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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눈내린 북한산성 능선길(1) 북한산에 올랐다. 북한산 인근에서 10여년을 살면서도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북한산을 올해는 두번이나 올라갔다. 처음에는 친구의 흘린 말에 빠져 북한산의 난코스 중 하나인 의상능선의 봉우리들을 넘었다. 이 산행은 허약해진 내 몸상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친구와 자주 산에 오르기로 했다. 친구와 10월 말에 다시 한 번 가려고 했다가 피치못하게 포기하고, 이번에 올라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있는 후배와 같이 갔다. 10월초 산행에서 하산길로 선택했던 구기동에서 시작해서 북한산성 주능선을 타기로 했다. 일단 대남문까지만 올라가면 대체로 완만한 능선길이었던 것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새벽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려 산행을 취소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더보기
김용택, 섬진강 20 섬진강 20 감 傳 김용택 감들이 불쌍했다. 아버님은 초가을부터 행여나 행여나 하시며 거간꾼들을 기다리다 감들이 다 익어가도 팔릴 기미가 없자 큰놈만 대충대충 골라 따도 감은 끝이 없고, 첫서리가 내리고 감들이 사정없이 물러지기 시작하자 밤 터는 긴 장대로 감나무를 두들겨패댔다. 장대를 힘껏힘껏 휘두를 때마다 감들은 후드득 떨어져 박살이 나고 으깨어졌다. 아버님은 이 웬수놈의 감 이 웬수놈의 감 많아도 걱정 적어도 걱정 이 썩을 놈의 감, 하시며 있는 힘을 다하여 두들겼다. 감가지가 찢어지고 감들이 떨어져 물개똥같이 되면 어머님은 이 아깐 것, 이 아깐 것, 하시며 그래도 성한 놈은 광주리에 가득가득 담으셨다. 그러시는 어머님을 보고 아버님은 버럭버럭 화를 내셨지만 어머님은 떨어지는 감을 맞으며 감쪼가리.. 더보기
신경림, 이슬에 대하여 이슬에 대하여 시안(西安)에 가서 도열해 서 있는 수천 기의 병마용(兵馬俑)을 보다 신경림 도열해 서 있는 저 수천 기의 병마용은 만고의 폭군이 자기를 지키는 병사와 말까지도 권력과 영화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죽였음을 말해준다. 그가 저 병사와 말 들을 시켜 짓밟고 불태운 마을은 얼마며 갈가리 찢고 죽인 백성은 또 얼마이랴. 그런데도 그가 죽인 저 병사들의 자손, 그 병마가 죽인 백성들의 자손들은 2천년이 지난 오늘 그 만고의 폭군을 은근히 기린다. 그 덕에 이곳의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게 아니냐면서, 또 그 아니면 이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를 가진 땅임이 어찌 알려졌겠느냐면서, 짓밟히고 불탄 마을과 들판에 널린 시신이야 한갓 옛날이야기일뿐, 그러니 어찌 탓할 수만 있으랴, 착한 이웃들이.. 더보기
고정희,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외경읽기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 더보기
심장을 뛰게 하는 Rock and Roll Music 몸이 무겁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는 강한 비트의 노래를 듣고 싶다. 몸을 흔들어 대며, 헤드뱅잉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중년의 나이에 헤드뱅잉(headbanging)하다가 목디스크로 병원신세질까봐, 눈동자만 굴리며 아이뱅잉(eyebanging)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눈동자를 머리 돌리는 속도 정도로 돌릴 수 있다면 지금의 직업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한 곡의 음악이 경쾌한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심장까지 뛰게 한다면 그 곡은 최고의 감동을 주는 음악일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강렬하게 다가왔던 음악 한 곡 정도는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음악을 너무 진지하게 들어서 푹 빠져버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Le.. 더보기
김영승, 반성 187 반성 187 김영승 茶道니 酒道니 무릎 꿇고 정신 가다듬고 PT체조 한 뒤에 한 모금씩 꼴깍꼴깍 마신다. 차 한잔 술 한잔을 놓고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나한테 그 무슨 오도방정을 또 떨까 잡념된다. 지겹다. 김영승,『반성』, 1987. 한국에는 도인(道人)들이 너무 많다. 어떤 도인은 텔레비젼에 나와 번쩍이는 머리의 광채를 발산하며 도에 대해 말한다. 그보다 하수인 도인들은 중심에서 밀려나, 종극에는 지하철 역 입구에서 '도를 아냐고' 묻는다. 가끔씩 되묻고 싶다. '그러는 당신은 도통(道通)하셨소'라고. 이들 외에도 자기 좋아 마시는 것을 갖고 도작(道作: 도라고 지칭하며 마시기를 포장한다)질을 하는 이들도 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온갖 수사여구를 붙이고, 온갖 품을 들인다. 이는 술도 마찬가지이.. 더보기
이성복, 날마다 상여도 없이 문득, 컴퓨터 속의 이미지 파일을 정리하다 책꽂이에 있는 시집으로 시선이 향했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책장 속에 처박힌 시집과 하드디스크 속에 갇혀 호출을 기다리는 이미지의 신세가 같아서였을까? 시를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진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상을 보면서 동일화된 시선은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 오랜 시간동안 누적된 감성때문일 것이다. 시각적 매체인 사진의 이미지가 시의 울림을 방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시집에 갇힌 시와 컴퓨터 속에 갇힌 사진을 끄집어 내어 연결해 본다. 날마다 상여도 없이 이성복 저놈의 꽃들 또 피었네 먼저 핀 꽃들 지기 시작하네 나는 피는 꽃 안 보려고 해 뜨기 전에 집 나가고, 해 지기 전엔 안 돌아오는데, 나는 죽는 꼴 보기 싫어 개도 .. 더보기
2009년 광릉 숲의 가을 더보기
[책글] 숲으로 가니 숲이 보이지 않고,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 우린 숲으로 간다 이유미, 서민환, , 2003. 6. 부부산림학자의 우리 숲 답사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신간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서점 알**에서 중고책 거래를 통해서 구입했는데, 크게 기대하고 산 책은 아니었다. 숲에서 느끼는 평온에 대한한 글이려니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숲의 생태를 연구하는 산림학자 부부의 애정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엄밀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우선 이 책은 전국 각지의 숲을 역사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생태적 특성을 풀어쓴 책이다. 다음으로 숲을 연구하는 산림학자이기 이전에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숲에 대한 애정을 담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자라고 있는(자생과 귀화, 외래 나무를 모두 포함) 다양한 나무를 중심으로 야생화, 버섯 등에 대한 도감이다. 199.. 더보기
[녹차] 처음 중국차를 마셨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롱징(龍井;용정)차 땅이 넓은 중국에는 수많은 종류의 차(茶)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많은 차를 녹차(綠茶), 백차(白茶), 황차(黃茶), 청차(靑茶), 흑차(黑茶), 홍차(紅茶)로 구분했다. 중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차는 대체로 위와 같은 6가지 분류법에 의해 정의된다. 그렇지만 '차'라는 단어 앞에 붙은 '색'을 나타내는 단어는 차를 우려냈을 때 나오는 색과는 무관하다. 녹차, 황차, 흑차, 홍차의 경우에는 이름에 걸맞는 색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보면 꼭 그렇지 않다. 가령 '푸얼차(普洱茶; 보이차)의 탕색은 흑갈색으로 보이지만 차를 제작하는 방법, 차의 발효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국차의 분류는 찻잎을 딴 이후의 발효 정도에 따른 구분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 때 중국차의 대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