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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그리고....

[녹차] 처음 중국차를 마셨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롱징(龍井;용정)차

땅이 넓은 중국에는 수많은 종류의 차(茶)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많은 차를 녹차(綠茶), 백차(白茶), 황차(黃茶), 청차(靑茶), 흑차(黑茶), 홍차(紅茶)로 구분했다. 중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차는 대체로 위와 같은 6가지 분류법에 의해 정의된다. 그렇지만 '차'라는 단어 앞에 붙은 '색'을 나타내는 단어는 차를 우려냈을 때 나오는 색과는 무관하다. 녹차, 황차, 흑차, 홍차의 경우에는 이름에 걸맞는 색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보면 꼭 그렇지 않다. 가령 '푸얼차(普洱茶; 보이차)의 탕색은 흑갈색으로 보이지만 차를 제작하는 방법, 차의 발효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국차의 분류는 찻잎을 딴 이후의 발효 정도에 따른 구분으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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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차밭, 중국 저장성 항저우, 2005. 7.


한 때 중국차의 대명사로 군림한 것은 용정차(龍井茶)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하면서 한국에 많이 소개된 차였다. 중국을 다녀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차를 구매했는데(당시 중국관광지에서는 살만한 기념품이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인들은 용정차를 많이 사왔다. 녹차가 태반인 한국 차소비 경향때문에 한국인들은 녹차만 살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하여간 1990년대 중국을 다녀온 이들은 대개 용정차를 선물로 줬다.

중국차를 판매하는 매장도 없었고, 체계화된 정보도 없었던 상황에서 선물로 받은 용정차는 차포장상자에 갇혀 맛을 잃어가고 있었다. 용정차를 잘 우려내는 방법도 몰랐고, 품질 등급도 몰랐던 상황에서 묵은 차는 결국 방향제로 쓰거나, 엽차(어머니는 용정차를 주전자에 넣고 오랜 시간 끓였다)가 되었다. 그래도 한국 녹차와 달리 넓적한 잎 형태로 덖여 있는 모양은 신기했다. 차맛은 잘 몰랐지만, 한국 녹차와 생김새가 달랐고, 차맛도 보다 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느낀 용정차 맛은 차의 특성을 잘 알지 못했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선 차를 우려내기 위한 물의 온도도 맞추지 않았다. 팔팔 끓는 물은 그냥 부었으니, 찻잎은 찻물이 우러나기도 전에 익어버려 떫은 맛이 났다, 또 지금도 그렇지만 관광지에서 구매하는 차의 품질 상 좋은 맛이 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차에 대한 앎의 정도도 낮았던 내 수준에서 좋은 차를 마셔도 왜 좋은지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 녹차의 등급도 간단하게 우전, 세작, 중작, 대작의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우전과 세작만을 최고라고 말한 차 대가들의 견해를 경전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그러다 중국에 자주 왕래하는 기회가 생기면서 중국차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대학원 재학시에 알게 된 텐진외대 리교수님의 소개로 중국차시장을 방문하면서부터 다양한 중국차를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 가기 전부터 인사동 일대의 찻집에서 청차 계열인 철관음(鐵觀音)과 흑차 계열인 보이차를 마셔보기는 했지만, 다양한 중국차를 접하게 된 것은 중국의 차도매시장을 방문하면서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중국에 가면 일정 중의 하루 이틀 정도는 차시장에 들리는데, 이 때 다양한 중국차를 마셔본다. 반 나절 이상을 찻집에서 차만 마시다 보니 세네번은 화장실을 갔다 와야 하고, 차기운이 센 차를 마시면 속이 쓰리기도 하다. 지금은 우려줄 때마다 조금씩만 맛을 보고 쏟아 버리지만, 처음에는 우려주는 차를 예의 상 다 마셔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에 가지 않고도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나오는 차를 맛볼 수 있다. 중국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저변이 두터워지면서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서 수입된 중국차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중국의 차시장에서 차를 마시고 구매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단 한국의 수입상들이 유통하는 우수한 등급의 차 가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내 입맛으로 고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차는 마셔보고 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차 구매 원칙이다. 아무리 우수한 등급의 차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차를 우려주는 상인의 기술에서 나온 맛에 혹해서 구매하기도 하지만, 정작 집에서 우려내 보면 그맛이 아닐 때도 많다(이 부분은 추후에 쓰기로 한다).

1993년 중국에 출장갔다 온 선배가 선물로 준 용정차로 인연을 맺었던 중국차에 대한 관심은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차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졌다. 인디아, 아프리카 지역의 홍차, 일본의 전차와 말차에 대한 관심도 용정차를 마시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자주는 아니지만 식사를 하고 나서 가볍게 용정차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