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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무단첩부와 민유총기에 대하여

성북구 파출소 담벼락에 붙어 있는 현수막에 쓰여진 문구를 보다 떠오른 생각이다. 대한민국 경찰(이 현수막을 다른 곳에서도 봤으니 서울성북경찰서만 현수막을 내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보책임자의 우리말에 대한 감각은 이*숙 여사의 영어사랑론만큼이나 한심하다. 아래 사진에 있는 표어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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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경찰청 상징인 독수리인지 뭔지 모르는 새그림이 있고, 정형적인 4음보의 16자 표어가 대조를 이루면서 표현되어 있다. '슬그머니 버린'을 반복하고 뒤에 서로 다른 성격의 단어를 배치해서 의미를 명료하게 한 것까지는 좋았다. 표어의 아랫쪽에 배치한 세부적인 실천내용('~맙시다.'로 끝나는 것을 보니 권유같은데, 왠지 느낌은 그렇지 않다)을 보니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말을 써놓았다. 표어의 내용을 받쳐 주는 구체적인 실천 내용이 주제보다 어렵다. 연역시 논리 전개라면 대전제보다는 소전제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세부적인 실천 항목을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로 옮겨 보자. '- 오물투기, 광고물 무단첩부, 무단횡단을 하지 맙시다'는 '쓰레기 버리기, 광고물 허가받지 않고 붙이기, 무단횡단을 하지 맙시다'가 된다. 그런데 이 말은 부정형이다. 즉 '하지말라'는 금기 사항만 나열해 놓았다. 이를 긍정형으로 바꾸면 '쓰레기는 지정된 장소에 버리기, 광고물 지정된 장소에 붙이기, 횡단보도로만 길 건너기'이다. 요즘은 안 쓰는 말이지만 한 때 경찰의 역할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지칭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팡이의 의미를 이중적으로 생각했다. 도움을 주겠다는 것인지, 징벌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의미가 분명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독재권력의 사회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최근 경찰의 모습이 무시무시한 공권력을 연상시키지만은 않는다. 그런데 경찰은 강압적인 상명하달 식의 의식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현수막 표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경찰이 시민들의 공공질서를 개선해 나가는 방향을 제시할 때 쓰는 표현은 여전히 부정형이다. 현수막 걸고 열심히 일하는 시늉내는 것도 짜증나게 하지만, 이왕 걸거라면 표현은 긍정적으로, 내용도 알기 쉽게 썼으면 좋겠다. 경찰은 '오물투기(棄), 무단첩부(付) , 무단횡단( )'을 법률에 규정된 행정용어이기 때문에 사용했다고 강변하지 말고, 이를 실생활에서 쓰는 알기 쉬운 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2006년 경찰이 내걸었던 현수막 표현 중에 '민유총기(民有)'라고 있었는데, 당시 이 표현때문에 적지 않은 언론의 질타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들이 지적하면 좀 고치려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무슨 똥배짱인지.......

그리고 현수막 좀 붙이지 마라. 사람들도 경찰이 하지 말라고 현수막에 써놓은 것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다 안다. 현수막에 써놓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알면서 한다. 법을 위반했으면 일단 찾아가서 가르쳐 주고 그래도 안 고치면 단속해라. 그게 경찰의 임무다. 현수막 붙여 놓는다고 불법, 위법 행위할 사람들이 착하게 살지 않는다. 제발 파쇼국가처럼 현수막 들고 다니면서 선동하고 관공서와 학교에 표어 붙여서 이런 것 해야 한다고 선전하지 마라. 우리는 수많은 구호에 치여 산다. 길가다 보면 수많은 현수막때문에 정신 사납다. 경찰은 길거리에 마구 걸은  것부터 단속해라. 경찰까지 나서서 길거리에 내걸지 말고, 그리고 정 내걸어야겠다면 알기 쉽게 써라. 쉬운 우리말로 쓰면 글자 수가 많아져서 현수막 제작비가 더 들 것 같다면 아예 만들지 마라. 그 돈으로 단속하러 다니는 순찰차 기름값에나 보태 써라.


덧붙이는 말 : 그런데 갑자기 글마무리할 때 이제 영어 넣은 플래카드(이게 맞나? 이*숙 여사가 들으면 화낼텐데, 프랜카드 오아 플랜카드, 플라카드, 아이 돈~ 노우, 역시 영어를 수준 저열한 우리말로 표기하는 것은 쉽지 않군)가 등장할 것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일본식 한자조어들도 정신 사납게 하는데, 이건 또 왠 흰소리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