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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익어가는 가을-검양옻나무 지난 해 가을, 진홍 단풍색의 분경(盆景)에 혹했다. 야생화 분경용으로 많이 식재하는 '검양옻나무'에 대한 관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올 해 봄, 돌에 붙여볼까 하고 몇 개의 포트를 얻었는데, 옹기화분에 옮겨 심은 것은 말라 죽었다. 나의 무관심과 한여름의 무더위에 말라 버린 것이다. 인간도 더위에 허덕대는데, 물도 주지 않고 팽개친 결과이다. 그런데 게으름때문에 화분에 식재하지 않았던 3개의 포트에 담겨진 '검양옻나무'는 작업실 베란다에서 잘 자랐다. 한C 형님이 보내준 작은 나무가 최근 베란다에서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틀 사이에 잎이 물들어 가는 것이 제법이다. 인간의 눈에 비친 잎사귀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정작 잎은 한 주기의 성장을 마무리하고 있을 것이다. 내년 봄에는 잎이 떨어진.. 더보기
여름과 가을의 공존 더보기
[책글] 고뇌하는 자만이 존재의식을 느낀다. - 고뇌의 원근법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행위는 야만스럽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오늘날 시를 쓰는 일이 왜 불가능해졌는가를 설명하는 인식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던 제2차세계대전은 이미 제1차세계대전에서 의심되었던 인류의 이성과 양심의 파멸을 극렬하게 보여준 전쟁이었다. 일말의 역사적 희망도 찾을 수 없었던 제2차세계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인간이란 존재를 근본적으로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5000만명에 가까운 사망자(군인, 민간인 포함)가 발생했던 이 전쟁에서 가장 추악한 범죄는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인종말살 폭력이었다. 이 범죄의 최종적인 행위주체는 나찌였지만, 유럽의 반유대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 더보기
푸르렀던 날을 기억하며 나는 쓸쓸하지 않다. 또 다른 주기를 준비할 뿐이다. 동면의 세월을 지내고, 눈부시게 푸른 날을 맞을 것이다. 더보기
2009년 가을 서서히 물들다 친구따라 북한산에 올랐다. 7개의 봉우리를 넘으면서 본 그 황홀함이란...절정이 아니라지만, 이미 충분했다. 더보기
[책글] 그림으로 중국 역사 읽기(2) - 장강의 르네상스 이은상,『장강의 르네상스-16 · 17세기 중국 장강 이남의 예술과 문화』, 민속원, 2009. 이은상 선생의 또 다른 책 『장강의 르네상스-16 · 17세기 중국 장강 이남의 예술과 문화』는 앞의 책 , ,『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역사』의 속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속편이라기 보다는 앞의 책에서 세밀하게 다루지 못했던 16~7세기 쑤저우 일대의 예술문화에 대한 세론이다. 앞의 책이 중국역사 전반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이책은 명말청초의 격변기 상황에 놓여진 지식인들(문인들)의 문화적 지위와 예술의 상관성을 말하고 있다. 몽골족을 몰아내고 명(明)나라를 건국한 명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건국과정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장사성을 제압한다. 쑤저우의 물질적 풍요를 기반으로 주원장과 대립했던 장사성.. 더보기
[책글] 그림으로 중국 역사 읽기(1) - 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역사 이은상, 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역사, 시공사, 2007.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적지 않지만, 그림을 통해서 중국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책은 드문 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은상 선생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지라 마치 책 홍보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중국화라 하면 산수화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중국만큼 다양한 소재와 화풍이 존재하는 곳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산수화는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중국 산수화는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라는 말이다. 물론 최근의 중국 산수화는 꼭 그렇지 않지만..... 이 책은 직업적인 화원 화가들의 그림보다는 중국의 문.. 더보기
고교 시절의 로망-주다스 프리스트 '첫'내한공연을 보고 Judas Preist '첫' 내한 공연(2008년 9월 21일,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 21일 저녁 고교 시절 나의 로망이었던 Judas Preist의 첫 내한 공연을 보러 갔다. 전성기를 15년이나 지난 밴드가 첫 내한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온 것을 보면서, '첫'이라는 수식어의 의미가 퇴색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장이 되니 돈이 궁해서일 수도 있고, 한국의 헤비메탈 팬들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일본 투어왔다가 거쳐가기 위해 온 것일 수도 있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내한공연을 했겠지만, 어쨌든 난 반가웠다. 고교 시절 세운상가 빽판(해적판) 음반 사다가 들으며('유하'시인의 에서 적나라하게 나같은 이들의 모습이 희화화되었다) 희희낙낙했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공연을 보고픈 마음이 더욱 동했다. 전성.. 더보기
친구에게 빼앗은 캐논 파워샷 G9 대학 동기가 갖고 잇는 캐논 파워샷 G9(이하 '지구'로 표현)을 빼앗아 왔다. 친구는 G7(친구는 이것을 '지칠이'라고 표현한다)을 갖고 있는데, 여차여차하여 '지구'가 새로 생겼다고 걱정(?)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탈(돈을 들이지 않거나, 아주 예의를 취하는 수준에서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하는 나의 주특기가 발휘되었다. 비슷한 기능의 두 카메라를 갖게 된 친구의 심사를 긁었다. 쓰고 있던 '지칠이'를 노렸는데, 착한 친구는 '지구'를 줬다. 그 친구는 너무 착하다. 나의 꼬임에 넘어가다니.... '지구'를 빼앗아 왔지만, 정작 사진을 찍어 볼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항상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지만, 눈에 띄는 피사체가 없었다. 발품을 팔지 않으니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 더보기
나와 함께 한 나무를 보며 얼마 전 돌아가신 작은 할머님을 선영에 모셨다. 그곳에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심은 잣나무들이 있다. 아침 햇살이 스며든 숲은 눈부셨다. 작은 할머님의 하관이 진행되는 동안,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당신이 누울 자리를 보고 계셨다. 잣나무 몇 그루가 베어졌다. 속살을 드러낸 잣나무에는 겹겹이 41년 나무살이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베어지지 않은 나무들은 푸르름을 간직하겠지만, 베어진 나무는 서서히 뿌리 끝까지 썩어 들어가겠지.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선산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이 잣나무들을 가르키며 "너 태어나던 해에 심었다"고 하셨다. 장손인 아버지는 선영을 관리하러 자주 가셨다. 나는 장손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갔다, 대부분 선영의 묘와 나무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잣나무를 타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