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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청명상하도] 다리에서 만난 문신과 무장

장택단(張擇端)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홍교 장면


“물렀거라! 물렀거라!”

가마 길잡이가 손을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반대편 길잡이도 이에 질세라 두 팔을 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마를 이끄는 길잡이와 말 탄 무장들을 이끄는 길잡이 모두 비켜 설 기미가 없다. 말을 타고 다리에 진입한 무장들의 기세에 강물을 구경하던 사람이 깜짝 놀란다. 첫 번째 말에 탄 무장은몸을 돌려 자기를 보는 사람에게  손을 들어 무언가 말을 한다. 듣는 사람의 표정을 보니 그리 좋은 말을 하지 않는 듯하다. 고삐를 잡아채는 두 번째 말을 탄 무장의 모습을 보니 이들은 말에서 내릴 생각이 없나 보다. 상대편 문신이 타고 온 가마도 길가로 비켜서지 않을 듯하다. 


장택단(張擇端)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홍교 장면 중 세부(1)


이 모습은 북송의 한림학사였던 장택단이 <청명상하도>에 담은 장면이다. 문신 중심의 문치주의를 통치 원칙으로 삼은 송나라의 관료체계를 고려하면 그림에 등장한 무장들의 행동은 의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송은 문신의 나라였다. 문신으로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려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과거를 통과해야만 했다. 반면 장군까지 오른 무장들은 무과를 치른 자보다 전장에서 무공을 세운 자들이 많았다. 금과 대립하던 시기에 무공을 세운 악비(岳飛), 한세충(韓世忠) 등은 병(兵)으로 입대하여 공을 세우고 승진한 장군들이다. 원나라의 침공에 맞서 싸웠던 맹공도 무과 급제자가 아니라 적지 않은 사병을 거느린 무장 집안 출신이었다. 과거를 치르지 않고 벼슬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학식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송나라 시기, 경전에 대한 이해와 시문을 짓는 능력에서 무장들은 문신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송태종(宋太宗) 조경(趙炅: 939.6.7~997.5.8). 태조 조광윤의 동생으로 송나라 제2대 황제이다. 태조의 적장자가 있었음에도 황제가 되어 정통성 시비가 있었다. 장장 이남의 소국들을 정벌하고 통일왕조 송을 건설하였다.


송 태조의 뒤를 이은 2대 황제 태종(조경, 원 이름은 광의였으나 즉위 후 경으로 고침)도 과거를 황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지방에서 치르는 향시를 통과한 거인(擧人)들은 수도인 카이펑에서 치르는 회시(會試)의 마지막 시험인 전시(殿試)를 통과해야만 진사(進士)가 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시험을 치르는 회시의 절정은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전시(殿試)이다. 전시에서 급제를 해야만 진사가 될 수 있었고, 관직을 받았다. 전시는 황제 앞에서 치르는 시험으로 당락 결정보다 회시 통과자인 공사(貢士)들의 순위를 결정하는 시험이었다. 공사들 중 진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전시에서 순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들을 진사라 부르지 않았다. 진사는 황제 앞에서 시험을 치른 문신에게만 주어졌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삼 년에 한 번씩 황제는 전시를 직접 주관하면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칠 신하들을 선발했다. 황제가 직접 홍지(紅紙, 紅牌: 과거 급제 증명서)를 주는 자리에서 갓 진사가 된 이들은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마지막 관문인 전시는 군신관계로 묶인 이들이 공동 운명체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휘종(徽宗) 문회도(文會圖). 송나라 문인들의 연회 풍속과 취향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문인들은 이 모임에서 음다(飮茶)와 함께 시서화(詩書畵)에 대한 논평을 하며 친목을 다졌다. 학문적 수준과 예술적 안목이 낮은 무장들은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다.


수나라가 시작한 과거제도는 당을 거쳐 송 대에는 고위 관리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 된다. 아버지를 잘 둔 덕에 음서(蔭敍)를 통해 관리가 되어도 고관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진사 출신 문신들은 음서로 관리가 된 이들을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신들끼리도 과거 급제 유무로 차별을 했는데 무과를 치르지 않고 장군이 된 무장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장택단(張擇端)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홍교 장면 중 세부(2)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서 청명상하도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말을 탄 무장들은 문신의 가마를 비켜 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첫 번째 말을 탄 무장은 문신이 탄 가마를 보지 않고 옆 사람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무장의 손짓에 놀란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린다. 무장은 예인하고 있는 배를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길잡이와 말고삐를 잡은 시종은 문신의 가마꾼에게 비키라는 몸짓을 한다. 가마를 타고 올 정도면 문신의 지위도 낮지는 않을 텐데 예를 갖출 생각이 없는 듯하다. 번화한 카이펑의 일상을 담은 청명상하도를 그려 휘종에게 바친 한림학사 장택상은 왜 이런 장면을 묘사했을까?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