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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그리고....

[중국차] 중국차의 향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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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시기를 좋아하는 나는 중국에 갈 때면 방문하는 도시의 차도매시장(茶葉市場)을 빠지지 않고 들린다. 그곳에 가면 중국 각지에서 채취하고 가공한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들 차들은 산지보다는 중국 각지의 도시에 있는 차도매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데, 대부분의 가게들은 주력상품으로 삼는 차를 갖고 있다. 테꽌인(鐵觀音, 철관음) 가게는 테꽌인을, 푸얼차(普洱茶, 보이차) 가게는 푸얼차를, 화차(花茶) 가게는 화차를 주로 취급한다. 대개 이들 가게의 주인은 자기 고향의 차를 파는 대리상이거나 도매상이다. 테꽌인 가게의 주인은 푸젠성(福建省) 출신일 가능성이 높고, 푸얼차 가게의 주인은 윈난성(雲南省) 출신인 경우가 많다.

내가 주로 가는 차도매시장은 텐진(天津)시 주장따오(珠江道)에 있는 텐진시차도매시장(天津茶葉批發市場)이다. 이곳은 광쩌우(廣州) 팡춘(芳村)에 있는 광동성차교역시장(廣東省茶葉交易市場)이나 베이징(北京) 마렌따오(馬蓮道)에 있는 베이징시차도매시장(北京茶葉批發市場)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중국 각지에서 생산된 차를 구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2006년경 푸얼차 투기 열풍이 불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도 자기 가게만의 주력상품이 있었다. 그런데 푸얼차 투기가 심해지면서 대부분의 가게들이 주력상품을 버리고, 보이차를 주력상품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기의 기세가 꺾이면서 그들은 참담한 결과를 겪어야 했다. 작년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푸얼차 가게로 전업했던 가게들이 이전의 주력상품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손해를 많이 본 가게들은 차도매시장을 떠났다고 한다.


아직
도 푸얼차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베이징과 텐진에서는 모리화차(茉莉花茶, 자스민차)를 찾는 사람들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화베이(華北) 지방에서는 모리화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푸얼차 투기 바람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베이징 마렌따오 차도매시장에서 거래되던 대표적인 차는 모리화차였다고 한다. 모리화차의 주원료는 녹차이다. 모리화차는 녹차에 모리화향을 첨가한 가향차(加香茶)이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강남에서 화북까지 차를 운송하다 보면 차에서 절은 냄새가 났다고 한다. 상인들은 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모리화를 녹차에 넣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모리화차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화베이 지방 사람들이 모리화차를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모리화차가 중국 남방에서는 인기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중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여러 차 중에서도 푸젠성 안시(安溪)에서 나오는 테꽌인을 좋아한다. 중국차를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차는 녹차와 홍차만 있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차의 대부분이 녹차이고, 수입한 차도 대개 녹차나 홍차였기 때문이다. 타이완(臺灣)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께서 우롱차(烏龍茶, 오룡차)를 사다 주셨는데, 당시는 음용법(飮用法)을 몰라 차 맛을 만끽할 수 없었다. 중국차에 대한 견문을 넓힌 뒤에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사온 차는 타이완의 유명한 농향차(濃香茶)인 무쟈테관인(木柵鐵觀音)이었다. 뜨거운 물에 짧게 우려내야 하는 이 차를 녹차처럼 우려냈으니 참혹한 그 맛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청차 계열인 이 차는 꽁푸차(工夫茶)의 방법으로 차를 우려내고 마셔야 한다. 완비된 다구를 이용하여 좋은 차를 우려내는 꽁푸차에서는 ‘노력을 기울여 우려내는 차’라는 의미만큼이나 차를 우려내는 사람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물론 차의 품질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다도(茶道)와 유사하지만 예법보다는 맛을 중시하며 정숙함보다는 쾌활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신다. 차를 우려내는 차이쓰(茶藝師)들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동작으로 차를 추출해서 손님들에게 권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 차를 마시는 예법을 차이(茶藝)라고 한다. 이는 다도라는 표현에서 풍기는 엄숙함보다는 행위와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 차문화는 차관(茶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인에게 차관은 매우 중요한 사교 장소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업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독서삼매경에 빠지기도 하고, 휴일에는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중국을 처음 갔을 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담배까지 피면서 차를 마시는 차관의 분위기를 보고 놀랐다.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마작과 카드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출출해지면 탁자에 차려진 음식을 수시로 갖다 먹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정숙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차문화를 다도로만 인식했던 나의 편협함을 깨는 것이었다. 우리의 다방(茶房)과 중국의 차관은 유사한 곳이다. 카페와 커피숍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의 다방도 이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다방의 어원도 ‘차’에서 기원한 것이니 명칭부터 기능적 유사성을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식당에 가면 먼저 차를 내온다. 물 대신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급차는 아니다. 중국의 식당은 우리와 달리 마실 물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다. 고급식당에서는 꽝천쉐이(鑛泉水, 중국에서는 생수를 꽝천쉐이라고 한다. 생수를 달라고 하면 수돗물을 갖다 준다)로 불리는 생수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물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따뜻한 마오차(毛茶)나 화차를 제공한다. 뜨거운 물이 담긴 큰 주전자에 차를 넣고 우려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다방의 엽차(葉茶)와 비슷하다. 만약 생수를 마시고 싶거나, 좋은 차를 마시고 싶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음식을 먹으면서 생수보다는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차를 마시거나 삐지어우(麥酒)나 쉬에비(雪碧, 코카콜라사의 스프라이트의 중국명), 커우러(可樂,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마신다.

그런데 차를 주로 마셨던 중국인의 음료 문화는 이들 음료로 인하여 바뀌고 있다. 식당에 가면 식사를 하면서 대용량 페트병에 담긴 탄산음료를 나누어 마시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은 용량의 탄산음료만을 파는 우리의 식당과 다르다. 기름에 볶거나 튀기는 조리법이 많은 중국음식을 먹다 보면 느끼한 기분이 드는데, 이 때 탄산음료를 마시면 입 안 가득히 시원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건 느낌일 뿐이다. 탄산음료는 짧은 시간동안만 청량감을 줄 뿐, 시간이 지날수록 텁텁한 느낌을 더하게 된다. 이에 비하여 차는 느끼함을 서서히 해소시키면서 개운함을 지속시켜 주는 좋은 음료이다. 식사를 하면서 마시는 차는 서서히 입 안에서 퍼져 나가면서 식사 후의 잡미를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탄산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차를 곁들이던 식사 풍경도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차보다는 탄산음료를 좋아한다.

또한 차의 위상을 압박하는 음료는 커피이다. 중국에 씽빠커(星巴克 스타벅스)가 진출하면서 커피숍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베이징, 샹하이 등의 대도시에는 외국자본인 씽빠커, 샹따오카페이(上島咖啡, 일본계 우에시마커피와 한자명은 같으나 다른 회사이다)와 중국 자본의 커피숍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차관보다 이곳을 좋아한다. 샹왕쭈(上网族)이라고 불리어지는 그들은 이곳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열심히 작업(?)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에 스타벅스가 진출하면서 벌어진 ‘된장녀’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씽빠커에서 마시는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커피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구별 짓는 상징적인 음료이며, 차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강변하는 음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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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들 음료는 중국 문화에서 차가 차지하는 위상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중국인의 일상에서 음용된 차는 그들의 삶과 함께 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정립된 중국의 차 문화는 일반인들도 쉽게 차를 접할 수 있게 하였다. 사람들은 편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閑談)을 나눈다. 그것은 우리처럼 엄숙하고 정중한 자세로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차 문화는 차의 향과 맛을 즐기는 법을 중시한다. 좋은 차를 마시고도 정신이 맑아지지 않고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까? 나른한 오후, 은은한 난향을 풍기는 테꽌인을 마셔 보라. 그 풍미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명대학교 한중문화정보연구소 발간 <<뉴스레터>> 제13, 2010. 7.8.9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다른 글을 쓰다가 내용 중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했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샹따오카페이(上岛咖啡, UBC)'를 일본 'UCC우에시마커피(上島珈琲, UCC)'와 같은 회사로 알고 있었는데, 다른 회사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UCC우에시마커피'의 타이완 진출(1985년) 이전에 타이완에는 한자 이름이 같은 '샹따오카페이(上島咖啡)'란 회사(1979년 설립)가 이미 있었습니다. 'UCC우에시마커피'는 '上島咖琲' 대신에 '優任珈琲股份有限公司'란 이름을 타이완 법인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샹따오카페이'는 1997년 상하이에 '上海上岛咖啡食品有限公司'를 설립하고 중국 시장에 먼저 진출했으며, 'UCC우에시마커피'도 1998년 '上島咖啡(上海)有限公司'를 상하이에 세우고 진출합니다. 두 회사의 중국 법인명은 샹따오(上岛)라는 한자를 쓰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헷갈리기 쉽습니다. 자세히 보니 '샹따오카페이'는 썅따오(上岛)를 간자체로  표기하고 'UCC우에시마커피'는 샹따오(上島)를 번자로 썼군요. 중국에 진출한 아시아 기업들 중에는 회사명을 간자체로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같은 회사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커피의 명칭도 '샹따오카페이'는 커피를 중국어 표현인 咖啡(카페이)로 쓰고, 'UCC우에시마커피'도 일본식 표기인 珈琲(지아페이)를 버리고 咖啡(카페이)로 썼네요. 그런데 'UCC우에시마커피'의 일본 홈페이지에는 중국법인명에 '咖啡'를 쓰지 않고 일본식 한자 표기인 珈琲로 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