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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북한산] 눈내린 북한산성 능선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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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서울 북한산, 2009. 12.


대성문으로 향하는 길은 대남문을 통과해서 북사면을 내려가야 한다. 맑은 날에는 산성 옆길을 따라 갈 수도 있지만 경사가 심하고 눈까지 와서 봉우리 밑에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북서쪽에 불어온 바람 탓인지 구기동에서 대남문을 향해 오르던 길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뭇가지 위에 눈을 얹은 것같았던 올라왔던 길과는 달리, 이곳 나무에 붙어 있는 눈은 겹층을 이루며 얼어 붙어 있었다. 이와 함께 눈 속으로 들어오는 눈때문에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산을 넘어가려는 바람의 칼부림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측면에서 불어와서 얼굴로 맞바람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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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 서울 북한산, 2009. 12.


우회 등산로를 돌아 산성을 따라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아래쪽으로 대동문과 문루가 보였다. 눈이 쌓여서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웠다. 성곽에 매어져 있는 동아줄을 잡고 내려왔다. 대동문의 문루는 보수중이었다. 봉우리에서 내려왔던 길을 보니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산능선의 회백색과 파란색 하늘이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다 햇빛이 나는 변덕스런 날씨였지만 오히려 햇빛이 강하지 않아 좋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 오히려 사진을 담기에는 좋다. 햇빛이 강하면 반사광이 강해 설경을 담기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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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보국문 구간(1),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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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보국문 구간(2), 서울 북한산, 2009. 12.


  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향하는 길은 산성을 따라 올라갔다 급하게 내려가는 길이다. 북한산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해서 쌓았다. 그렇다 보니 산성의 모양이 능선의 작은 봉우리 위로 기어가는 뱀 모양이 되었다. 북한산성에는 대서문, 대남문, 대동문, 북문의 주요문 이외에도 여러개의 암문이 있다. 암문은 시구문(시체가 나가는 문)의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성의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기때문에 일종의 비밀통로이다. 나무가 우거진 곳이면서 가파른 계곡의 꼭대기에 조성했기때문에 아래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위장 목적때문에 문루는 없다. 보국문도 암문이라는 명칭은 없지만 암문의 일종이다. 약간의 사람들이 보국문 남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간단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약간 출출하기는 했지만 습기가 많은 날씨때문이었는지 갈증도 별로 나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었두었던 초코렛과 사탕을 걸으며 먹어서인지 기운도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하늘을 보니 검은 눈구름이 지나가면서 실루엣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검은 먹구름을 배경으로 흰 눈이 쌓인 나뭇가지의 추상적 모양이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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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문 근처, 서울 북한산, 2009. 12.


그런데 눈구름이 북쪽에서 다가오면서 날씨가 스산해졌다. 조금 전까지의 청량한 기분이 사라졌다.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사진찍느라 얇은 장갑을 끼고 있었더니 너무 손이 시려웠다. 봄가을용 장갑이라 등판 쪽이 통풍이 잘되는 것이었다. 오른손에 사진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보온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등산 준비를 덜한 죄로 이곳에서부터 하산할 때까지 내내 얼은 손을 부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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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보국문 구간(3), 서울 북한산, 2009. 12.


보국문에서 하산하면 정릉 계곡이다. 산을 오르기 전에 눈이 많이 오면 정릉 정도에서 내려가기로 했었다. 그렇지만 정오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고 눈도 거의 그친 상태라 대동문으로 가기로 했다. 대남문 쪽에서부터 복원된 성곽은 인공적인 냄새가 너무 강하다. 후배는 북한산성을 복원하면서 새로 쌓은 화강암의 질감이 세월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눈이 오니 옛성곽의 느낌이 난다고 했다. 복원된 성곽에 적지 않은 눈이 쌓이면서 진품처럼 풍화된 느낌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성문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이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눈구름이 밀려가고 다시 햇빛이 나오면서 성곽을 도드라지게 비췄고 하늘도 파란 광채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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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 능선, 서울 북한산, 2009. 12.


정릉 계곡을 따라 내려 가는 칼바위 능선을 바라보며 대동문 방향으로 올라갔다. 대남문부터 대동문까지 각 성문의 간격은 대체로 비슷하다. 능선의 산세도 어슷비슷하다. 대동문은 예전에도 많이 올랐던 곳이다. 우이동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대개 대동문을 거쳐가곤 했다. 대동문 구간에 이르니 산아래 동네들이 보였다.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였고,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단지도 보였다. 10여년 전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산위에서 아파트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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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대, 서울 북한산, 2009. 12.


대동문에서 북한산의 정상인 백운대를 향해가면 동장대가 있다. 장대(將臺)란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세운 사령탑이다. 당연히 사면을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동장대만이 복원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장대는 2층의 루각 구조이다. 루각에 오르지 않고서도 사방이 눈에 들어온다. 전쟁의 양상이 위장술과 참호전으로 바뀌는 1차세계대전 이전까지 인간은 전쟁에서 자기들의 세를 드러내기 위해 애를 썼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군복이 형형색색인 이유도 시각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 그러나 참호전은 보다 자연에 가까워져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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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대에서 본 서쪽 능선, 서울 북한산, 2009. 12.


오늘날 전쟁에서 지휘소의 노출은 궤멸을 초래하는 것이지만, 이전까지 지휘소는 군대의 세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수성의 입장에서는 장대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야했다. 전투의 양상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나 화성의 장대들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큰 규모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장대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눈을 휘감아 다른 능선으로 옮기는 바람의 움직임과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세는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쾌감이다.         


<3부는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