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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북한산] 눈내린 북한산성 능선길(1)

북한산에 올랐다. 북한산 인근에서 10여년을 살면서도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북한산을 올해는 두번이나 올라갔다. 처음에는 친구의 흘린 말에 빠져 북한산의 난코스 중 하나인 의상능선의 봉우리들을 넘었다. 이 산행은 허약해진 내 몸상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친구와 자주 산에 오르기로 했다. 친구와 10월 말에 다시 한 번 가려고 했다가 피치못하게 포기하고, 이번에 올라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있는 후배와 같이 갔다. 10월초 산행에서 하산길로 선택했던 구기동에서 시작해서 북한산성 주능선을 타기로 했다. 일단 대남문까지만 올라가면 대체로 완만한 능선길이었던 것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새벽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려 산행을 취소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가보자고 생각했다. 산아래에 적지 않은 비가 왔으니, 당연히 산정상에는 소복하게 눈이 쌓여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이젠은 챙기지도 않았다. 아직 눈이 얼지 않았으니 걸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하산길이 문제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내리막 길은 얼어 있었다. 항상 무게때문에 버리고 싶은 안전장비가 왜 필요한지는 난관에 부딪쳐야 아는 법이다. 겨울산행에서 필요한 것들은 의외로 적은 것 같으면서도 많다. 산에 자주 올랐을 때는 순식간에 준비했던 것인데(실은 배낭 속에 상비해두고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산에 오르지 않았더니 갈 때마다 뭔가 하나를 빼놓는다. 자주 오르면서 경험하다 보면 다시 몸으로 느끼겠지.

구기동에서 대남문을 향해 올라가다가 느슨했던 등산화끈을 매고 있었다. 그 때 대남문 쪽에서 내려오는 분이 길이 얼었다고 자기는 포기한다고 말했다. 비봉과 대남문 방향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던지 혹은 하산해야 했다. 글런데 아저씨의 복장을 본 순간 그냥 대남문 방향을 가자고 후배에게 말했다. 아저씨의 복장은 약수터가는 복장이었다. 신발은 등산화가 아니 런닝화. 산에 오르면서 유명브랜드의 전문의류와 장비를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눈이 적지 않게 쌓인 산에서 런닝화신고 오르다 미끄러워서 포기한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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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가는 길(1),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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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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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봉, 서울 북한산, 2009. 12.


아저씨는 밑으로, 우리는 위로 향했다. 대남문 쪽으로 오를수록 적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고,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날씨가 화창했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새벽부터 내린 눈비로 평일보다 적은 인원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대남문까지 오르는 계곡 길의 오른쪽에는 추사 김정희가 고증한 진흥왕순수비가 눈보라를 맞고 서 있었다. 진짜 비석은 세월만큼 표면이 닳아서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2006년에 비슷한 재질의 화강암으로 만든 복제비가 있다. 복제된 진흥왕순수비는 비봉 정상 왼쪽에 희미하게 막대처럼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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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가는 길(2),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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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가는 길(3), 서울 북한산, 2009. 12.


왼쪽의 비봉과 오른쪽의 보현봉 사이로 난 계곡은 유사시 왕이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통로였을 것이다. 북한산성의 정문은 대서문이지만, 한양에서 대피한 왕의 최단 피난로는 세검정을 거치는 이곳이었을 것이다. 숙종대에 축성했지만 이후 조선의 어느 왕도 북한산성 행궁에 오른 적이 없었다. 고종대에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의 내란이 있었지만 고종은 이곳으로 몽진하지 않았다. 산성에서 농성하는 방식의 전술은 더 이상 왕권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일제의 의도적인 훼손과 수해 등으로 산성은 무너져 갔다. 흔적만 남았던 북한산성은 1990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하여 현재도 복원중이다. 예전에 나도 북한산을 오르면서 대동문 문루 복원에 사용할 기와 한 장을 메고 올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북한산성을 복원하면서 기획한 사업 중 등산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는 행사였다. 최근에는 헬기로 모든 부자재를 공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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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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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서울 북한산, 2009. 12.


대남문 오른쪽(대남문 방향에서 볼 때) 문수봉 아래에는 문수사가 있다. 절의 크기로 보면 암자가 맞을 것 같다. 실제 문수사에는 암굴이 있고, 이 암굴은 고려 예종대에 탄연이 수행을 하던 곳이다. 탄연은 수행 중에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보고 문수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뒤에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 문수봉인 것도 이에 기인한다. 하산 이후에 찾아 보니 오대산 상원사, 고성의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문수보살을 모시는 3대 사찰이라고 하는데 본전 건물이 닫혀 있어 본전에 있다는 문수보살상은 볼 수 없었다. 대웅전 앞과 요사채 앞은 깨끗하게 눈이 치워져 있었으나 건물의 문은 닫혀 있었다. 본전 옆문 댓돌에 신발이 놓여져 있었으나 본전 안으로 들어갈 것도 아니어서 험한 날씨에 문을 열고 구경하기 쑥스러워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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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봉, 서울 북한산, 2009. 12.


대신 서울시내 전망이 일품이라는 문수사에서 남쪽사면을 바라보았다. 눈발이 간간이 날리고 있어서 서울시내는 안개낀 것처럼 뿌옇기만 했다. 건너 능선의 보현봉은 눈발이 내린 겨울 나무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날씨는 검은 눈구름이 몰려오는 듯하다가 햇빛이 나는 등 오락가락했지만 흐렸을 때 보는 무채색의 설경은 한 폭의 수묵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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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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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에서 본 한강, 서울 북한산, 2009. 12.


대남문에 올라서니 북악산과 인왕산, 서울시내가 흐린 날씨 탓인지 희미하다. 멀리 한강은 눈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햇빛을 머금고 금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맑은 날 대남문 문루에 올라서면 서울의 거대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대남문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의상능선, 남쪽으로는 비봉, 동쪽으로는 북한산성 주능선이다. 서쪽의 의상능선길을 보니 아찔했다. 맑은날도 쉽지 않았던 의상능선길 산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암의 월출산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던 길이다. 원래 계획대로 대남문에서 대성문으로 향하는 북한산성 주능선길로 향했다.    

< 2부는 다음에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