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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광릉 국립수목원(1회)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서 광릉수목원이라고 쓰겠습니다)에 갔다 왔습니다.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던 터에 대학 동기가 광릉 근처에 살아 봉선사 입구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광릉수목원을 갔습니다. 2주 전에 친구를 만나러 양주에 갔다가 가평 가는 길에 광릉 숲길이 좋아 예약을 했습니다. 물론 바쁜 척하는 친구를 그곳에 산다는 이유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광릉수목원은 1997년 6월 1일부터 5일전에 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3일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했는데 예약이 되네요. 친구말로는 입장 정원이 마감되지 않으면 1시간 전에도 된다고 하네요. 토,일요일은 개방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말에 개방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광릉수목원이 놀이동산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림생태계 연구와 학습을 위한 시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주말 개방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약제로 전환되기 이전에 자유입장한 사람들이 이곳의 생태계를 교란시킨 과오를 생각한다면 이 원칙은 계속해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친구(빗새라고 부름)와 함께 예약확인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꺼냈습니다. 친구가 제 똥차의 트렁크를 보더니 화물차 짐칸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이 표현은 아주 온순한 표현입니다. 연구실의 동료교수는 제 차를 보고 홈리스(homeless)라고 했으니까요. 빗새와 함께 광릉숲으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서 입장권을 냈습니다. 광릉수목원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광릉숲이 산림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라면 수목원으로 진입하는 다리도 나무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봐도 미적으로 보이지 않는 시멘트 다리(시골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다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방향으로 관람을 하기로 했습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놀고 있더군요. 정말 놀고 있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수건돌리기 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데, 두 명의 남녀 학생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앉아 애정표현을 하고 있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저희 세대와는 다르지만, 같은 반 학생들 앞에서 끌어안고 앉아 있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럼 저와 빗새가 움직인 선을 따라 아직은 봄 색깔이 2% 부족한 광릉수목원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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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기념탑 앞에서 본 갈래길 입니다. 위 왼쪽은 수생식물원 방향 길이고, 위 오른쪽은 숲의 명예전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보도블럭을 깔아 놓아서 깔끔하게 보이지만, 수목원이라면 오히려 흙길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광릉 지역이 서울보다 봄 소식은 2주 정도 늦은 것 같네요. 빗새 말로는 추운 동네라고 합니다. 위 오른쪽은 숲의 명예전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상록수의 푸른 잎과 아직 잎새를 내밀지 않은 활엽수의 색이 대조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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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생식물원 쪽으로 가다 한참 물오른 벚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분홍벚꽃보다는 흰 벚꽃이 좋습니다. 분홍벚꽃은 화사한 느낌만 주지만, 흰 벚꽃은 정화된 느낌을 줍니다. 왜현호색(索)이라는 이름의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있네요. 이름을 보니 일본과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한자의미로는 알쏭달쏭하네요. 광릉 수목원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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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학생들 중에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학생들 같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 누워서 햇볕을 즐기다 제가 사진을 찍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정숙한 자세를 취하더군요. 그냥 있어도 좋은데.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 사진에 담았습니다. 학생들이니까 사진을 찍어도 항의하지 않습니다. 초상권(실제로는 이런 전문적인 용어를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 찍냐고 항의하거나 돈달라고 하지) 운운하면서 달려드는 사람들을 많이 겪어본지라 이런 사진을 찍으면 능청떨면서 자리를 바로 뜹니다. 필카로 찍을 때는 사진을 볼 수가 없으니 안 찍었다고 우겼지만, 디카로 이동하면서 이런 말이 안 통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피사체(사진 용어로 촬영의 대상)가 열불 토하면 사진을 지우거나 돈을 줘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자의 경우가 많고, 제3세계 국가에서는 후자의 경우를 많이 겪습니다. 신발을 벗고 누워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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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생식물원 끝까지 가면 수목원의 경계를 따라 길이 있을 줄 알았더니 없네요. 다시 돌아와서 산등성이로 난 길을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까 흙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계단을 만들었네요. 광릉수목원에는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나무계단과 나뭇길이 많습니다. 나뭇길은 아래 나오면 말씀드리지요. 사람들이 산을 정복하면서 산은 망가졌습니다. 어떤 산악인은 산을 가지 않는 것이 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신은 산악인이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이 양반의 말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려면 산악인이라는 말부터 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은 산악인만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정복의 대상도 아니고, 우리 옆에 있기 때문에, 혹은 풍문으로 들었던 그 산의 모습을 보기 위해 우리는 가는 것입니다. 목적의식을 갖고 산에 가는 것이야말로 산을 망가뜨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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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니 반송(松) 한 그루가 공작 단풍나무의 보좌를 받고 있네요. 광릉수목원에는 반송이 많습니다. 위를 향해 뻗었을 때 멋있는 적송(松)과는 다르게 위보다는 옆으로 퍼진 것이 보기 좋아 조경수로 애호되는 소나무입니다. 앞에 있는 단풍나무는 공작이 꼬리를 핀 것같다 해서 공작단풍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조경업자들 이곳에 오면 눈 돌아갈 것 같네요. 수천만원짜리 나무들이 산능선의 곳곳에 있으니까요. 최근에 소나무가 조경수로 애호되면서 국립공원에서 소나무 몰래 캐가는 *같은 놈들이 있다고 하던데. 여기는 철저하게 지켜야겠네요. 진달래가 이제 핀 것을 보니 서울보다 확실히 춥군요. 가평보다 추운 것 같네요. 가평은 지난 주에 피고 지던데. 진달래는 나무 숲 속에서 필 때 제일 예쁩니다. 아닌 사진이 잘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풍경을 보기가 어렵군요. 나중에 그런 곳을 발견하면 꼭 찍어서 올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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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같이 우람합니다. 참나무과 같은데, 빗새랑 수다떨다 나무 이름을 못봤습니다. 잎이 없을 때 가지의 추상성을 보여주는 나무는 대부분 잎이 큰 나무입니다. 이런 나무는 실루엣 효과로 찍으면 추상적인 그림처럼 느껴지지요. 사진에 입문하던 때 이런 사진이 왠지 그럴 듯하게 보여 많이 찍었습니다. 최근에 구입한 DSLR로 찍었는데, 하늘색이 뻥튀기 되었네요. 필카로 찍으면 이런 색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디카는 자동으로 색(전문적 용어로는 색온도라고 하지요)을 보정해주기 때문에 하늘색이 정말 하늘색이 됩니다. 저는 그래서 디카가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디카는 편리한 물건입니다. 저의 디카 비판은 다음 회에서도 계속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