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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며

[책글] 숲으로 가니 숲이 보이지 않고,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 우린 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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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서민환, <우린 숲으로 간다-부부 산림학자의 우리 숲 답사기>, 2003. 6.

부부산림학자의 우리 숲 답사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신간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서점 알**에서 중고책 거래를 통해서 구입했는데, 크게 기대하고 산 책은 아니었다. 숲에서 느끼는 평온에 대한한 글이려니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숲의 생태를 연구하는 산림학자 부부의 애정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엄밀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우선 이 책은 전국 각지의 숲을 역사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생태적 특성을 풀어쓴 책이다. 다음으로 숲을 연구하는 산림학자이기 이전에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숲에 대한 애정을 담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자라고 있는(자생과 귀화, 외래 나무를 모두 포함) 다양한 나무를 중심으로 야생화, 버섯 등에 대한 도감이다.

1997년에 초판이 출간되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책은 2003년 개정판을 냈으나 현재는 절판 상태이다. 우리의 출판 풍토로 볼 때 신간으로 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개정판의 서문을 보니 초판은 <집으로 가는 길>(동명의 책이 여러 권 있다.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독자들의 요청으로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고 써있는데, 개정판의 표지를 보니 중년에 접어든 저자들과 책 속에서 등장하는 딸(만삭으로 학술조사를 갔다고 한다)이 나무 열매와 꽂들에 둘러싸여 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에 그들이 썼던 숲도 천천히 혹은 개발로 급격하게 변했을 것이다. 지금은 개정판이 나오고 6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책 속에 등장하는 숲은 더 변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숲은 자생적인 생태환경을 갖고 있지만, 항상 숲의 원형을 바꾸는 것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숲을 파괴하는 것도 사람이고, 역설적으로 숲을 지키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은 숲에서 살면서 어둡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지만, 문명이라는 미명 하에 숲을 나오면서 교만해졌다. '시인과 촌장'의 <숲>의 가사는 그렇기 때문에 울림이 깊고 크다. 인공적인 구조물의 도시 공간을 만들면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나치게 키웠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숲도 여러 이유로 자신의 영역을 인간들에게 내주었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은 죽어 쓰러져 고목이 된 밑둥까지도 도려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다양한 명목의 인공구조물이 들어선다. 나는 저자들이 '이곳만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자생적인 생태계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숲은 파괴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한 제도라는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을 위한 면죄부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더 나아가 잘 보존된 숲조차도 공원을 만든다고 파괴한다. 숲을 사랑하는 것은 숲을 자본의 가치로 보지 않는 것이다. 숲을 잘 보존하면 현재의 부동산 가치보다 더 큰 이익을 돌려줄 것이다. 현대의 문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 내 어린 날의 건강함을...... 최근 아토피, 천식 환자들이 숲 속에서의 생활로 치유하는 것도 작은 예이다.

주말이면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숲으로 간다. 그들이 숲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고기를 구워먹는 일이다. 고기에 기갈이 들린 것처럼 숲에 도착한 한 떼의 무리들은 숯불을 지피고, 고기타는 연기를 피어 올리면서 허위 산림욕의 욕망을 채운다. 뱃 속 가득히 팽배해진 욕망을 배설하면 다시 도시로 회귀한다. 물론 고행하는 마음으로 숲을 찾자는 것은 아니다. 숲에 가면 최소한 그 숲의 일면이라도 알고 오자는 것이다. 저자들처럼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자주 찾다 보면 숲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을 광릉 숲으로 한 것은 이러한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저자의 직장이기 때문에, 매일 생활하는 곳이다 보니 다른 숲에 비하여 친근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국립수목원'이라는 정식명칭보다는 '광릉 숲'으로 더 알려진 이곳은 다른 숲을 찾아가기 위한 예비 학습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한반도 전역의 식물 생태를 한 눈에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수종이 있다. 그 나무에 그 풀같아 보이지만, 자주 찾다 보면 큰 무리별로 구분할 수 있는 생활의 지식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상록수와 낙엽수를 구분하는 것만으로 나무에 대한 관심을 시작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단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지난 토요일 가족과 함께 광릉 숲을 다녀왔다. 몇달 전에 읽은 이 책을 꺼내어 놓고 아이와 함께 나무를 비교해 봤다. 이 책에 실린 '광릉 숲'의 이미지는 가을을 담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숲의 이미지들을 보면서도 광릉 숲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숲에서만 볼 수 있는 보호식물조차도 광릉 숲에서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식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나의 실수를 하나 적는다. 아이와 함께 갈 때는 절대 나무의 가치를 돈으로 설명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정원수로 소나무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잔 기억력이 좋은 우리 아이는 아버지의 흘린 말을 듣고 '저 소나무은 얼마, 이 소나무는 얼마'하고 떠들어 댄다. 소나무의 종류를 맞추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금액을 들을 때면 뜨악해진다. 나의 실수를 처절하게 반성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을 하나 더 말하면 저자들이 찍은 사진의 이미지가 깔끔하게 본문 안에서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배경을 지우고 식물의 특성을 돋보이게 하는 이미지 편집으로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숲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판형으로 나오는 나무도감 혹은 야생화도감을 들고 가자. 텔레비젼의 퀴즈쇼를 맞추면서 지식의 대리만족만 추구하지 말고, 숲이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머리를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