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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하며(우리 동네)

떡볶이-1983년 가을

19831013일 오후, 집 앞 떡볶이 가게는 여전히 십대 청소년들로 붐볐다. 이 날 서울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아침 일찍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아웅산 테러사건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추모행사일 뿐 아니라 서울 시내 중고등학생, 공무원, 관변단체, 회사원까지 총동원한 관제시위이기도 했다. 당시 여의도에 백만 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정부행사 참가인원은 부풀리고, 반정부행사 참가인원은 줄이는 행태는 그때도 있었으니 진짜 백만 명이 모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아스팔트 광장은 물론 경계로 만든 잔디밭에도 사람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순국 외교사절합동 국민장> 모습


장례식은 오전에 끝났다. 장례식 참석으로 그날 수업은 갈음했다. 오후는 수업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게슈타포라는 별명답게 그날도 역시 서늘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마치 우리들이 갈 곳을 아는 듯······.


생각하지도 않았던 자유 시간이 생겼다. 영화 보러가자는 친구, 당구 치러(당시 중고생은 당구장 출입을 할 수 없었다) 가자는 친구, 새로 생긴 만화방에 가자는 친구 등등. 어쨌든 집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마침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떡볶이 집에 가자고 한다. 잠시 망설였다. 친구가 가자고 한 떡볶이 집은 우리 집과 마주보는 곳에 있어서 집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 이 집은 마음 놓고 떠들며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다가 어머니 눈에 띄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로 시작되어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고 끝나는 지청구가 속사포로 날아들 것이 뻔했다.

 

예나 지금이나 즉석떡볶이를 조리하는 방식은 별 차이가 없다.


그곳에 가자는 친구의 속셈은 안 물어봐도 훤했다. 떡볶이 집에 가자고 하는 친구는 정작 떡볶이에 관심이 없었다. ‘잿밥보다 염불에 관심이 많았던 셈이다. 친구가 가고자 했던 떡볶이 집은 제법 큰 교회가 근처에 있어서 중고등부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있었다. 처음에는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날탕 패들이 모이는 곳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요일 점심때면 한껏 몸치레를 한 십대들이 이 집을 들락날락거렸다. 이 가게는 성내동 근처에 사는 십대들의 놀이터로 떠오르고 있었다.

 

1980년 한국후지카공업이 국내 최초로 개발하여 판매한 휴대용 가스버너인 '부루스타'


이 집 떡볶이는 수업이 끝나면 옹기종기 모여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먹던 길거리 음식이 아니었다. 주인은 냄비에 떡볶이 재료만 넣어서 휴대용 가스버너에 올려주기만 했다. 이른바 즉석 떡볶이다. 양배추 등의 야채가 더 많았지만 고추장 양념(짜장을 섞기도 했다)이 스며든 떡볶이는 매우면서도 달콤했다. 재미있는 것은 즉석떡볶이가 부루스타로 알려진 휴대용 가스버너가 등장하면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부루스타 덕분에 떡볶이는 먹는 사람이 직접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진화했다. 전골냄비 속에서 떡볶이가 익는 동안 떠는 수다는 덤이었다. 아니 수다가 주가 되고 떡볶이가 덤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요미식회에 등장했던 80년대 즉석떡볶이


세월이 흐르면서 십대들이 놀 수 있는 곳도 다양해졌고, 즐겨 먹는 음식도 다양해졌다. 십대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집 앞 떡볶이 가게도 없어졌다. 주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즉석 떡볶이로 명맥을 이어가던 가게는 이제 갈비탕 가게로 바뀌었다. 성내동에는 지금도 즉석떡볶이를 파는 집이 몇 곳 있다. 그렇지만 차림표에 분식은 물론 소주와 맥주까지 적혀 있으니 십대들이 즐겨 찾는 곳은 아니다. 이제 성내동에서 떡볶이 재료가 담긴 전골냄비를 부루스타에 올려놓은 탁자에 둘러앉아 즉석 떡볶이를 먹던 십대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와 함께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났던 날탕패들도 사라졌다.

 

대표 길거리 음식인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과 어묵


비록 집 앞 즉석 떡볶이 가게는 사라졌지만 떡볶이를 파는 가게는 성내동 곳곳에 있다. 즉석 떡볶이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대표 길거리 음식 중 하나인 떡볶이는 굳이 이 동네가 아니라도 어디서나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오래전부터 분식점, 노점, 시장에서 사먹었던 떡볶이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아이템으로 진화했다. 십대들이 들락거렸던 즉석 떡볶이 집에서 몇 집 떨어진 곳에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가 있다. 벽에 붙어 있는 차림표를 보다가 이렇게 많은 떡볶이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 어묵, 순대, 튀김처럼 조리 방식은 같지만 넣은 재료와 양념에 따라서 변종 떡볶이들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나 보다.

 

1970년대 후반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고교 얄개>에 등장하는 빵집 모습.


그나저나 요즘 십대들은 어디에서 수다를 떨고 있나? 길 건너 맥도날드에서도, 최근 생긴 버거킹에서도, 피자집에서도, 카페에서도 예전 집 앞 떡볶이 가게에 우르르 모여들었던 십대같은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어쩌면 80년대 즉석 떡볶이 가게가 70년대 십대들의 공간이었던 빵집을 대체한 것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