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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예찬 잘 찍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일단 대상의 윤곽선이 또렷해야 하고, 색채가 선명해야 하고, 기타 등등의 요건을 충족한 것이 잘 찍은 사진일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잘 찍은 사진은 원래의 상태보다 더 멋있게, 더 아름답게 뻥튀기된 사진이다. 사람들은 원형을 제대로 재현한 사진보다 뽀사시하게 보이는 사진에 열광한다. 특히 사람의 얼굴을 담은 사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긴 예전에도 증명사진을 붓으로 수정했으니까, 원판 수정은 사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기술이다. 프로 사진가들 중 일부는 디카로 찍은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수정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포토샵으로 수정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거창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진짜 이유는 포토샵을 다루는 기술이 능숙하지 않기 때문.. 더보기
[덕유산]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2)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지리산에서 덕유산 가자고 꼬드낀 죄책감때문이었을까? 무주리조트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날씨가 걱정되었다.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으로 오르는 곤돌라를 타고 정상인 향적봉에 오르리라 생각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곤돌라는 운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쩔까? 말로는 곤돌라 운행 안 하면 그냥 집에 가자고 했지만, 지리산 종주도 못한 판에 여기도 포기하고 갈 수 있을까? 무주리조트의 아침이 밝았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려 했으나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굽이굽이 돌아오느라 힘들었나 보다. 이런 날은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덥혀야 하는데,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또 즉석밥과 컵라면으로 한끼를 때웠다. 정말, 이건 때우는 거다. 체크아웃 시간에 임박해 방을 나섰다. 리조트 내의 숙소에서 .. 더보기
또 하나의 마감이 끝나고 또 하나의 글이 내 손을 떠났다. 항상 하는 일임에도 다른 이들에게 글이 읽혀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난 영상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교정은 종이로 출력해서 봐야 한다. 종이로 본다고 완벽하게 교정되는 것도 아니지만, 교정지를 출력해서 빨간펜으로 그어야만 교정이 된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도 열심히 교정했다. 다 쓰고 나서 교정지를 출력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항상 그렇듯이 본문을 쓰고 있으면서도 교정을 한다. 종이 낭비인 줄 알면서도... 글이 안 써질 때는 교정지를 출력하는 회수도 늘어난다. 출력한 교정지 위에 문자들이 촘촘하게 박혔지만, 뜻은 횡횡거리며 흩어진다. 빨간펜의 마술이 필요할 때다. 기존에 썼던 것까지 읽고, 또 읽지만 여전히 진도는 안나간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 더보기
하루 종일 차만 마시다 마감을 앞두고 책상에만 앉아 있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두꺼비처럼(진짜 두꺼비가 물을 많이 먹는지는 모르겠다) 물만 먹는 일빼고는.... 아! 있다. 머리싸매고 나오지도 않는 생각 끄집어 내는 것. 떨어지는 필력을 증명하듯 뚫어지게 화면만 쳐다본다. 그야말로 궁구(窮究)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화면을 쳐다보면 마감의 끝도 보이는 것 같다. 종이세대라 그런지 종이로 출력해서 보기 전까지는 모든 게 잘 된 것같이 느껴진다. 종이로 출력해서 보면, 결국 빨간색으로 도배된다. 물먹는 얘기로 돌아가 보자.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내 글쓰기 생활에서 잘 써졌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내몸에 치는 윤활유는 차(茶)다. 입맛이 유별난 탓(그렇다고 입이 짧은 것은 아니다. 난 다식가이자 포식가이다)에.. 더보기
오랫만이다 손흘림 커피 하는 일없는 놈이 바쁜 척만 한다더니, 내가 꼭 그꼴이다. 진짜 바쁜 사람은 이렇게 투정부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여름방학 내내 뭔가에 쫒기다 보니 커피를 볶은 지도 3개월이 넘었다. 볶은 콩사러 학교 앞 커피집에 갔더니 수리중이다. 시내까지 갈 수도 없고.... 할 수없이 방향제로나 쓸 커피까지 탁탁 털어먹었다. 이것까지 털어먹고 나니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다. 남은 것은 정말 방향제도 아닌 탈취제로나 쓸 수 있는 것뿐이다. 개강하고 학교 앞 커피집도 문을 열었다. 두 종류의 커피를 사왔다. 분쇄기로 갈고 손흘림 주전자로 물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2달만에 손흘림 커피를 내리려니 손도 거부한다. 커피 가루들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음~ 바로 이거야! 볶은 커피가 많은 때는 손흘림으로도, 사이폰으로도 .. 더보기
동상(凍傷)입은 풍란(風蘭), 꽃을 피우다 재작년 겨울, 베란다에서 키우는 난(蘭)들이 동상를 입었다. 기온이 내려가는 저녁, 생각없이 준 물때문에 입들이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란 점이더니, 서서히 까맣게 썩어갔다. 할 수 없이 썩은 부분을 전지가위로 도려냈다. 끝이 뾰족하게 뻗었던 소엽풍란이 썩은 잎을 도려내자 아주 우스운 모양이 되었다. 마치 더벅머리를 깍아놓은 것 처럼 되어 버렸다. 살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지만, 풍란을 키우는 지인의 말씀을 믿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에도 베란다에서 키웠다. 모든 식물은 휴지기인 겨울을 겨울처럼 나야 꽃을 피운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일주일 이상 강추위가 이어지지 않는 한 실내로 들이지 않았다. 동상을 이겨낸 풍란이 화답(花答)했다. 한 송이만 꽃을 피웠지만, 상처를 치유한 것 같다. 아직도 동.. 더보기
운무(雲霧) 속의 사패산과 수락산 새벽에 쏟아진 폭우의 여파가 남아있는 산은 여전히 비구름을 머금고 있다. 한 바탕 쏟아 붓고 가벼워진 비구름의 끝자락은 부드러운 운무(雲霧)의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오가는 길이라도,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멋있는 풍경은 스쳐가는 이미지에 불과할 때가 많다. 차를 세우고 똑딱이에 담고 싶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차를 멈추기 쉽지 않다. 수락산 터널을 빠져 나오자 도봉산 자락에 걸린 구름이 심상치 않다. 그 풍경에 이끌려 의정부서부순환도로 쪽으로 차를 돌렸다. 멋진 풍경을 담았다. 경외로운 풍경이 내 안으로 빨려들어오듯, 난삽하게 널려있는 자료들이 휑덩그렁한 머리 속에 채워졌으면 좋겠다. 찾으면 찾을 수록 미궁에 빠지게 하는 자료들이 좌표가 되어 논리의 타래에 놓여지면 .. 더보기
아들 친구는 내 친구 우리 집의 애완동물은 이놈들이다. 넓적사슴벌레 이외에 장수 풍뎅이도 사육중이다. 천식이 있는 아이때문에 털 날리는 동물들은 키울 수 없다. 아니, 아이가 건강하다고 해도 개나 고양이를 실내에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개나 고양이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신념 아닌 편견을 갖고 있는지라...... 4년쯤 되었나 보다. 배달된 피자의 사은품으로 따라온 장수풍뎅이 애벌레에 아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충이 되면 잠깐 키우다가 포기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곤충도감을 사달란다. '그럼, 곤충을 키우려면 공부하면서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줬다. 간략한 도감책이 마음에 안들었나 보다. 곤충과 관련한 이 책, 저 책을 더 사달란다. 이때부터 약간 걱정이 되었다. 아이 말대로 곤충학자가 .. 더보기
한 덩어리(chunk) 배에 주문(呪文)을 걸다 지리산 아니 덕유산을 갔다 온 이후로 숨쉬기 운동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했더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작업실 덤벨과 바벨이 한 달도 넘게 그 자리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마다 이놈들을 보고 한 마디씩 한다. 조만간에 몸짱 하나 나타나겠다고...... 그렇게 되면 오죽 좋으랴마는 이놈들을 지속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으니 몸짱이 되기는 글렀다. 애초에 몸짱을 만들겠다고 이 무거운 놈들을 이곳에 들여온 것도 아니니까 실망할 이유도 없다. 궁둥이붙이고 일하는 직업이라 늘 하체가 부실했고, 심지어는 마우스, 키보드, 책장 넘기기 등 손가락으로만 일을 하다 보니 상체 또한 부실해졌다. 결국 지난 해에 총체적 부실의 막바지는 드라마틱하게 백주대낮의 생쇼로 귀결되었다. 대오각성하고 정말 오랫동.. 더보기
또 다시 7년의 시간이 시작되고 깜박, 깜박, 또 깜박하는 바람에 적성검사 기한 마지막 날에야 가까스로 또 7년의 시한을 연장했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곳에서만 적성검사를 두 번이나 받는다. 처음 면허증을 받았을 때는 기쁨과 기대 등등의 들뜬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 면허를 경신하다 보니 이런 기분보다는 귀찮은 느낌만 든다. '그 동안 무엇을 했었나'라는 상투적인 회고가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 면허시험장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요식적인 신체검사를 받고, 수입인지를 구입하고, 새로운 면허증을 신청하고 의자에 앉아 면허증 발급을 기다리며 접수장 안을 둘러본다. 여전히 창구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긴장되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저런 난관을 이겨낸 사람들일.. 더보기