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저런...

70여년 이산의 세월을 담은 <결정적 순간> 한 장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공동취재단 의 보도사진을 퍼옴.


'늙은 어머니를 만난 늙은 아들은 복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지만 마음 깊은 곳부터 흐르는 눈물까지는 막을 수 없었나 보다.'

전쟁, 분단, 증오, 화해, 가족, 이별, 그리움, 원망, 만남, 미안함...

이산의 아픔을 표현하는 어떤 말보다 이 사진은 이산의 본질을 압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산가족 만남행사가 남과북의 정치적 대립과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도 알리고 있다. ,
이산가족 만남행사의 본질을 한 컷의 사진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결정적 순간'을 담기 위한 사진기자는 항상 호랑이의 눈을 번뜩인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여러 가족들이 만나고 있는 넓은 공간에서 결정적 순간을 기다린다. '이 장면이야'하고 판단하기 전까지 한쪽 눈을 찡그릴 수 없다. '왔다'라고 생각한 순간, 한쪽 눈을 뷰파인더에 대고, 셔터에 올린 손을 누른다.

결정적 순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사진 미학을 표현한 말이다. 브레송은 신문 기사를 보충하는 삽화 정도로 취급받던 보도사진의 위상을 바꿔놓은 인물이다. 그에게 한 장의 사진은 삶의 본질을 담은 결정체였다. 35mm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던 브레송은 한 컷의 필름을 얻기 위하여 어슬렁거리며 걷다가도 결정적 순간을 보면 잽싸게 셔터를 눌렀다. 호시(虎視)가 먼저였는지 우행(牛行)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남긴 결정적 순간의 이미지들은 무엇이 앞서는가와 상관없이 포토저널리즘의 이상을 보여준다.

브레송이 활동하던 시절 35mm 필름 한 롤은 최대 24컷 또는 36컷의 이미지를 담을 수 있었다. 그가 애용했던 라이카(Leica) M3 모델은 연속으로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모터드라이브도 없었다. 1초당 10장 이상의 이미지를 메모리카드에 담는 촬영 상황은 꿈도 꾸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는 저장과 삭제를 무한 반복할 수 있다. 필름값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고 필름값 부담이 없다고 해도 사진기자들은 마구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뛰어난 사진기자들은 결정적 순간을 담기 위하여 호랑이의 눈을 번뜩인다. 오랜 시간동안 보도사진을 찍었던 사진기자들은 본능적으로 장면을 포착한다. 때로는 결정적 순간을 예측하고 소처럼 기다린다.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숨을 참으며 셔터를 누른다. 70여 년의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이산의 본질이 한 장의 이미지에 담겼다.

결정적 순간을 담으려는 사진기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이산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 늙은 어머니를 만난 늙은 아들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가족의 비극에 국한되지 않는 분단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결정적 순간'은 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연속적 장면'으로 승화된다. .

우리는 언제까지 이산가족들의 아픈 만남을 지켜봐야 하나. 슬픔을 담은 사진보다 이들의 기쁨을 담은 사진이 '결정적 순간'의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 생사라도 확인해주고, 희노애락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돌아서야만 하는 이들의 아픔이 담긴 장면보다 다시 만나는 기쁨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이미지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