 둘러싼 논쟁이 있지만, 정작 유럽에서 개발되었음에도 유럽인들은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사이폰식 커피추출법의 열렬한 애호가들은 아기자기한 과정을 즐기는 일본인들이다. 일본의 커피전문점 중에는 사이폰으로만 커피를 추출해서 파는 가게들이 적지 않다. 쇼와(昭和) 시기부터 대중적인 음료로 사랑을 받은 만큼 오래된 커피점은 자기들만의 추출법을 고집하는데, 사이폰식으로만 커피는 내는 가게들도 적지 않다.

 

개인들이 경영하는 가게말고도 프랜차이즈 체인점에서도 사이폰식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일본 최대의 커피회사인 UCC(우에시마코히)는 'UCC cafe'란 체인점을 운영하는데, 이들 점포에서는 사이폰식으로 추출하는 커피의 모든 과정과 맛을 즐길 수 있다. 노란 할로겐 램프의 불빛을 받은 사이폰이 커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짧지만 시각적인 짜릿함을 준다. 그렇다고 맛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즐기는 맛이 다르고, 느끼는 방법도 다르니 사이폰식만이 커피 추출방법의 정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눈은 즐겁다. 드립 방식이 섬세한 손놀림이라고 한다면, 사이폰식은 화려한 의식이지 않을까?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과정을 장황하게 썼다. 몇 분도 안 걸리는 커피 추출 과정에서도 순간순간의 '멈춤'이 있다. 멈춤과 멈춤은 다시 이어지고, 또 다시 잠깐씩 멈추는 동작이 반복된다. 우리의 삶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