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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북한산] 눈내린 북한산성 능선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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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대피소에서 본 문수봉, 서울 북한산, 2009. 12.


동장대에서 북한산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북한산 대피소에 도착하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돌로 쌓아 만든 대피소 내에는 마찬가지로 돌을 쌓아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어 식사도 할 수 있다. 투명 아크릴로 가려진 창문이 있어서 바람을 피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최고의 장소이다. 갑자기 십수년 전, 지리산 천왕봉 대피소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비를 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피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 실내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처마 밑에서 폭우를 피하던 잔인했던 기억. 최근의 북한산대피소는 위급상황 대피시설보다는 식사 등을 위한 휴식장소로 더 많이 활용된다. 그래도 악천후에는 대피소 역할을 할 것이다.

국립공원 내에서 취사를 금지한 이후부터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당일 산행에서 한 끼를 때우기에 제일 좋은 것은 김밥이다. 그래서인지 주말 새벽에 집을 나서다 보면 이른 아침부터 불을 밝힌 김밥집을 쉽게 볼 수 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농경민족의 후예들이라서 그런가? 김밥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인스턴트 식품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가 간단한 식사 때문인지, 아니면 영양소 때문인지, 아니면 여러 재료의 풍성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쌀문화권인 우리 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밥 이외에도 다른 도시락거리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구마가 좋다. 이날도 난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후배가 싸온 김밥과 나눠 먹었으니 두 종류 이상의 음식을 먹은 셈이다. 수분 보충에 도움이 된다고 배를 깍아서 왔는데 한기때문에 꺼내지도 않았다.

후배가 준 초코렛과 사탕을 오물거리며 능선길을 걸었다. 산에 자주 오르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주전부리 음식을 넣고 다닌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열량높은 것이 대다수이다. 산에 오지 않으면 입에 대지 않던 것도 산에서는 손이 간다. 사탕이나 초코렛, 카라멜 등은 잘 먹지 않는데, 산에 오면 애용품이 된다. 몸에서 빠져 나가는 열량을 보충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북한산의 정상인 백운대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등산과 하산을 놓고 망설였다. 시간 상으로는 백운대에 올라갔다 와도 될 것같았다. 문제는 쌓인 눈이 적지 않은 데다가 등산로가 사람들의 발에 다져져서 미끄러웠다. 올라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려오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아이젠을 준비해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할 수 없이 백운대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용암문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후배의 등산화는 연륜만큼이나 닳아 있어서 미끄럼을 방지해주지 못했다. 평소 번거로움때문에 등산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데, 아이젠도 없으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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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도선사(1), 서울 북한산, 2009. 12.


내려가는 우이동 계곡의 나무들에 앉은 눈은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산성을 넘어온 바람은 눈이 맞는 쪽에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북한산이 서울의 바람막이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겨울에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겠지만 역으로 여름에는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을 것이다. 서울 도봉구 일대가 오존 함량이 높은 이유는 이런 지형적 조건때문일 것이다. 이 때 나무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을 쳐다 보니 먹이를 찾기 위해 나무를 쪼고 있는 딱따구리 한 마리가 보였다. 북한산에서 딱따구리를 본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하긴 북한산에 얼마나 자주 왔다고.... 수년 전에 자주 다닐 때도 북한산에서 딱따구리를 본 적은 없었다. 후배는 북한산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도 3번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조류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이곳에서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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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서울 북한산,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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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도선사(2), 서울 북한산, 2009. 12.


카메라를 들이대고 최대로 당겨 보았지만, 클로즈업이 된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줌렌즈를 최대한 당기고 노출을 단계별로 열어 가면서 찍어봤다. 여러 컷을 찍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쓸만한 것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한 장만 딱따구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예전에 모 대학의 조류학 교수는 새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2000mm 망원렌즈를 들고 다녔다. 지금도 고가의 장비인 초망원렌즈를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에 들고 다녔으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고성능 녹음기까지 갖고 다니다 보니 간첩으로 오인받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새들이 경계심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새들의 이미지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새들의 생태를 멀리서도 담을 수 있는 장비는 필수품이다. 이외에도 생생한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몇날몇일을 기다려야 했다. 새들 중에 민감한 놈들을 담기 위해서는 더러움도 불사해야 했다고 한다. 이런 수고에 비하면 아쉬운 마음을 접어야 한다. 똑딱이로 흔치 않은 딱따구리를 담은 것도 고마운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카메라 광고에 등장한 가수(가수인지 모르겠다) ㅂ군은 손에 입김을 불어 가면서 리얼한 사진을 얻으려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광고라지만, 그 어색함이란......기다림치고는 너무 그의 얼굴은 깨끗했다. 자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얻는 과정이 대부분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사진가는 더러움도 불사해야 한다. 새를 찍기 위해서는 새가 경계심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조류 사진을 찍는 이들은 위장텐트에 조류의 분비물까지 몸에 바를 정도이다. 그래야 새들은 경계심을 푼다고 한다. 이는 다른 동물사진도 마찬가지이다. 한 마디로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 광고 장면을 갖고 사설이 길었지만, 사진은 뽀대나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뜨문뜨문 사람들이 눈쌓인 길을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 간 자리를 제외하고 온통 흰색이다. 내일이면 흰색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또 눈이 내려 쌓이고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겨울이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겨울이 반복되면서 세월을 만들어갈 것이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