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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그리고....

커피맛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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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볶는 것은 정말 큰일이다. 커피를 볶기 전에는 베란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화분치우는 것부터 로스터기, 냉각기 등을 위치시키는 과정이 번거롭게 하고, 볶은 후에는 커피를 볶으면서 나온 각종 오물(이걸 오물이라고 해야 하나?)을 치우고 물청소 하는 일 번거롭게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직화식 유니온 샘플로스터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엄청난 껍질(chaff)들이 나온다. 업소에서 사용하는 로스터기들은 껍질들을 흡입해서 모으는 깔대기통(cyclone) 등이 있어서 청소가 편하지만, 좁은 베란다에 이것까지 늘어놓을 수는 없어서 포기했다.

내가 사용하는 샘플로스터는 2008년 일본 출장 때 동료들에게 엄청난 타박을 받으면서 들고 온 놈이다. 서점에서 산 책과 도서관에서 복사한 자료들의 무게도 적지 않은데, 주물로 만든 이놈까지 수화물로 부치려니 허용중량을 초과했다. 학술조사 활동으로 책이 많다는 등 운운하며 사정한 끝에 초과요금 내는 것을 면제받았다. 덕분에 동료들에게는 볶은 커피를 자주 공급하기로 공언해야 했다.  
 
수동으로 작동하는 로스터인지라 처음에는 손잡이를 직접 돌리면서 커피를 볶았다. 그런데 한 손으로 통을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볶여지는 콩의 상태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바신처럼 4개의 팔을 갖고 있으면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샘플러로 볶고 있는 콩의 상태를 보려치면,  통을 돌리는 오른손은 느려지거나 멈춰야 했다. 결국 로스터기의 한 쪽 축에 전동 모터를 달았다. 야호! 이렇게 편한 것을.....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속 모터를 달고 로스터를 작동하니, 수동으로 볶던 것에 비해 너무 편리하다. 커피 볶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1차 뻥터지기(커피쟁이들은 1차 popping이라고 부른다) 와 2차 뻥터지기이다. 전동으로 개조하니 1차 뻥터지기 과정 전까지는 책도 볼 수 있다. 중불로 날콩을 말리는 과정은 비교적 긴 시간이라......... 여러 종류의 커피를 볶을 때는 일단 콩을 투입해놓고 나서 먼저 볶은 커피를 정리도 한다. 

2년 정도 볶다 보니 약간은 이력이 붙었다. 나름대로 여러 나라의 커피를 볶다 보니 각각의 콩이 갖고 있는 특성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콩을 볶는 과정은 재미있다. 마치 어린 시절 서리한 콩을 구워먹었을 때처럼 커피도 잘 익혀야 하는 콩, 중간 정도 익혀야  하는 콩 등이 있다. 물론 세분화하면 볶는 정도에 따라 8단계 분류가 있다. 내가 어디 콩을 어떤 단계로 볶을 것인가는 반복적으로 볶다 보면 자연스럽게 터득된다(물론 예민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기억하는 과정이 동반하지만).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을 보고, 강의를 들어도 참조만 될 뿐이다. 적지 않은 실패를 겪으면서 만들어낸 자신만의 로스팅 포인트(이건 번역이 어렵네, '자신만의 볶기 지점'이 가장 적당한 번역같은데...)가 있어야, 장인은 아니더라도 커피 좀 볶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수준은 아니다. 높은 기술적 수준을 갖추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내 업이 아니다. 나의 잡다한 관심사 중의 한 영역일 뿐이다.

커피의 장인은 언제나 일관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당연히 오랜 시간 공부하고, 경험을 축적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몇 년 전 유행한 커피 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바리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머리에 왁스바르고, 콧수염 좀 기르고, 흰 셔츠에 앞치마를 둘렀다고 바리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리스타와 프렌차이즈 커피 매장의 아르바이트의 실력 차이는 커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수준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 끝에 만들어진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손님이 주문하는 맛도, 자신만의 일관된 맛도 한 잔의 커피에 담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바리스타가 아니다.

그럼, 나는...... 당연히 바리스타가 아니다. 바리스타가 될 생각은 없지만 맛은 안다. 맛을 안다는 것은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예전에 마셨던 각기 다른 산지의 커피 맛을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머리스타'인가? 산지별 커피의 특징을 잘 기억하는 방법은 직접 콩을 볶아서 마시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 몸을 마루타로 만드는 것이다. 많이 볶으면 가까운 사람들 순으로 분배하고 그들도 마루타로 만들면 된다. 이건 '마루스타'인데.....가련한 나의 벗들! 나는 그들이 하는 감언이설을 적당히 걸러 들으면서 볶아서 나눠 마신 커피의 특성을 듣는다. 그래도 잘 안다고 하기에는 멀었다. 입 안에 머금은 커피의 맛은 '좋음'과 '나쁨'으로만 갈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