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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그리고....

[커피] 하리오 V60 유리 드립퍼에 융필터를 끼우고 커피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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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io V60 Glass Dripper VDG-02CBR

브라운 색 하리오 V60 유리 드립퍼(Hario V60 Glass Dripper VDG-02CBR)를 선물로 받았다. 일본의 유명 유리용품 제조업체 하리오에서 나온 이 드립퍼는 다른 회사의 제품과 달리 유리이다. 플라스틱과 세라믹 재질의 드립퍼가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린 제품이다. 유리 드립퍼는 플라스틱 제품처럼 리브의 돌출이 도드라져서 커피의 가스가 쉽게 빠질 수 있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물줄기의 흐름도 볼 수 있다. 친환경 소재인 유리로 만들어서  환경호르몬 때문에 세라믹 드립퍼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걱정하지 않고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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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io V60 Glass Dripper의 리브 구조

하리오 드립퍼는 코노 드립퍼처럼 원추형이다. 추출구가 하나라는 점도 같다. 그렇지만 리브의 모양이나 출수구의 크기가 다르다. 하리오 제품은 리브가 상단에서부터 하단까지 회오리 모양으로 이어지며, 코노 드립퍼는 중간부터 하단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다. 출수구의 크기도 하리오 드립퍼가 코노 드립퍼보다 큰데, 출수구에서 돌출된 리브 크기가 하리오 드립퍼보다 길기 때문이다. 커피 추술시 물줄기는 원추형 필터의 아랫부분으로 집중되는데, 돌기도 물의 흐름을 제어하니까 돌출부 길이가 짧은 하리오 제품의 출수구가 크다고 보면 된다.    

하리오 드립퍼의 리브는 상단에서 하단으로 회오리 모양으로 길게 이어지며, 드립퍼 상단보다 하단 쪽의 리브가 더 볼록하다. 또한 길게 이어진 리브 사이에 짧은 리브를 상단에서 1/4지점(상단에서 하단으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상단에서부터 시작된 리브때문에 하리오 드립퍼는 물흐림이 코노보다 빠르다고 한다(코노 드립퍼와 같은 조건에서 추출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맛은 코노 드립퍼로 추출한 것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한다(이것도 점드립으로 추출하면 그렇지 않다).

필터는 하리오에서 나오는 종이 필터를 사용해도 되고, 전용 융필터(Cotton Frannel Filter, VGNF-02)를 사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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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오 융필터(VGNF-02) 해동하기

국내에서는 하리오 드립퍼용 융필터를 파는 곳이 많지 않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 필터에 비하여 융필터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100회 이상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추출하는 회수를 써놓는 것도 아니니 필터 표면의 융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면 계속 쓴다(200회 정도도 쓸 수 있다. 때로는 아니지만...). 다만 커피를 추출하고 깨끗하게 물에 헹구고, 꼭 짜고,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해야 한다(꼭 이 방법만이 정답은 아니다. 이건 내 방식일 뿐이다). 이렇다 보니 융 드립퍼(혹은 융 필터)로 커피를 추출하는 일은 정말 '일'이다. 사후처리의 번거로움때문에 어쩌다(정말 어쩌다가) 이 방법으로 추출한다. 커피광들 중 융드립(Cotton Frannel Drip이 정식명칭이다. 점드립 방식에 많이 사용하지만, 사용하는 사람마다 여러 방식으로 추출한다)에 빠진 이들은 그 방법만 사용한다고 하는데, 난 호기심이 많아 이 방법만 고수하지 않는다. 가끔씩 융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기도 하지만  뒷마무리가 귀찮아서 융드립용 필터(사진에 보이는 필터가 아니다. 손잡이가 있는 철사에 끼워서 쓰는 융필터)는 냉동실에서 동면중이다.

일본 출장갔다 도큐핸즈에서 커피 지름신이 꼬드껴서 사온 융필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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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오 유리드립퍼와 융필터(VGNF-02)

하리오 드립퍼에 종이 필터 대신 쓰려고 했다가 귀찮아서 뜯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던 이 필터가 햇빛을 볼 기회가 왔다. 일단 융 드립퍼처럼 융필터도 커피물에 삶아야 한다. 추출하고 난 커피 찌꺼기와 융필터를 같이 넣고 끓인다. 적당히(이런 말은 고수들이 잘 쓰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고수란 말은 아니다) 끓이고 나서 융필터를 깨끗이 헹군다. 꼭 짠다. 커피를 바로 추출하지 않으면 지퍼백이나 깨끗한 냉동실용 보관통에 넣어서 냉동실에 넣어 둔다. 냉동실에서 꺼내면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해동(살균소독인가?)한다. 물기를 꼭 짜서 예열한 유리 드립퍼(다른 재질의 드립퍼도 동일한 방식으로 한다)에 올리고, 적당량(이것도 '적당'이네. 일반적으로 일인분에 10g을 쓰라고 하는데 개인마다 사용하는 양은 다르다)의 커피가루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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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을 붓는다. 하리오 방식이나 코노 방식으로 추출할 때에는 십자 방향으로 물을 떨어뜨리고, 다음에는 방사형으로 물을 떨어뜨려 뜸을 들이라고 한다. 내 커피 선생님도 수업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막상 당신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삐딱이 정신을 살려서 나도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내려본다. 처음에는 점드립으로 한 방울, 한 방울, 계속 한 방울씩 드립퍼의 중앙에 떨어 뜨린다. 천천히 커피 가루가 부풀어 오르면, 동전 크기 정도로 한 번씩 물줄기를 돌린다. 주전자가 무거우면 손목과 어깨까지 뻐근해질 수 있으니 적당한(이것도 또 '적당'이네. 흠~) 무게의 주전자를 사용해야 한다. 동전 크기보다 조금 더 크게 폭을 넓히면서 돌리다, 나중에는 크게 원을 그리면서 물을 내린다.

추출한 커피가 식은 느낌이면 살짝 데워서 마신다. 종이 필터로 내린 것보다 커피맛이 진한다(동일한 정도로 로스팅한 커피를 사용했을 때의 비교 기준이다). 융 필터는 종이 필터처럼 커피 기름(오일?)을 걸러내지 않아서 진하게(이걸 바디감이 강하다고 표현하는데, 전문적인 감별사인 커퍼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커피를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융필터로만 커피 기름기가 있는 커피가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종이 필터를 사용해도 추출할 수 있다(동일 품종, 동일 조건에서는 다를 수 있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아니 커피 좀 마신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사람마다 자신의 방식이 최고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카리타 드립 방식으로 하면 초보이고, 코노나 하리오 방식으로 하면 고수라는 생각은 우스꽝스럽다. 각기 다른 방식에 따라 약간의 맛 차이가 나겠지만, 원하는 맛으로 추출하지 못하는 실력이라면 초보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도 초보 수준의 커피만 내린다. 그래도 이런 저런 방식을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재미있다. 내가 내린 커피가 설사 맛없다 해도 맛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융필터의 커피 찌꺼기를 처리하지 않았다. 추출하자 마자 헹궈야 하는데. 이래서 융필터(융드립퍼)는 정이 가지 않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