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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친절한 협박문(양주교통 73-2 마을버스의 운행중단 공고)을 읽고

최근 작업실이 있는 아파트 승강기에 친절한 협박문이 게시판에 붙었다. 일단 내용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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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버스회사 양주교통이 친절하게 주민들을 위하여 버스노선 폐지를 알리는 공고문이다. 일단 버스회사가 보낸 공고문에 나오는 아파트 이름은 지웠다. 노선만 찾아 봐도 어디인지 알 수 있으니 별것도 아닌 것에 명예 운운하는 이들을 생각해서 아파트 이름은 지운다. 이런 글을 공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고문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널리 알리려는 의도로 쓰인 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은 공고문이라기 보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을 향한 협박문이다. 승강기 안에서 이 글을 읽고 뚜껑이 열리는 줄 알았다. 안하무인도 이 정도면 갈데까지 갔다. 이런 나부랭이를 복사해서 붙인 관리사무소의 태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양주교통이 이런 공고문을 보냈으니, 만약 73-2번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고 관리사무소에 항의하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73-2번 버스를 기다리지 말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추후에 일어날 항의 사태에 대한 면피용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 아파트에 작업실을 있지만 나는 셔틀버스는 물론 양주교통의 73-2번 버스를 이용한 적이 없다. 대체로 자가용을 이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 시외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이 공고문에 등장하는 어떤 버스도 이용한 적이 아직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현상을 이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회사가 노선버스를 운행하다 중단하는 경우는 전쟁, 천재지변, 파업 등을 제외하고 버스회사 임의로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선버스란 관할 지자체에 정기노선 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아 정기적인 운행을 하는 버스이다. 만약 노선을 변경하거나 폐선을 할 경우에는 관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위의 공지문 내용 중 "*추후 셔틀버스 운행 폐지시 노선복귀 예정임"이란 문구를 보니 관할 지자체에 변경신청을 하거나, 폐선신고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위의 양주교통 공지문을 보자. 양주교통의 73-2번 버스 운행중단(폐지가 아님) 사유는 나의 작업실이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때문이다. 셔틀버스는 아파트 주민들의 거주 편의를 위하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비영리로 운행하는 버스이다. 아파트 위치가 전철역이나 주요도로 버스 정류장과 거리가 있어 주민편의를 위하여 운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요금은 무료이다. 오전 7시 20분부터 19시 20분까지 점심 시간 무렵 2시간(오후 1시~3시) 정도 쉬는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40분~1시간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셔틀버스는 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철역, 장보러 가는 대형마트 혹은 재래 시장을 중심으로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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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버스의 노선은 일치하지 않는다. 노선이 겹쳐지는 부분이 약간 있기는 있다. 아파트에서 출발한 73-2번 버스가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덕계동 저수지까지 갔다가 30분 정도 지나서 3번 국도 상의 덕계동 육교까지 가는 구간(위표 빨간색 표시 부분)과 아파트 셔틀버스의 아파트~리치마트 구간(아래표 빨간색 표시 부분)이 겹쳐진다. 아파트 셔틀버스의 구간별 운행시간은 5~10분 정도이다. 그리고 아파트 셔틀버스는 양주시 덕계동, 덕정동 일대의 주요 편의 시설을 운행하기 때문에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 주민들의 발역할을 한다. 그런데 73-2번 버스가 운행중단되는 이유는 아파트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 때문이고, 이로 인해 수지가 맞지 않아서(극심한 경영 상의 어려움을 초래)이다. 아무튼 결론은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행 중단일을 예고한 것을 보니 시청에 신고했는지도 모르겠다(이것은 확인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뒤의 글씨체를 크게 해서 써놓은 문구를 보다 다시 한 번 열받았다. "*추후 셔틀버스 운행 폐지시 노선복귀 예정임"이란 문구는 아파트 주민들을 향한 협박이다. '셔틀버스 없애라'고 노골적으로 써라. 그리고 그동안 아파트 주민 한 명이라도 태워서 돈벌었다면 '민원 발생'운운하지 마라.

현재 전국의 시내버스와 마을 버스는 관할지자체에서 손해를 보전해 주는 버스(준)공영제로 운영하거나 유류비를 보조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버스회사가 수익이 나는 노선만을 운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물론 이에 대한 재원은 시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준)공영제라고 해서 무조건 버스 노선이 고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유지 운영하는 이유는 소외지역을 배려하려는 공익성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을버스에 유류비를 보조하는 것은 버스회사의 적자를 시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줌으로써 버스가 다니지 않는 소외지역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3번국도에서 가깝기 때문에 소외지역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양주교통이 마을버스 노선을 아파트를 경유하게 만든 것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노선을 새로 만들 때 주민들을 위해서라고 선전했으면 폐선하거나 중단할 때는 조용히 물러가라. 아파트 주민들이 양주교통의 돈주머니를 채워주는 사람들은 아니다.  

양주교통이 양주시 전역에서 여러 개 노선버스를 운행하는 것으로 봐서 양주시는 적지 않은 세금으로 적자 보전을 해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런 버스회사의 몰염치한 행태에 대해서 얼마나 지도 감독하는지 궁금하다. 양주교통의 이런 행태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서만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도 주민들을 향해서 협박성의 공고문을 팩스 한 장이나, 버스 정류장에 한 장 붙였을 것(이것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이다. 양주시청은 양주시민이 낸 세금으로 주민들을 향해 아주 친절한(?) 협박문을 붙이는 양주교통에 유류보조비 등의 지원을 할 것이다. 시민들이 낸 세금을 조금이라도 보조를 받는다면 양주교통은 이런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된다. 속으로야 이속을 따져도 이런 안하무인 격의 문서를 팩스 한 통으로 달랑 보내 주민들을 경시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이 문서는 양주교통 경영자의 의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내가 아주 불쾌한 것은 이런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주인임에도 마치 구걸한 것처럼 여겨지는, 또는 아주 성은을 베푼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런 버스회사는 망해야 한다. 게다가 이런 공고문 나부랭이를 주민들에게 면피용으로 붙인 아파트 관리사무소, 이러한 행위를 지도감독하지 않고 계속 시민의 세금을 퍼주는 양주시청의 불성실한 시민서비스가 우리 사회의식의 현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