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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그리고....

[중국차] 금준미, 정산소종계의 새로운 홍차이긴 하지만.....

지금 중국의 차시장에서는 홍차가 유행이다. 전통적으로 인기있던 기문홍차(祁門紅茶, 치먼홍차)는 물론이고, 수확량의 대부분을 외국으로 수출한 탓에 국내 유통량이 적었던 정산소종(正山小種, 졍샨쌰오종)도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베이징의 마렌따오 차도매시장에는 실론홍차(Ceylon black tea, 锡兰紅茶)만을 수입판매하는 가게가 등장했을 정도이니, 중국의 차시장에서 홍차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차의 원조는 중국이며, 자국에서 생산한 차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외국에서 생산한 홍차까지 수입해서 마시는 모습은 매우 낯선 일이다. 최근에는 영국식 티웨어를 파는 곳도 생겼는데, 어찌 보면 홍차 본연의 맛보다는 홍차에서 파생된 문화적 현상을 즐기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正山小種(졍샨쌰오종) 2010년산.사용자 삽입 이미지金骏眉(진쭌메이), 2010년산.

그렇다고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인기있던 중국 홍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홍차 시장이 커지면서 이전부터 인기가 있었던 홍차 이외에도 새롭게 개발되었거나 지명도가 낮았던 홍차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봐야겠다. 인도의 다즐링, 실론의 우바와 함께 세계 3대홍차로 분류된 기문홍차의 인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최근에는 금준미(金骏眉, 진쭌메이)라는 홍차가 등장하면서 이 차의 위상도 위협받고 있다.금준미는 홍차의 원조인 우이산 통무꽌(武夷山 桐木關)의 정산소종을 현대적으로 변형 가공한 차이다. 정산소종 특유의 송연향(松煙香)이 있는 금준미도 있지만, 대체로 송연향이 없거나 약하다. 겉모습도 금아(金芽, GoldenTip)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검은 색의 정산소종과 쉽게 구별된다. 다즐링의 등급으로 보면 SFTGFOP(Special Finest Tippy Golden Flowery Orange Pekoe)급이나 TGFOP급(영국인들은 홍차의 등급을 알파벳의 나열을 통해 매겼는데, 이런 등급이 차의 품질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다)에 가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金骏眉(진쭌메이), 2010년산.

금준미는 2005년 우이산 통무꽌에서 새롭게 개발된 홍차이며, 최고 등급을 나타내는 금(金)과 량쭌떠(梁骏德)라는 차사(茶师)의 이름 중 한 글자인 준(骏)과 장수를 의미하는 미(眉)를 합성하여 이름을 붙이고 출시한 정산소정 계열의 새로운 홍차이다(금준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곳에서 확인하시길). 중국인들이 황금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으니 '금'자를 붙였을 터이고, 개발자를 우대한다는 차원에서 '준'자를 붙인 일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미'는 장수보다는 차엽의 모양을 표현한 듯 싶다. 최상품의 금준미를 우려내면 엽저의 모양이 초생달같은 눈썹을 닮았기 때문이다.

금준미는 정산소종이 출현한 지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소종홍차로 등장했다. 녹차를 완전발효시켜 차의 풍미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정산소종은 '홍차의 원조'라는 영광을 누렸지만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기문홍차보다 낮게 평가되었다. 금준미의 출현으로 이런 상황은 역전되었다. 현재 중국의 차 시장에서 금준미, 은준미 등 정산소종계의 홍차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금준미라 칭하는 위조 홍차(짝퉁이라고 해서 품질이나 맛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우이산 통무꽌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홍차가 원산지를 속이고 금준미로 둔갑한다)까지 시장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이 차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월 텐진의 차도매시장에 들렀을 때 금준미를 시음하고 구매했다. 떫지도, 쓰지도 않고 서서히 퍼지는 단맛이 좋았다(차맛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말장난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다한 정산소종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황금색 외양은 운남전홍(云南滇红, 윈난띠엔홍)을 닮았으나 어린잎을 발효시킨 금아의 솜털이 융단처럼 보일 정도로 많다(차를 우려내면 차잎의 뒷면에 붙어 있던 금색 솜털이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맛은 금준미가 띠앤홍보다 은은하면서도 깊다. 마치 좋은 품질의 철관음을 마셨을 때처럼 연한 듯 싶지만 뒷맛이 좋다. 물론 다섯 번 우려낼 때까지는 맛의 변화도 적다. 금준미는 영국식으로 우려내는 방법(대체로 3g, 150ml, 3~5분)보다는 100ml 내외의 개완에 5g을 넣고 빠른 시간 안에 우려내야 맛있다. 나는 80도 정도의 물로 20초, 회차에 따라 시간을 늘이면서 우려낸다(이건 내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홍차는 95도 이상의 물로 우려내는데, 어린 잎을 많이 사용한 금준미는 약간 식힌 물로 우려내야 맛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云南滇红(윈난띠엔홍)-상품, 2008년산.사용자 삽입 이미지云南滇红(윈난띠엔홍)-중품, 2009년산.

2006년에 발간된 품차도감(中国友谊出版公司)에도 안나왔던 금준미가 중국 차시장에서 주요 거래 품종이 된 모습은 차도 유행을 타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금준미에 열광하는 모습에서 2007년 전후로 중국 차시장을 휩쓸었던 보이차 열풍이 이제 홍차 쪽으로 옮겨간 느낌을 받는다. 보이차 투기열이 꺼지고, 홍차의 유행도 끝나면, 사람들은 어떤 차에 관심을 갖을까? 기존 차를 새롭게 가공해서 신창명차(新創名茶)라고 부르고, 희소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면 금준미와 같이 시장에서 최고(품질보다는 가격 면에서)의 상품으로 대우받는다. 금준미 가격의 거품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정교한 수공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금준미의 품질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한 근(500g)에 기천 위안(경매에서 10,000위안을 경신했다고도 한다)씩이나 하는 가격은 분명 거품이다. 마치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큰 철관음 가격이 홍차 거래에서도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금준미의 출현 과정에서 개발자들이 철관음이나 용정차의 어린 잎 제다를 거론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正山小種 통에 담아 준 金骏眉(진쭌메이), 2010년산.


   
중국 차시장에서 금준미가 홍차의 상위 품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인들도 금준미를 찾기 시작했다. 맛과 향이 뛰어난 홍차임에는 틀림없지만 금준미를 최고의 차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몇년 후에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금준미에 열광할까?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차가 금준미가 차지했던 자리를 차지하리라 본다. 명차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세밀한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금준미는 역사적인 명차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명차가 되기 위해서는 유행이 지난 이후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품질도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300년 전에 만들어졌던 정산소종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명차로 대접받듯이, 금준미도 역사적인 명차가 되어있을 것이다.

차맛보다는 차의 상징성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금준미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나도 금준미를 마셨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금준미를 포함한 정산소종계 홍차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홍차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는 명차로 공인된 차종들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정의한 명차의 조건은 그 차들에 대한 안내서일 뿐이다. 스스로 마시고 느끼면서 나만의 명차를 분류해 보다 보면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